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톤스의 예상치 못한 선전

지난 10년동안 디트로이트 피스톤스(Detroit Pistons)는 ‘세상 재미없는 팀’의 전형이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고 수퍼스타를 길러내지도, 영입하지도 못했다. 구단의 소유주는 바뀌었지만 구단 운영진의 열정이 되살아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미시건 지역의 농구팬들은 경기장을 떠나 풋볼이나 하키 경기장으로 떠났고, 그 어떤 경기도 매진되지 않았다. 텅텅 빈 경기장과 4쿼터에 곧잘 따라잡히고 마는 의욕없는 경기력이 지난 10여년 피스톤스를 상징하는 이미지였다. 스탠 밴 건디(Stan Van Gundy)가 새로운 단장이자 감독으로서 전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ESPN 트레이드 머쉰에 중독되었나 의심이 될 정도로 선수단을 빠르게 갈아엎었다. 수많은 트레이드가 행해진 결과 단기간만에 선수단은 밴 건디가 원하는 선수들로만 채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높은 곳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10년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지난 시즌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된 선수는 팀의 주축인 안드레 드러먼드(Andre Drummond)와 레지 잭슨(Reggie Jackson)이었다. 이 둘은 부상과 불화로 팀의 근본을 흔들어놓았다. 지난 시즌이 마무리된 후 이 두 선수가 트레이드 시장에 나왔다는 루머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피스톤스는 다시 무너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예상 외로(?) 드러먼드와 잭슨은 팀에 남았고, 건강하게 트레이닝 캠프를 소화했다. 밴 건디는 드래프트에서 듀크(Duke) 대학의 백인 슈터 루크 케나드(Luke Kennard)를 뽑았다. 팀이 애지중지 키웠던 3-and-D의 전형 캔타비우스 칼드웰-폽(Kentavious Calwell-Pope)을 FA로 떠나보낸 대신 또다른 젊은 육성 선수 스탠리 존슨(Stanley Johnson)과 포지션이 중첩되었던 베테랑  마커스 모리스(Marcus Morris)를 보스턴 셀틱스의 가드 에이브리 브래들리(Avery Bradley)와의 트레이드로 떠나보냈다. 드래프트에서 2번을 뽑고 트레이드로 또 2번을 영입한 행동이 처음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차라리 모리스와 레지 잭슨을 묶어서 더 좋은 1번을 영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밴 건디는 FA로 랭스턴 갤러웨이(Langston Galloway)를 영입했다(!). 샐러리 캡을 장기간 잡아먹는 평범한 선수의 영입은 밴 건디가 보여주는 특기 중 하나다. 이미 팀에는 이쉬 스미스(Ish Smith)가 백업 가드로 자리잡고 있던 상황이었다. 갤러웨이는 2번으로는 너무 작았고 1번으로는 운영능력이 부족했다. 이렇게 또 망하나 보다 싶었다. 요즘 리그가 아무리 가드의 세상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피스톤스는 시즌을 잭슨-브래들리-존슨-토비아스 해리스(Tobias Harris)-드러먼드의 주전 라인업으로 출발했다.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존슨은 슛을 쏘지 못하는 3-and-D, 그러니까 오클라호마 시티(Oklahoma City)의 안드레 로버슨(Andre Roberson)과 비슷한 타입의 선수였다. 0-and-D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했다. 브래들리 역시 3점이 없었다. 잭슨은 지난 시즌 이기적인 모습으로 팀의 화합을 해쳤다. 해리스는 3번에서는 느리고 4번에서는 약한 트위너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드러먼드는 30%대 자유투 성공률로 인해 4쿼터에 코트위에 있을 수 없음을 지난 5년 간 증명한, 반쪽짜리 선수였다. 4쿼터에 뛰지 못하는 드러먼드를 대신해주었던 애런 베인스(Aron Baynes)는 보스턴으로 떠났다. 백업가드 이쉬 스미스는 경기운영만큼 따라주지 않는 슛이 문제였다. 아무리 동부지구가 약해졌다지만 이런 라인업으로는 10,11위 쯤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팀당 약 20경기 정도를 치룬 현재 피스톤스는 13승 6패로 동부지구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정도면 우연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어제 있었던 동부지구 1위 보스턴 셀틱스(Boston Celtic) 원정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꽤 인상적이었다. 이 팀이 우연한 성공(fluke)을 거두고 있지 않음을, 생각 외로 단단한 경기력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음을 증명한 경기였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우승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Golden State Warriors)를 원정에서 잡아내기도 했다. 시즌 전 수퍼스타들이 한 팀에 모이는 합종연횡이 만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도깨비팀들이 많이 등장하고 팀간 격차가 해소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미스테리한 시즌이긴 하지만, 피스톤스가 보여주는 시즌 초반의 성공은 근본적인 변화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먼저 변화의 중심에는 드러먼드가 있다. 그의 자유투 성공률은 현재 60%를 상회한다. 폼이 극단적으로 변했다. 가상현실(VR) 장치를 착용하는 등 별의별 우스꽝스러운 시도를 했던 드러먼드는 시즌 전 기간 트레이너 아이단 라빈(Idan Ravine)과의 훈련을 통해 자유투 성공률을 극적으로 상승시키는데 성공했다. 30%대에서 60%대로의 자유투 성공률 진화는 상대팀으로 하여금 더이상 드러먼드에게 고의파울을 범할 수 없게 만들었다. 4쿼터에도 코트 위에서 페인트존을 장악하며 리바운드를 걷어낼 수 있게 되었고, 효율성은 증대됐다. 드러먼드가 코트 위에 더 오래 있을 수 있게 됨에 따라 밴 건디는 그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자유투 라인 바깥에서 공을 잡은 뒤 컷인해 들어가는 스윙맨들에게 공을 공급하는 패서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덕분에 그의 경기당 어시스트 수치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새롭게 영입된 브래들리의 빠른 움직임 덕분이다. 공을 만져야만 움직이는 게으른 레지 잭슨과 달리 브래들리는 리그에서 가장 빠르게 수비수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선수이고, 이 점이 드러먼드의 볼핸들링 재능과 합쳐져 좋은 작전 몇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브래들리의 이러한 움직임은 리그에 존재하는 빅포워드 중 공없는 움직임(off the ball move)이 가장 좋은 선수 중 하나인 토비아스 해리스와 융합되어 상승작용을 더 크게 불러일으킨다. 마치 2000년대 초중반 피스톤스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던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이 재림한 듯한 모습이다.

브래들리가 팀에 가져다준 긍정적인 영향은 공격 뿐 아니라 그의 큰 장점 중 하나인 수비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단순히 패싱 레인을 차단하고 대인 방어를 성실히 수행하는 차원의 ‘좋은(good)’ 수비수 정도에 머물렀던 칼드웰-폽에 비해 브래들리는 통계수치로 확인되지 않는 ‘훌륭한(great)’ 수비수로서의 모습을 경기 내내 보여주고 있다. 수비면에서의 그의 리더쉽은 역시 ‘좋은’ 수비수 정도로 평가받았던 스탠리 존슨의 수비적 재능을 최대한 이끌어내었을 뿐만 아니라 최종 방어선을 담당하는 드러먼드의 부담도 줄여주었다. 결국 전체적인 팀 수비능력 자체가 브래들리로 인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애런 베인스를 대체하기 위해 영입된 에릭 모어랜드(Eric Moreland)가 리바운드와 허슬에서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주고 있는 점도 수비면에서 긍정적인 요소다.

공격면에서는 해리스의 성장과 이쉬 스미스의 에너지가 눈에 띈다. 해리스는 데뷔 후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몸은 한결 가벼워 보이고 3점 라인 바깥에서 충분히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번과 매치업되면 몸으로 밀어 버리고 4번과 매치업되면 가볍게 제쳐버린다. 공 없는 움직임이 워낙 좋다보니 수비가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도 자주 연출된다. 단순히 올시즌 몸상태가 좋아서 반짝한다고 하기엔 3점슛의 정확성이나 골밑에서의 마무리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이 눈으로 확인된다. 더 좋은 선수가 된 것이다. 그는 아직 25세에 불과하다. ESPN의 잭 로우(Zach Lowe)가 최근 팟캐스트에서 이야기했듯 때때로 젊은 선수의 성장곡선은 신인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도 급격하게 상승하기도 한다. 해리스가 좋은 예이다. 이쉬 스미스는 벤치에서 힘을 충분히 보태고 있다. 올시즌 슈팅능력이 많이 좋아지면서 여전히 비효율적인 레지 잭슨을 적절히 코트 밖으로 밀어내고 충분한 출전시간을 확보하였다. 현재 피스톤스가 10점차 이상 뒤쳐졌을 때 이를 따라잡고 역전시킨 경기가 리그에서 가장 많은데, ‘추격조’의 선봉에 서서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가 바로 이쉬 스미스다. 정적인 공격에 특화된 레지 잭슨의 적절한 대체재로 기능하는 셈이다.

레지 잭슨은 여전히 레지 잭슨이다. ‘건강한’ 잭슨이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잭슨의 스타일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플레이오프 진출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와 이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공격에서 리그 최정상급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수비에서 구멍과도 같은 짐이 되고 있다. 그의 클러치 능력은 과대평가되었다. 경기 내내 말아먹어서 따라잡히다가 막판에 빅샷 한두개 터뜨린 뒤 좋아하는 모습에 속에서 열불이 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밴 건디에게 잭슨은 올랜도 매직(Orlando Magic) 시절 자미어 넬슨(Jameer Nelson)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슈터에게 적절한 시점에 공을 공급하고 빅맨과의 투맨게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만 하면 우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그의 흐름은 그 당시와 달리 코트의 각 구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고 포지션의 구분 역시 급격하게 파괴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포인트 가드는 공을 운반해야 할 의무에서 벗어난 대신 적극적으로 골밑을 공략하고 빅맨과 스위치되어도 밀리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임무를 새롭게 부여받게 되었다. 잭슨은 최근 흐름과 상반되게 지나치게 공을 오래 소유하고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고, 힘이 그리 센 편도 아니다. 이런 유형의 선수로 리그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워싱턴(Washinton Wizards)의 존 월(John Wall) 정도는 되어야 한다. 잭슨의 이러한 성향은 슈터들의 움직임을 최대치로 살려내지 못하고 빈 공간을 적절하게 찾아내지 못하게 만든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잭슨은 피스톤스의 가장 큰 불안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시즌의 중반을 통과한 지점에서 피스톤스가 여전히 동부지구 상위권에 위치할 수 있을까? 드러먼드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자유투 성공률 60% 이상을 기록할 수 있을까? 레지 잭슨의 무릎은 언제쯤 다시 주저앉을까? 루크 케나드와 스탠리 존슨은 언제쯤 효율적인 슈터로 발전할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헨리 엘렌슨(Henry Ellenson)이 앤소니 톨리버(Anthony Tolliver)를 제치고 벤치에서 처음 나오는 포워드가 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까(언제적 톨리버냐 대체 언제적!)? 이 팀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그 누구도 현재와 같은 팀의 선전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며, 이러한 팀의 발전이 우연이 아니라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처럼 4쿼터까지 끈끈하게 달라붙는 모습을 시즌 마지막까지 보여준다면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관건은 드러먼드를 얼마나 코트 위에 오래 세워둘 수 있을 것이냐, 3점 라인 밖에서의 효율적인 슈팅 관리가 지속적으로 가능할 것이냐, 이쉬 스미스 외에 벤치에서 나와 흐름을 바꾸어줄 디퍼런스 메이커(difference maker)가 존재하느냐 정도로 보인다. 어쨌거나 이 팀이 예전보다 훨씬 재미있어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세상 재미없는 팀’에서 꽤 주목해서 보아야할 팀 정도로 성장한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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