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로너건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 by sea
아마존을 통해 배급되고 성추문에 휩싸인 배우 케이시 애플렉이 주연한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영화를 둘러싼 그 모든 주변적인 이야기들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함을 일깨우는, 다른 말로 하면 영화를 읽어내려가는 데 있어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중요한 요소는 영화가 가진 본질적인 힘 그 자체뿐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구조는 다층적이며 촘촘하고 빈틈이 없다.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장면 하나, 대사 하나에도 영화가 제시하는 주제의식의 무게가 묵직하게 실려있다. 배우들은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선보이며 서사구조는 완벽에 가깝다. 미국 동북부의 작은 해안도시가 갖는 황량하고 쓸쓸한 이미지는 영화의 조연으로 묵묵히 힘을 보탠다.

세상의 바닥 끝까지 떨어진 한 남자가 감정을 거두어 들인채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것처럼 생활한다. 그러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은 충동적인 반사회적 행동을 통해 현실의 거울에 비추어진다. 그가 아마도 거의 유일하게 의지했을 가족이었던 형의 죽음으로 인해 찾아온 철부지 조카의 후견인 역할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도망치려 하는 그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모른채 절망하는 그에게 세상은 잔인하게도 당연히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요구해온다. 갑자기 인서트되는 과거회상 장면은 지나칠 정도로 장엄한 배경음악과 함께 현재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절제하려 하는 그의 내면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미칠 것 같은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찰서에서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이미 충분히 무너져내린 그에게 세상 물정을 모른채 아버지의 배를 고집하는 조카의 어린 영혼은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세상이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사랑이 솟아나고, 절망의 끝에서 한줄기 희망을 본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의 상황이 담담히 묘사되는 가운데 영화는 묘하게 희망적인 방향으로 조용히 나아간다. 독한 말을 쏟아내었던 것을 사과하고,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 그렇게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 등과 어깨와 손을 내어주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다. 낡은 배의 모터를 다시 달고 어딘가 처박아 두었던 낚시대를 다시 꺼내 조용히 세상과 마주하는 엔딩씬에 다다르면 이 영화가 마법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영화적 마법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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