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름도 인생의 동반자인가

열네살 이후 지금까지 여드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였다. 매일 거울을 보아야 했기 때문에 여드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여드름이 특히 심하게 났던 중학생 시절 사진을 찍히기 싫어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당시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아니 내 방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싫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확정지은 뒤 열심히 병원을 다닌 결과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조금 나아질 수 있었고 대학교에 다닐 때 쯤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었지만 얼굴에 여드름이 하나도 없던 날은 열네살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없었다. 화농성이라고 불리우는 새끼 손가락 손톱만한 크기의 빨간 여드름이 얼굴 어딘가에 반드시 최소한 하나는 존재해왔다. 이런 류의 여드름은 단순히 크고 흉해보이는 것 뿐 아니라 실제로 많이 아프다.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을 정도의 통증이 함께 한다.  그 큰 여드름이 혹여나 밖에서 터질 때면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피와 고름이 주륵 흘러내려 얼굴을 더렵혔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을 수도, 수건으로 얼굴을 시원하게 닦을 수도 없다. 나도 좁쌀만한 여드름 하나 정도로 불평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난 20여년 동안 거의 매일 했다. 대화의 상대방이 내 얼굴 어딘가에 있는 여드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무덤덤해졌고 심지어 “피부 좋아졌다”고 축하해주는 중학교 시절 친구들의 인사에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열네살 이후 단 하루도 얼굴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얼굴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용기를 내야 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도 굳은 결의가 필요하다. 내 자신감의 상당 부분을 여드름이 빼앗아간 것이다. 성격은 조금 더 심하게 내성적이 되어갔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거의 확실하게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이 여드름을 물려준 아버지의 얼굴에 최근까지 여드름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아토피를 물려주었고 아버지는 여드름을 물려주었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게 그보다 더 나은 것들을 많이 물려주었다. 그래서 딱히 원망하지 않는다) 몸과 얼굴을 괴롭히는 피부 트러블은 아마도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오늘 아침 아내는 내게 “여드름을 평생 함께 하는 친구처럼 생각해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맞는 말이다. 존경하는 교수님 한 분은 몇년 전 “암을 이기려 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처럼 생각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결국 암으로 돌아가셨지만 마지막까지 절망하지 않으셨다. 여드름이 사람을 죽이는 질병은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공존의  여지가 있는 녀석이다. 이 커다란 여드름이 인생의 2/3 가량을 따라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도 했으니 충분히 성공한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기운이 빠지는 이유는 여드름의 존재 자체때문은 아니다. 여드름과 함께 잘 살아보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 친구는 그런 나의 노력을 가볍게 무시하듯 늘 자기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여드름에게 어느 정도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살고 싶지만, 그는 늘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아무런 예고 없이 자리잡고 앉아 지칠때까지 물러나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르고 제발 사라져달라고 빌고 또 빌어도 생각보다 항상 더 오래 남아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펑- 하고 터져 피와 고름으로 얼굴을 더럽힌다. 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지만 그 중 역시 가장 어려운 상대는 내 얼굴에 나는 여드름이다.

나도 가끔은 말끔하게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깔끔한 얼굴로 살아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찰나의 멋부림조차 허락하지 않는 여드름이 때로 야속하고 밉기까지 하다. 내 여드름의 근원적 성정을 탐구하기 위해 피부과 의사가 되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난 수많은 피부과 전문의 중 그 누구도 내 여드름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경험을 통해 현대의학의 한계 또한 절실히 느낀다!) 피부 하나때문에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기운 빠지는 일이다. 아버지처럼 나도 환갑이 넘은 나이까지 깨끗한 얼굴을 가질 수 없는 운명이라면, 20년 넘게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얼굴 위 여드름을 통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대체 어찌해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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