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스미스: 저스트 키즈

저스트키즈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보았을 때 시대를 읽을 수 없었다. [Horses]가 70년대 중반 발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고, 그녀가 당시 서른살에 가까운 나이었으며 나의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그녀의 음악은, 그녀가 풍기는 아우라는 시대를 지워버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나는 패티 스미스를 시대를 앞서나가다 못해 시대를 다시 정의내린 전설적인 뮤지션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는 뛰어난 시인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 혹은 인기있는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그녀의 화려한 레쥬메를 보면 태어날때부터 예술가라는 직함을 부여받고 찬란한 꽃길만 걸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직접 쓴 회고록 [저스트 키즈]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스트 키즈]는 패티 스미스가 젊은 시절 동반자이자 평생의 소울메이트였던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시카고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교대를 중퇴하고 빈털터리 상태로 뉴욕으로 건너올 때까지 그녀의 삶에서 대중이 유명 예술가의 유년시절을 추측할 때 흔히 등장하는 독특한 환경같은 것은 딱히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녀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조금 더 가혹한 가난을 택했고, 그 대가로 60년대 중반 뉴욕의 들끓는 공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끼니를 해결하는 삶을 살던 중 역시 뉴욕의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났고, 각자의 외로웠던 가난은 두명이 함께 하는 희망섞인 가난으로 그 색깔을 달리하게 되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뉴욕의 중산층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프랫에서 예술을 전공했지만 정식으로 학위를 마치지는 못하고 뉴욕 이곳 저곳을 떠돌던 터였다. 이 둘은 뉴욕의 뒷골목을 전전하며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갔다. 이 책은 지나가던 노부부가 “쟤네 그냥 애들(just kids)이잖아”라고 부른 한 젊은 남녀가 혹독한 가난과 싸우며 시대를 뒤흔든 예술가로 성장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대부분은 60년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패티 스미스가 [Horses]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시기, 그리고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특유의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흑백사진으로 뉴욕 사진계에서 명성을 획득하기 시작한 시기는 70년대 중반 이후로, 당시 이 둘은 동거관계를 정리하고 각자 다른 연인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을 때였다. 즉, 스미스와 메이플소프가 적극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획득하던 시기는 이들의 전성기와 제법 시차가 있는 편이다. 때문에 스미스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회복한 이후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뉴욕 펑크씬의 대모로 불리우는 스미스의 회고록에서 음악팬이 쉽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당시 뉴욕 음악씬의 생생한 묘사라던가 전설적인 아티스트와의 교류같은 이야기 역시 사실 이 책의 중심내용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그저 간략하게, 스쳐지나가듯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패티 스미스가 어떻게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났고, 어떻게 함께 가난과 싸워 나갔으며, 얼마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사랑했고 또 어떻게 이별하게 되었는지, 헤어진 이후에도 어떻게 관계를 지속해 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메이플소프는 89년 에이즈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하기 전 스미스에게 자신과 스미스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 책은 그 유언에 대한 스미스의 실행인 셈이다. 그래서 그녀가 발표한 그 어떤 작품보다 개인적이고 진솔하다. 패티 스미스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메이플소프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풋내기 예술가에 불과한 이 둘이 서로의 작품활동에 깊게 관여하면서 각자의 재능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전문영역을 발견하는 과정, 그리고 연인으로 시작했지만 메이플소프가 성정체성 및 성적취향을 깨달은 뒤 이를 받아들이고 소울메이트로 관계를 서서히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평론으로 시작해 퍼포먼스, 시를 거쳐 음악이라는 영토에 당도했고, 메이플소프는 콜라쥬와 폴라로이드를 지나 핫셀블라드를 만났다. 서로가 없었다면 결코 7,80년대의 영광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찬란하지만 가난했고 아름답지만 비참했던 60년대 젊은 시절에 대한 기록이 소중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사망하기 며칠 전, 침대에 누운 메이플소프가 스미스에게 물었다. “패티, 우리가 진정 예술을 찾은 걸까?” 눈길을 피한 패티 스미스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두 명의 예술가가 함께 걸어온 길, 그 길의 끝에서 확인하고픈 것은 예술적 성취의 물리적 결과물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함께 걸어온 길이 나쁘지 않았음을, 사실은 참 좋았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미국판 표지.

just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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