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

볼더에서의 마지막 1년은 무척 단조로웠다. 입학 시절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은 먼저 볼더를 떠났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에는 마음이 너무 어지러웠다. 수업을 맡지 않고 학과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타인과 대화할 기회 역시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도서관이나 집에서 논문을 마무리하는 일에만 집중했지만, 조여오는 시간의 압박 속에서 글이 제대로 나올리 없었고 볼더를 떠난 지도교수님은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번씩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안식처는 학과 건물 근처에 있는 작은 커피숍이었다.

이니스프리 북스토어(Innisfree Bookstore). 가게 이름만큼이나 아늑하고 조용했던 그곳은 어지러운 내 마음을 조용하게 다독여주는 공간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어두운 호수 한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잠시 쉬어갈 여유를 제공해주는 작은 섬. 그곳의 주인은 내가 막연하게 그려왔던 전형적인 시인(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예이츠)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성공한 비지니스맨의 얼굴을 한 중년의 남자였다. 내가 가게에 들릴 때 그는 거의 항상 가게에 있었는데, 단 한번도 커피를 직접 내리거나 계산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저 가게 안을 가득 채운 시집들 사이에서 손님을 응대하며 여러가지를 묻고 답할 뿐이었다. 나에게도 몇번 말을 걸어주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가게에 들려 같은 메뉴(핫초콜렛)를 시키는 동양인 남자를 기억하지 않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날은 내가 입구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핫초콜렛을 내어준 적도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하던 직원 한명은 나를 “핫초콜렛 보이”로 불렀다.

그곳을 떠날 때 가게 이름이 적힌 텀블러를 꼭 하나 사오고 싶었다. 그 가게를 기억하며 매일 커피를 담아 출근하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1년, 2년 길어질수록 다시 볼더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일주일에 다섯번 아침 아홉시에 출근하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맛없는 술을 마시면서도 웃으며 이야기해야 하는 삶이 반복될수록 볼더에서의 마지막 1년이 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그랬던가, 싶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결국 참지 못하고 금감원을 박차고 나올때 많은 이들의 걱정을 전해들었다. 많은 이들이 높은 연봉과 안정된 생활을 왜 굳이 포기해야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했고, 아마도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국회를 나올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라는 말 속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는 부드러운 힐난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우는 두 곳에서 사표를 내고 제발로 걸어나왔다. 한국에 사는 많은 이들이 금감원에 들어가고 싶어하고 행정사무관이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곳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한다. 그만한 보상이 있어서일 것이다. 금전적이든 사회적 지위든 권력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당시 나는 그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답게 사는 것.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것. 이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태어날때부터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에게, 학교에서, 사회에서, 친구들에게, 책에서, 텔레비전에서 조금씩 인자를 받아 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특유한 성정과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필연과 우연이 묘하게 결합되어 만들어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결정체이다. 나는 단 한번도 내가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공부를 일생의 업으로 삼기에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스무살 이후 내 삶은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질책의 연속이었다. 내가 정말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논문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이 일로 돈을 벌어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두려움 속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단 한번도 남들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남들보다 월등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도 못한다. 그저 누군가의 뒷꽁무니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남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가까스로 학문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렇게 살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매일 똑같은 커피숍에 들러 똑같은 메뉴를 주문하듯,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토록 되고 싶었던 ‘나다움’이 무엇이었을까. 어려운 공식 하나를 완전히 이해할 때 느껴지는 쾌감때문이었을까, 인류의 역사를 일군 지성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에서 황홀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그저 공부를 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고, 그 펄떡이는 맥박과도 같은 확신이 서울의 더러운 공기 안에서도 나를 숨쉬게 만들었다. 그게 내가 발견한 ‘나다움’이었다. 그걸 막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숨이 막히는 듯한 절박함을 느꼈다. 공부를 더이상 하지 못하는 환경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직장 두개를 때려치우고 나왔다. 어쩌면 두번의 좋은 기회가 내 삶에 찾아왔고, 그것을 그냥 포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학위를 받은 나에게 안정적인 삶이라는 보상이 두 번이나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제 한 학교로부터 최종합격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서울이 아닌 곳에 위치한 건실한 국립대인데 당장 올 3월부터 내려가 강의를 해야한다. 소식을 받은 어제는 매우 당황스러웠고 얼떨떨했다. 가족들이 오히려 흥분했는데, 정작 나는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어 별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하는 말만 반복했다. 뛰어난 논문을 쓴 것도,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것도, 견실한 강의경력을 보여준 것도 없었다. 길고 힘든 길을 시작하는 마당에 경험이나 쌓아보자는 생각에서 지원한 학교였다. 교수로서의 삶이 이렇게 빨리 올지, 이런 방식으로 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교수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은 거의 매일 해왔다. 하지만 정작 교수가 된다고 생각하니 그 어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교수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학문을 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학문을 하는 와중에 교수라는 직업이 주어지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큰 영광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 학교 근처에도 이니스프리 북스토어같은 커피숍이 있을까? 매일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려운 논문을 읽고 하루에 하나의 문장이라도 제대로 쓰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잠시 들려 따뜻한 커피를(이젠 커피다!) 마실 수 있는 그런 곳이, 그 학교에도 있을까? 내가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다독여줄 수 있는 그런 곳이 있을까? 지금 이미 그런 곳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내라는 든든한 커피숍이 내 옆에 있다. 그래서 이 길고 긴 여정이 더이상 외롭거나 힘들지 않다. 낯선 곳으로 또다시 이주해야 하는 현실도 두렵지 않다. 더이상 혼자가 아님에 감사한다. 그리고 아직 나의 여정이 끝나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여전히 공부를 못하고 머리도 좋지 못한 나이지만, 다시 한번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기회를 ,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음에 감사한다. 이렇게 또 열심히 살아보겠다.

18 thoughts on “한 곳

  1.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꾸준히 노력하시고 누구든 공평하게 인격적으로 대하는 교수님이 되실 것 같아서, 벌써부터 제자들이 부럽네요.

    • 치니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저는 실감이 나지 않아요. 그곳에 실제로 가서 보고 느껴야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좋은 연구하고 좋은 강의 할 수 있도록 노력 많이 할게요.

  2. 오랜만에 블로그를 찾아왔는데, 좋은 일이 있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대학에서도 많은 일을 겪으실 듯 싶지만, 유쾌하게 극복하고 많은 학생 분들께 큰 힘이 되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저도 드디어 합격했습니다. 티오 대란으로 인해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지만, 8년간의 수험생활을 끝내게 되어 저도 기쁩니다. 이제 아스날 경기를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을 듯 싶습니다.

    P,S 실례지만, 혹시 어느 지역 국립대에서 근무하시나요? 저도 이번에 지방으로 가게 되는터라 뭔가 더 반갑네요. 저는 충북으로 갑니다.

    • 우리의 아스날은 산체스를 미키테리안으로 바꿔먹고.. 과연 편안히 볼 수 있을까요? ^^**

      축하드립니다. 이제 당분간 푹 쉬실 수 있겠네요. 부디 흔들림 없이 평화로운 나날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도 충청도로 가요 ㅎ

    • 잊지 않고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축하해주셔서 또 감사드리고요. 앞으로 제 삶이 많이 변할텐데, 그 순간마다 지켜봐주세요.

  3. 축하드립니다:)
    블로그 글들이 좋아서 몰래 읽고만 가다가 좋은 소식은 그래도 같이 축하드리고 싶네요 :)

    • 항상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축하해주셔서 더 감사하구요. 넘치는 행운을 받았으니 그만큼 더 열심히 살게요.

  4. 아주 오래전에 종혁씨가 그런 글을 썼었어요.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면 그 바라는 모습 그대로 살 순 없다해도 그 근사치로는 살 수 있다고. 아마도, 제 기억이 맞다면, 종혁씨의 선배나 친구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쓴 것 같아요.
    이 글을 읽으니 그 때 읽었던 글 생각이 나면서, 종혁씨는 바라는 바를 향해 묵묵히 잘 나아가고 있구나, 생각을 하게 되네요. 축하해요. 잘되었어요. 거기서도 잘 할거라 생각해요. 사람은 결국 자신이 바라보는 바를 향해 걷기 마련인가봐요.
    :)

    • 다락방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맞아요, 제가 그런 글을 적은 적이 있죠. 유학 시절 제가 존경하던 한 선배가 해준 말이었어요. 이젠 제가 그 말을 후배들에게 해주고 있네요. 당장의 결과가 보잘 것 없더라도 꾸준히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가다보면 어느새 꽤 그럴듯한 성취가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소식은 블로그를 통해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5. 블로그 주소 보고 놀러와봤어. 너무 멋지다 종혁아! 너의 글 속에 묻어있는 네 생각도 참 멋지고. 새로운 곳에서 펼쳐질 삶 또한 너답게 근사하게 살 것 같네! 네 멋진 짝꿍과 그 곳에서도 즐거운 하루하루 보내길 바래!

    • 예리야~ 고맙다! 우리 부부 모두 대전에 연고가 전혀 없어서 두렵기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기대가 되기도 해. 종종 소식 전할게.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교수가 되어야죠. 그래야만 할 것 같아요. ㅎ

  6. 종혁님. .간간이 소식 듣고 있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정말 자기 자신의 의지?를 알고, 그걸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아니한듯 합니다.

    저도 용기 많이 얻고 있습니다.

    새로운 학교에서도 건승(?) 하시고요^^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막 개강 첫주를 보냈는데 너무 정신없고 힘들어요 ^^ 이럴려고 교수됐나 자괴감 들.. 은 농담이고요, 힘들지만 기쁘게 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시는 길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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