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올림픽대로

요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출퇴근하고 있다. 구구절절한 이유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간단히 적자면 이직 이후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삶에 상당한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직 이후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같은 여의도 안에서의 이직,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과 몇키로 움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15분 이상 늘어난 출퇴근 시간이 괜히 억울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더운 여름 기간 아침과 저녁 시간을 자동차 안에서 보내는 중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우선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포기한 대신 듣고 싶은 것을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출퇴근길은주로 팟캐스트가 함께 한다. 15년이나 된 차라 AUX 하나 없고 스피커도 좋지 못해서 음악을 한시간 정도 듣다 보면 귀가 쉽게 피로해진다. 차라리 영어 듣기 능력이나 계속 유지시키자 싶어 음악, 스포츠, 경제 등 다양한 주제의 팟캐스트를 듣는다. 팟캐스트에서 배우는 것이 상당히 많다. 요즘 회사 업무가 바쁜 편이라 시간을 내어 책이나 신문을 읽지 못하는 편인데 운전하는 동안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이것저것 좋은 정보를 전달받게 된다. 즐겨 듣는 팟캐스트 중 하나인 [NPR All Songs Considered] 진행자가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음악을 여유있게 들을 수 있어서 가끔 출퇴근길 교통체증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앞으로는 오디오북을 들으며 다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 운전하면 책 권은 다 듣지 않으려나?

운전을 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보다 출퇴근 시간을 드라마틱하게 줄이지는 못했다. 출근길은 예전 한시간에서 45분쯤으로 약 15분 정도 줄어들었고, 퇴근 시간에는 정시 칼퇴근의 경우 운전할 때가 더 오래 걸린다.  야근을 하고 9시쯤 회사를 나서면 집까지 30분에 갈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이 것때문에 야근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에 막히더라도 일이 없으면 일찍 나오는 편이다. 집에 도착할 때 쯤엔 무릎이 시큰거리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면 이 편이 훨씬 낫다고 느낀다. 시간적인 요소를 떠나 운전을 매일 하면서 좋은 것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부대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요즘들어 갈수록 신경질적이 되어가고 있다. 타인에게 화를 낼 기회만을 엿보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은데, 특히 출퇴근길에 주변의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물론 운전을 해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치긴 한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드는 차량은 너무나 쉽게 발견되어 마치 일상의 공기처럼 느끼게 되었다. 한국인의 창의적이고 빠른 두뇌회전 능력이 모두 얌체 운전으로 몰빵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불쾌한 신체접촉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운전이 주는 기쁨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출퇴근길 운전을 하면서 얻은 최고의 기쁨이자 전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은 올림픽대로라는 서울의 오래된 도로를 새롭게 발견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주로 강변북로를 이용했다. (나는 강북-made product니까!) 당연히 강변북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호로-뚝섬로-서빙고로를 따라 나가서 한남동 근처에서 강변북로에 합류한 뒤 공덕에서 마포대교를 건너서 여의도 둔치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일반적인 루트였다. 하지만 8시 출근길 강변북로는 너무 막힐 뿐 아니라 재미도 없었다. 왼쪽편으로 보이는 한강은 그리 예뻐보이지 않았다. 금호터널과 남산2호터널을 지나 삼각지를 통해 원효대교로 빠지는 시내를 관통하는 루트도 시도해봤지만 출퇴근길 시내운전은 넘치는 신호등보다 그보다 더 많은 불법 끼어들기 차량,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그리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밑져야 본전의 심정으로 동호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를 타고 출근을 해보게 되었는데 이 길 위에서 신세계를 맞이했다. 생각보다 막히지 않아 시간도 꽤나 단축시킬 수 있었을 뿐 아니라(주차장에서 주차장까지 30분 이내에 주파한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한강과 강 건너 강북 풍경은 예상외로 아름다웠다. 퇴근길 고속터미널이나 한남대교 남단으로 진출하는 나들목은 서울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운전경험을 선사하지만, 평일 퇴근 러쉬아워만 피한다면(그리고 아마도 주말 오후시간도 피해야 할 것이다) 금호동과 여의도를 오가는 올림픽대로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큰 스트레스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대로를 지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지하철과 기차가 다니는 한강철교와 한강대교를 지나칠 때이다. 날씨 좋은 날 올림픽대로를 지나갈 때 흘낏 올려 보게 되는 한강대교와 한강철교는 꽤나 인상적인 장면을 선사한다. 이건 근처 노들로에서 바라봐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노들로는 아파트들이 가로막는 구간이 꽤 될 뿐만 아니라 상습정체를 유발하는 구간이 있어 올림픽대로가 가장 좋은 목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강철교 아래를 통과할때 들리는 지하철, 혹은 기차의 그림자와 바퀴소리는 마치 서소문근린공원 앞 건널목에서 통과하는 기차를 바라볼 때의 그 기분을 환기시키는 듯 해 기분이 묘해진다.  퇴근길 여의하류 나들목을 빠져나와 여의도를 왼쪽편에 끼고 한강철교 방향으로 향할 때의 밤풍경도 근사하다. 다른 곳보다 가로등이 많아 환할 뿐 아니라 왼쪽으로 보이는 여의도와 마포구의 아파트, 빌딩들이 함께 밤을 더 환하게 밝혀준다. 지하철과 자동차가 함께 강을 건너는 동호대교를 매일 두번 건널 수 있다는 점도 나쁘지 않다. 한강의 다리들은 아무런 특색이 없는 회색빛을 띠거나 LED 조명 따위를 달고 우습게 보일 정도로 유치해지기 쉽상인데 동호대교는 한강에서 몇 안되는 운치를 가지고 있는 다리다. 동호대교를 건널 때 쯤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싶어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다. 좁은 금남시장 골목을 통과할 때 시장바닥에서 보이는 사람 사는 풍경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다.

한강은 서울이 가진 소중한 선물이다. 난개발이 망쳐놓은 스카이라인을 흉터처럼 가진 크기만 한 도시에 아름다움을 담보해주는 몇 안되는 보물이기도 하다. 그 한강변을 따라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오래되고 무거운 디젤차량을 타고 다녀서 자연에 대한 미안함을 떨칠 길이 없지만, 요즘 아침과 저녁이 그리 많은 스트레스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얼른 친환경 차량으로 바꿔서 미안함을 덜어야겠다. (..??)

 

2 thoughts on “출퇴근길 올림픽대로

  1. 제 출퇴근 길에는 금강이 있지요. 루트가 하나밖에 없는 단조로운 길이지만 퇴근길 금강을 지나는 다리 위 풍경 하나는 끝내줍니다. 카오디오가 좋지 않다면 쓸만한 블루투스 스피커를 활용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던데요?

    • 금강이라니.. 서울에서는 상상도 안되는, 한강과는 비교도 안되는 아름다운 출퇴근길이네요. 금강 지나시면서 음악 들으시면 정말 꿀맛이겠어요 ㅋ 저도 자동차 오디오시스템만 바꿔보자고 와이프님께 결재 부탁드렸습니다만, ‘어차피 넌 차를 새로 사고 싶은거잖아’ 라는 싸늘한 답변을 받았습니다.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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