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침묵

침묵
[침묵]은 원작이 있는 영화다.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충실히 따랐다고 한다. 두 번 정도 등장하는 반전이 영화의 주된 셀링포인트는 아닌 셈이다. 결말의 묵직한 한 장면을 위해 구성요소의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 영화가 내세우는 마지막 ‘한방’은 뜬금없는 부성애다. 사랑하는 여자가 갑자기 사망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하나뿐인 딸이 지목된다. 인생의 큰 위기에 봉착한 주인공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세상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막강한 재력으로 보인다. 영화는 권력에 아부하고 진실을 왜곡시키기 위해 애쓰는 그의 낮은 모습을 강조하지만, 결말 부분에 이르러 그 모든 과정이 애인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지켜내려는 남자의 고귀한 희생을 위한 장식품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아버지’와 ‘애인’은 현대를 살아가는 건조한 한국 남성에게 부여되는 가장 애틋한 역할이다. 이 두 지위를 낭만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마지막 몇 장면이 존재하고, 영화의 서사구조는 이 몇장면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비틀거린다. 설정은 억지스럽고 등장인물의 성격은 서사를 의해 종종 희생되어 일관성을 상실한다. 박신혜가 연기한 변호사 역이 특히 그러하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서사구조를 부분적으로 구원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주인공 남성을 연기한 최민식이나 류준열의 연기는 일차원적이고 식상하다. 오히려 영화에서 적극적으로 대상화되는 두 여인, 애인과 딸을 연기한 이하늬와 이수경의 연기가 뛰어나다. 비록 그 좋은 연기력이 그릇된 서사를 위해 낭비되고 있다고 해도 그들이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w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