대전 첫인상

지난 월요일에는 아내와 함께 당일치기로 대전에 다녀왔다. 임용절차를 마무리짓기 위한 서류 묶음을 제출하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아직 대전을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아내에게 학교와 그 주변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마침 내가 속하게 될 학과의 학과장님도 내게 대전 내려올 일 있으면 한번 보자는 연락을 주시기도 해서 겸사겸사 내려간김에 인사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서울과 대전 사이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체험(?)해보기 위해 차를 끌고 갔다. 강북지역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한남대교부터 만남의 광장까지의 구간은 단 한번도 시원하게 뚫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서울은 절대적인 크기도 매우 큰 도시지만, 면적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이 살다보니 더 거대하게 느껴지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다. 서울을 빠져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세금이라고 한다면 그 값이 결코 작지 않은 셈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진입하는 것도, 그 도시를 빠져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비단 고속도로 위에서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곧게 뻗어있는 경부고속도로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지 않는 도로 중 하나인데, 차를 타고 달리는 재미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도로 주변에 어지럽게 들어선 건물들에서 서울로 향하는 욕망의 탑을 읽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남대교에서 양재IC를 지나다보면 발견할 수 있는 반포자이아파트는 그러한 욕망을 가장 명확하게 상징하는 건물이다. 한국에서 아마도 공기가 가장 나쁜 곳에 들어선 이 아파트 단지의 평당 매매가격은 나라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울을 벗어날수록 한적해지는 풍경은(그리고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낮아지는 평당 매매가격은) 그래서 다행스러우면서도 처연하게 느껴진다.

고속도로를 따라 하염없이 내려다가 보니 대전이 생각보다 멀게 느껴졌다. 옆에 앉은 아내의 근심이 본격적으로 느껴진 것도 이 즈음부터였다. 우리 부부의 느릿한 생활 리듬에 견주어볼때 서울과 대전 간 거리는 결코 당일 생활권이 될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길바닥에서 하루 네시간여의 시간을 고스란히 낭비하면서 사는 것은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주거지를 이동하는 것이 유일한 답처럼 느껴졌다. 어디로 어떻게 옮기느냐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난 월요일 날씨가 매우 추웠기 때문에 우리가 대전에서 받은 첫인상도 당연히 ‘춥다’는 것이다. 창원이나 부산처럼 서울보다 완연하게 따뜻하다고 느끼는 지역이 있는데, 대전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서울만큼 추웠다. 아마 여름에도 서울만큼 덥고 습할 것이다. 문제는 춥고 더운 날씨를 얼마나 피할 수 있느냐일 것인데, 싱가폴은  서울보다 훨씬 덥고 훨씬 습하지만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로만 살살 피해다니면 더위도 크게 느낄 수 없다는 아내의 설명에 ‘싱가폴에서도 살 수 있겠다’라는 희망을 품었던 적이 있다. 불행히도 대전은 더위와 추위를 잘 피해다닐 수 있을 정도로 대중교통이 발달한 도시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지하철 노선은 단 하나뿐인데 그마저도 많은 구설수를 낳은 엉뚱한 정차역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유성온천역(충남대, 목원대)에서 충남대와 목원대는 걸어서 갈 수 없는 거리에 있고, 월평역(KAIST)에서 카이스트는 보이지도 않는다. 갤러리아 백화점이 있는 둔산동 신시가지에는 아예 지하철역이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버스 노선이 서울처럼 활발하게 발달해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주위에서 듣기로는 많은 이들이 자가용 자동차를 이용해 이동한다고 한다. 나중에 도시를 조금 더 살펴본 뒤에야 자가용이 더 잘 어울리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일하게 될 대학교는 넓고 광활했다.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교들이 좁은 부지 위에 높은 층수의 건물들을 옹기종기 배치한 것에 비해 이 대학교는 넓은 부지 위에 낮고 넓은 건물들을 띄엄띄엄 배치한 점이 인상깊었다. 규모가 큰 국립대여서 그런지 기숙사 건물도 여러채가 있었고 학교 안으로 다니는 버스도 보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콜로라도 대학교의 풍경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약간 반갑기도 했다. 앞으로 속할 단과대에서 학과장님과 학과의 다른 교수님 한분을 만나 뵈었다. 그 분들은 나보다 내 아내에게 더 큰 인상을 받으신 것처럼 보였다. 아내가 대화를 주도했기 때문에 내가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대전의 부동산 시장 현황과 그곳에서의 교수로서의 생활 등 여러가지 귀한 조언을 받고 나왔다.

앞으로 우리가 살 곳을 둘러보기 위해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본 주거지역을 차를 끌고 휘휘 둘러보았다. 우리 모두 둔산동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미 잘 갖추어진 주거환경과 널찍하고 곧게 뻗은 도로사정이 아직 운전이 서툰 아내가 자동차를 이용해 돌아다니기에 나쁘지 않은 곳처럼 느껴졌다. 1990년대 지어진 아파트의 노후화와 그에 따른 투자가치 하락 정도가 마음에 걸렸다. 도안신도시와 노은동은 새로 조성된 주거지역이어서 둔산동에 비하면 조금 횡한 느낌이 들었지만 삶의 질, 생활 편의성만 따진다면 깔끔하고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보려는 경향이 있는 아내에게는 대충 둘러본 이번 방문이 불충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세종시로 향했다. 세종시는 태어나서 처음 가보았는데, 그야말로 국가의 욕망, 투기꾼의 욕망, 그리고 그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해보려는 서민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얽혀있는 공간이었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좋아보이는 환경이었지만, ‘한국에서 아기를 키우는 부모’가 원래 정상적인 곳이었다면 당연히 누렸어야 할 다양한 조건들을 모두 포기한다는 전제조건에서만 가능한 환경같아보이기도 했다.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약간 더 많이 포기하고 부모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기를 강요하는 도시처럼 보였다. 그래서 출산율이 그렇게 높은건지도 모르겠지만. 예쁘게 만들어진 도서관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다 오면 좋겠다는 대책없는 낭만적인 생각도 해보았다.

어찌보면 대전과 그 주변은 미국 대도시의 다운타운과 그 주변 교외거주지역을 아우르는 구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대전은 대전역 주변에 걸쳐 형성된 역사 깊은 구도심과 정부청사를 주변으로 형성된 신도심으로 중심부를 나눌 수 있는데, 구도심과 신도심, 그리고 유성구로 대표되는 신주거지역과 대덕연구단지가 갑천과 유등천이라는 작은 천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지역을 아우르는 대전시는 세개의 고속도로로 둘러싸여 있다. 신도심 가까이에는 90년대 지어진 아파트들이 밀집한 둔산동이 있는데, 이 곳의 이미지는 분당이나 과천과 흡사하다. 대덕연구단지와 정부청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형성한 군락답게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이들을 포함한 대전의 ‘상류층’ 상당수가 새롭게 조성된 노은지구와 도안지구로 이주했는데, 이곳의 모습은 수도권의 위례지구, 혹은 판교와 닮아있다. 세종은 대전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져 있는 독립적인 도시인데, 아직 자급자족 능력을 완전히 갖춘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 계획의 절반도 채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국가 및 기업의 막강한 자금이 계속 투입될 것이라는 점에서 투자가치는 상당해보였다. 대전 신시가지와 비슷한 모양새를 한 도시는 아내의 고향이기도 한 창원이다. 널찍하고 곧게 뻗은 도로와 그 사이에 위치한 성냥갑같은 아파트들, 감히 주민의 미래 소비수준을 정확히 맞추어보겠다는 공무원의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충분히 예상된 실패의 모습으로 스며들어가 있는 부족한 주차장과 복잡하게 난립한 상가건물들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는 모습이 많이 닮아있다.

결국 우리 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살 것이냐와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인데, 우선 어디에 살지에 대해서는 이번 대전 방문으로 후보지를 두세곳 정도로 추릴 수 있었다. 아직 세종시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세종시가 대전 주변에서 거의 유일한 투자가치를 지닌 곳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이 꿈꾸었던 그 도시에서 잠시라도 살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고, 부동산을 투자수단으로 삼아 어떻게든 돈을 모아보겠다는 욕망도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다. 어쨌든 후보지 중 어디를 가더라도 서울과 비교해 절반 정도의 가격에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부동산가격에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욕망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특히 수도권 주요지역을 중심으로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가격결정구조가 존재한다. 요즘 부동산시장의 화두는 양극화라고 한다. 서울로만 강남으로만 은마아파트로만 돈이 몰린다. 강남의 중심부로부터 시작되는 돈의 욕망이 주변부로 조금씩 퍼져나가 전염시키는 와중에 그 욕망의 크기가 희미해지기도 하는데, 그러한 돈의 중독성 강한 냄새는 동탄 즈음에 이르러 거의 소멸된다. 그래서 대전에는 그런 불로소득의 욕망이 서울처럼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성동구 금호동 집은 1년 전에 비해 1억원이 훨씬 넘게 올랐다. 대전에서 요즘 가장 핫한 곳이라는 도안동의 비슷한 연식의 아파트는 그 절반도 오르지 않았다. 둔산동은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돈의 욕망에서 해방되면 차라리 살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부자될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면, 서울의 중심부에서 아둥바둥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불어나는 자산과 얌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나의 것을 비교하지 않을 용기만 있다면, 우리 가족이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대전에 있을 것만 같다.

또하나 걱정인 점은 우리가 ‘문화’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서울의 무형의 인프라스트럭처다. 홍대와 성수, 이태원과 서촌, 신사동과 압구정 부근에 ‘고유명사’처럼 조성된 상권이 과연 대전에도 있을 것인가. (나는 궁동 대학가에서 ‘홍대떡볶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를 보았다. 홍대에서 떡볶이를 사 먹은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서울과 애매하게 가까운 나머지 인구에 비해 상권이 역설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대전 지역에서 과연 프릳츠나 테일러처럼 나름의 브랜드파워를 지키며 살아남아 있는 커피숍체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서울과 지방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선택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산미 강한 커피가 싫다면 리이슈에서 전통적인 스타일의 캐러맬화가 많이 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롯데백화점이 싫으면 현대백화점이나 신세계백화점을 가면 되고, 이 바버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와 비슷한 수준의 다른 바버샵을 찾아가면 된다. 우래옥과 을밀대 중 좋아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자유는 그것을 일상 속에서 누려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큰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다. 그 다양한 선택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그 다음에 고민할 문제다. 대전에 과연 이러한 선택지가 존재할지는 그곳에 살아봐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곳에는 그곳의 문화가 있을 것이고, 그 지역에서만 소비되는 문화가 있을 것이다. 지역 커뮤니티 안으로 들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호흡할 때에만 진실되게 느낄 수 있는 공기가 있다. 서울은 덩치가 너무나 큰 나머지 그러한 공동체 문화가 거의 완벽하게 소멸되어버린 케이스다. 대전은 어떨까. 궁금하다. 그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차곡차곡 해나가고 있다.

4 thoughts on “대전 첫인상

  1. 역시 어디서 살아야하나 하는 문제는 wage, housing rent, amenity의 조율에서 비롯되네요 ㅎㅎㅎ

    • 맞아요. 다양한 층위의 예산제약 안에서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과정같습니다 ㅎ

  2.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하게 보신 것 같습니다. ㅎㅎ 커피는 어은동의 톨드어스토리 추천합니다. 그나마 본문에서 언급한 두 곳과 지향점이 비슷한 곳이죠. 맥주는 궁동의 랜치펍이 있고요. 최근 브루어리까지 영역을 확장했어요. 브루어리는 서구 정림동에 위치. 아무튼 두 곳 모두 제가 대전 처음 내려 왔을 때부터 좋아하던 곳입니다.

    • 톨드어스토리는 이미 한번 가봤네요 ㅎ 학교 근처에 있어서 굳이 발품을 팔아서 한번 들려보았습니다. 커피맛 괜찮았어요. 추천해주신 펍도 곧 방문해볼게요. 이렇게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재미가 당분간 쏠쏠할 것 같아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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