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등장하는 아기들의 얼굴

30대 중반의 나이대로 접어들다 보니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SNS의 계정들이 올리는 그들, 혹은 그들의 주변인들의 아기들의 사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본인의 얼굴을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와 자신의 자식 사진을 올리는 행위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먼저 사진을 올리는 주체와 공개되는 피사체가 다르다. 둘째, 온라인 상에 공개되는 아기들의 경우 대부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진이 공개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나이대의 아기부터 SNS와 인터넷 매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나이대의 아이의 경우 부모가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사진 공개 의사를 타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대부분 실제로 그들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요즘 소위 “프로 불편러”들이 제기하는 것처럼) SNS에 등장하는 아기들의 사진은 자랑 일색이다. 사람에 따라서 본인의 사진을 올릴 때와는 확연히 다른 게시자의 ‘자세’, 혹은 ‘의지’가 느껴질수도 있을 정도다.

법적으로 부모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하고 부모가 상당 부분 권리와 책임을 가져가는 나이대에 있는 미성년자의 경우 그들의 초상권이 부모에게 전적으로 귀속되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공인’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미성년자의 초상권 문제가 어떻게 취급되는지 약간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귀차니즘으로 인해 자세히 찾아보지는 않았다. 다만, 본인의 허락 혹은 동의 없이 미성년자의 초상권이 부모에 의해 전용되는 상황을 윤리적인 차원에서 조금 더 고민해볼만한 지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아내와 나 역시 아이를 무척 낳고 싶어한다. 우리는 매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다가올 것으로 기대하는 우리의 아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형체조차 존재하지 않는 아이에 대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해진다. 우리의 눈에 얼마나 예뻐보일지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아마도 대다수의 부모들이 우리와 비슷한 심정으로 자녀를 기다렸을 것이고, 그들이 태어난 이후 본격적으로 실제적인 애정을 쏟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그 경험을 가까운 지인과 공유하고 싶을 것이다. 많은 지인들이 그들의 자녀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즉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녀의 사진을 공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인터넷과 모바일기기를 통해 굳이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지인을 닮은 그들의 자녀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편리한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남의 눈에도 그 아이가 이뻐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성인이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 세상의 모든 아기가 예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타인에게는 식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스쳐지나가는 어떤 얼굴로 기억될 수 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개된 사진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채 평범한 이미지로 소모되는 상황을 만약 그 아이가 성장한 후 알게 된다면? 그 아이가 기분이 좋을지 잘 모르겠다.

만약 자녀를 갖게 된다면, 나는 그(들)의 사진을 절대 인터넷에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 부부의 자녀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부탁하면 된다. 그 절차가 약간 번거로울지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자녀의 사진을 공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의 자녀는 우리에게만 특별한 존재일 뿐 타인에게는 그정도로 가치있는 존재가 아닐 확률이 높다. 나는 나의 자녀가 온라인상 공간에서 의미없이 소모되기를 원치 않는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모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다. 나의 기준에서 그것은 윤리적으로 옳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아이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도 아니다. 나중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이가 되면 그 때 가서 상황을 충분히 이해시킨 뒤 사진을 공개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도 수없이 SNS에 올라오는 아기들의 사진에서 무력감을 느낀다거나 그 사진을 올리는 부모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책임과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아이의 모습을 가까운 지인과 공유하는 것에서 더 중요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관계된 사람 중 누구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과정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내 자녀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지고 싶을 뿐이다. 아이가 성장했을 때 그에게 미안할 수도 있는 일은 되도록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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