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bellhooks
저명한 페미니즘 이론가인 벨 훅스(bell hooks)가 쓴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이론의 개론서라기 보다는 페미니즘 운동의 선언서(manifesto)처럼 읽힌다. “페미니즘은 ~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분석적 문장보다는 “남성은~ 여성은~ ~해야 한다”의 형식을 갖는 정언명령적 신념이 느껴지는 문장이 훨씬 많이 존재하는 책이다. 아마도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게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라는 정의로부터 출발하여 이 정의를 확장시키는데 집중하는 이 책이 가진 태생이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하나의 ‘운동’에 대한 개괄서로 충실히 기능하고 있다. 때문에 학문적인 엄밀성, 혹은 중립성을 이 책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수필에 가깝게 읽힌다. 먼저 벨 훅스가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이룩한 대부분의 성취는 아무런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고 오로지 훅스와 그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 의존한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학자로서 벨 훅스가 받는 대부분의 비판 역시 이러한 모호성에 기인하고 있다. 그녀의 책에는 주석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학문적 전문용어(jargon)가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최대한 많은 대중에게 읽혀지기 위해서” 이러한 글쓰기 방식이 고수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책을 읽는 대중의 수준을 – 전문용어의 장벽을 넘을 수 없을 정도로 – 낮추어 보는 것 아니냐는, 즉 학자적 엘리트주의의 기형적 발현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학문적 전문용어는 미세한 차이조차 뭉뚱그려 대충 넘어가지 않으려는 학자적 완고함에 기인할 뿐이다. 상아탑에 스스로를 가두고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어쩌면 이제 주류 페미니즘 학계에서 비주류로 밀려난 노학자가 더이상 동료 학자를 상대로 글을 쓰지 않고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옵션이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일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혁명적 페미니즘’의 시선에서 쓰였다. ‘개혁적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도, 혹은 남성중심주의와 함께 이 책에서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저자와 다른 생각을 가진 페미니즘 운동은 “기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페미니즘의 실천은 상호성의 토양을 만드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사회운동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순간을 자주 마주치게 될 정도로 적대적인 자세를 견지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어쩌면 페미니즘이 가진 한계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차별주의’ 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정의된 벨 훅스의 페미니즘은 반대하는 대상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상대적 개념에 가깝다. 혁명적 페미니스트는 현 체재를 전복시키고 페미니즘에 근거해 새로운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유토피아적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교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혁명적 페미니즘이 반대한다는 ‘성차별주의’에 대한 정의, 혹은 자세한 묘사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 역시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반대할 대상이 구체적일수록 목적은 분명해지고 공격은 정교해진다. 성차별주의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자세히 알기도 전에 선동적 문구에 의해 고무를 당하면 어리둥절해질 뿐, 쉽게 몸과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이들에게 널리 읽혀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세계에 만연해 있고 우리나라에도 뿌리깊게 박혀있는 부조리한 남녀 불평등 구조를 깨기 위해 페미니즘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사회적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페미니즘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보다 존재하는 세상이 훨씬 더 살만하다는 생각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들이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유리천장에 머리를 찧고 있다. 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은 세상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남녀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좋은 프리즘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벨 훅스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신념은 페미니즘이 자만에 빠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좋은 채찍질과도 같다. 페미니즘은 계급투쟁과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거친 서구사회가 투쟁 속에서 노골적인 남녀차별을 경험한 뒤 발생한 역사적 부산물이다. 때문에 백인, 중산층, 지식인에 의해 초기 페미니즘이 주도될 수 밖에 없었고, 노동계급, 유색인종, 저학력계층은 초기 페미니즘 운동에서 주변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다. 벨 훅스는 초기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던 계급적, 인종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페미니즘은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 현 시대에 당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안, 혹은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마지막 두 장에서 ‘영성’과 ‘교육’으로 성급히 결론내릴 때 힘이 약간 빠질 정도였다) 그 대신 벨 훅스와 그 주변인들이 성취한 운동의 성과물을 나열하고 그 결과 훅스가 갖게 된 신념의 뿌리가 무엇인지 설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훅스의 이론 자체가 페미니즘의 역사와 함께 한다면, 그녀가 가진 페미니즘에 대한 신념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 페미니즘 운동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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