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추석맞이 여행

아내와 나는 지난해 4월 처음 만났고 9월 즈음에 결혼을 결정하여 12월에 식을 올렸다. 좋게 말하면 화끈하게 ‘눈이 맞은’ 셈이고 조금 덜 좋게 말하면 꽤 급하게 서두른 셈이다. 남들이 한참 연애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기도 바쁜 시점에 결혼을 선택한 우리는 아직 서로 모르는 것들이 많다. 상대방에 대해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아가고 배우며 관계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결혼생활의 큰 기쁨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지라 일상에서 사소한 차이들을 발견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인데,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평소에 쉽게 알아내기 힘든 부분이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예를 들면 ‘뿌리’가 그렇다. 이건 주로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내와 내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그 역사를 공유하는 것은 우리의 주된 대화주제 중 하나다. 결혼 후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내가 형성해온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역추적해나가는 일인데, 한국에서 쉽게 발견하기 힘든 독특한 아내의 성격은 내가 결혼을 서두른 가장 큰 이유이자 요즘 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기에 그녀의 성격이 꽃망울을 맺기 전 물과 햇빛을 흡수하며 자란 ‘뿌리’가 어떤 모양인지 찾고 싶은 마음도 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몇 대에 걸친 한 가족의 역사는 한 시대의 기록일 수도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명절 연휴에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만나기 전 함께 살던 이들의 모습을 접하고 그들의 삶에 함께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현재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나를 만나기 전의 아내의 모습을 마음과 머릿속에서 복원해나가는 과정은 그녀의 가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석인 셈이다.

이번 추석은 개천절과 한글날, 임시공휴일 등과 함께 어우러져 꽤나 긴 연휴를 선사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자동차를 이용해 창원과 함양 두 곳에 계신 부모님댁에서 각각 두번의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창원에서 평소보다 긴 기간 머무르는 동안,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을 분들을 만났고 평소에는 안부를 묻기 바빠 꺼내기 힘들었을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아내의 밝고 넘치는 긍정 에너지가 어디로부터 흘러 들어왔는지 조금 더 소상히 알 수 있었다. 아내와 닮은 얼굴을 가진 분들을 만났고 아내와 비슷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분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몹시 소중한 경험이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결혼생활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아내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열린 기회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함양에서는 내가 잊고 있던, 혹은 내가 몰랐던 나의 과거를 가족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내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아내에게 직접 전해줄 수 없었던 내 가족의 뿌리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할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기억까지, 그 과정을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함양에서 만난 조카들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과 늙은 고모님들을 뵐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영광이었다. 새롭게 자라나는 생명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황홀하다. 그것이 사랑하는 내 누니의 자식들이라면, “삼촌”과 “외숙모”라고 부르며 품에 안기는 경험까지 선사해준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예전에는 높고 커보이기만 했던 고모님 세 분은 작년 삼촌이 돌아가신 후 부쩍 더 야위고 늙어 보였다. 너무 빨리 떠난다며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노인이 된 셋째 고모는 무릎이 아파 잘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땅콩을 한가득 삶아 검은 봉다리에 담아 우리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가 나에게 선물한 2002년식 렉스턴은 아직 잘 굴러가고 있다.

우리는 창원과 함양에서 기분 좋게 살이 쪄서 돌아왔다. 나의 뿌리와 아내의 뿌리에 대한 조금 더 강한 확신과 함께 돌아왔다.

2017추석2

사람마다 각기 다른 천성을 타고난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첫째 조카 건이는 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의 부모는 그 어린 영혼이 상처받지 않도록 잘 보살펴주고 있다. 건이가 “외삼촌”과 “외숙모”를 그려주었다. 액자로 만들어 걸어둘 생각이다.

2017추석3

아내를 만나기 전 창원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직 이 도시의 많은 것들이 새롭고 재미있다.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오래된 아파트 역시 나에게는 아내와 그녀의 가족의 채취가 짙게 묻어있는 소중한 역사적 공간으로 다가온다.

2017추석1

컨디션이 좋지 않아 방에서 쉬고 있던 아내를 굳이 주방으로 끌어내어 요리를 부탁했다. 아내는 누나네 부부가 사온 돼지 삼겹살을 이용하여 두루치기를 뚝딱 만들어냈다. 나는 밥을 망쳤지만 두루치기가 너무 훌륭했던 덕분에 아무도 질척이는 밥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내가 만든 두루치기 덕분에 우리 모두는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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