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 참고한 책 세 권

직장을 옮기고 난 후 우리 부부에게는 작은 변화가 몇가지 생겼다. 우선 소비패턴을 조금 더 현실화(..)시켜야 했다. 나의 경우 지출항목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줄일 여지가 있었던 부분은 커피값과 택시값이었다. 택시야 타지 않으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커피의 경우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살기 시작한 이상 의지와 상관없이 줄일 수 없는 항목이 되어버렸기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거의 매일 아침 로스터리 숍에서 산 원두를 직접 내려서 두 보온병에 나누어 담은 다음 아내에게 하나를 주고 나도 하나를 가지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의 드립 실력이야 바닥을 기는 정도지만 신선하고 좋은 원두만 있으면 최소한 아내의 입맛에는 맞출 수 있었고, 다행히 서울에는 좋은 로스터리 숍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회사가 있는 여의도에도 스티머스라는 좋은 커피숍이 있고 서강대교만 건너면 펠트, 테일러, 리이슈, 매뉴펙트 등 많은 좋은 원두를 취급하는 많은 커피숍이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일주일 단위로 다양한 원두를 맛볼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고민도 뒤따랐다. 다양한 커피의 ‘맛’을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한 표현수단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컵 노트에 적힌 “플로럴”, “와인”, “자스민”과 같은 표현이 대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맛에 대한 감각이 많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풍미 휠’에 나온 다양한 맛을 애써 머리로 암기한다 해도 그 맛을 혀 끝으로 ‘구별’해낼 자신도 없었다. 또한 커피를 매일 습관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면서 과연 내가 내리는 방식이 맞는 것인지, 귀한 원두가 간직한 고유한 풍미를 나의 미숙한 솜씨로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산 커피와 케냐산 커피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좋은 원두를 찾아내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커피를 처음 접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가질법한 이러한 종류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이곳 저곳을 뒤져 발견한 세 권의 책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로 했다.

스페셜티 커피 감별법

테드 알 링글: 스페셜티 커피 감별법

먼저 풍미 휠의 분류 기준과 분류에 따른 풍미의 구별 방법을 배우는데 큰 도움을 준 책은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테드 링글이 쓴 [스페셜티 커피 감별법]이었다. 이 책은 커핑(cupping)을 위한 가이드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커피의 풍미를 표현하는 다양한 용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올바른 커핑의 방법과 SCAA가 제시하는 커핑 점수 기준표까지 제시하고 있다. 커핑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만으로 커핑 현장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냥 복잡하게만 보였던 풍미 휠을 단계적으로 분류하는 기준을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커피에서 “양파”와 “오이” 아로마를 분리해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가 “과일향”과 “캐러맬향”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뒤 전에 몰랐던 새로운 감각이 솟아난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커피를 마셔오며 느꼈던 풍미를 공통적인 언어를 통해 정의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것이 결코 작은 변화는 아니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 커피의 향은 이름을 갖지 못할테니까 말이다.

커피중독

아네트 몰배르: 커피 중독

이 책은 원두의 산지별 특징과 추출 도구별 커피의 분류, 다양한 커피 만들기 방법 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커피 개론서에 가깝다. 때문에 커피를 오랫동안 마셔온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터득했을 일종의 ‘상식’들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큼지막하고 선명한 그림과 함께 산지별 원두의 특징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고 다양한 종류의 커피 레시피를 한 곳에 모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보로서의 가치는 적지 않은 편이다. 새로움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커피의 거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바라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커피마스터클래스

신기욱: 커피 마스터클래스

이 책에는 실제로 커피숍, 혹은 로스터리숍을 운영하거나 커피숍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 같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 커피콩을 고르는 방법부터 로스팅 방법,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릴 때 필요한 유용한 기술들, 그리고 에스프레소머신을 이용한 다양만 메뉴 개발 방법(?)까지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나열하고 있다. 나의 경우 집에 머신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핸드 드립 부분에서 참고할만한 정보를 몇가지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 쓴 한국어 책 답게 커피와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들이 너무나 한국적인(..) 어조로 묘사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핸드 드립의 경우 ‘올바른 팔의 자세’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등장하는데 중고등학교 시절 참고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흥미로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교과서적 묘사들이 ‘궁서체’로 진지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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