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에가: 머리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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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가(Miega)는 머리를 하러 가는 미용실이다. 하지만 머리만을 하러 가는 곳이 아니기도 하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어 드나든지 2년 쯤 된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회사원으로 생활하면서 머리모양이 생활에서 꽤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대학원생 신분이었기에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고 다녀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한국은 사회적 규범이 개인의 머리모양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구속하는 곳이기에 ‘적절한’ 머리모양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했다. 미용실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머리 모양이란 것이 단지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해결하면(혹은 ‘때우면’) 되는 숙제같은 존재라고 하기엔 개인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미용이라는 정기적인 서비스를 제공받는 공간에 대해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준오헤어스러운’ 프랜차이즈 미용실은 입장부터 머리감기, 미용, 퇴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기계적인 공장식 매뉴얼대로 진행되었기에 전혀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헤어 디자이너와의 상투적인 대화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된 매뉴얼에 나의 성향과 머리모양을 억지로 끼워맞추려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찾아간 홍대 근처의 1인 미용실은 반대로 디자이너의 개성이 너무 강해 마찬가지로 아무런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내 머리를 하러 가는 곳인데 가게 주인의 욕망을 해소하는 오브제처럼 쓰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서 마음 편히 내 머리를 맡길 수 없었다.

사실 머리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사적이고 은밀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신체의 일부를 다듬기 위해 무방비 상태로 다른 이의 손에 몸을 맡겨야 하기에 서비스 수요자는 심리적으로 충분히 안정된 환경을 원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그 과정을 노출하고 싶지도 않고 실패하면 되돌릴 수도 없는 머리카락의 특성 상 최대한 개인의 욕구가 헤어 디자이너를 통해 충실히 반영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용실의 경우 위의 두 사례와 같이 몰개성, 혹은 지나친 개성 사이에서 방황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무시되기 쉽다. 이도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주 비싼 돈을 치루고 고급살롱에 가야 하는데 이 방안은 대중을 위한 자본주의 장치가 아니므로 딱히 고려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해답이 되어줄만한 곳이 미에가다. 이 곳은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는 미용실이다. 우선 이곳에서 ‘한국적 친절함’은 찾아볼 수 없다. 즉, ‘신속한’ 미용 서비스의 제공과 노동가치를 후려쳐서 뽑아낸 ‘저렴한’ 가격표는 없다. 자본주의 구조에서 소비자에게 보다 빠르게 저렴한 상품을 공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산과정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사람’의 자리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노동자의 기계화’는 상품의 가격을 낮추는 아주 쉬운 방법 중 하나다. 현재 한국사회의 소비문화를 가로지르는 키워드 중 하나가 이와 같은 노동자 소외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 미에가에는 빠름과 저렴함이라는 개념을 포기하는 대신 사람 그 자체를 지키려는 시도가 남아있다.

미에가의 문 앞에서 사장님 가족이 함께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손님을 맞이하고 일을 치루는 직장이라는 공간, 그리고 가족과 함께 일상을 영위하는 사적인 공간이 적당히 혼재되어 있고 적당히 분리되어 있다. 서로의 공간을 지나치게 침범하지 않는 가운데 적당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서비스와 상품을 위해 사람을 지우기 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삶의 오히려 적극적으로 함께 심어 놓았다. 덕분에 오직 머리를 하러 간다기 보다는 머리를 하는 김에 바깥 공기도 쐬고 사람도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위와 같은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미에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공간의 차별성이다. 나는 이 곳의 공기를 친절한 개인주의, 정도로 이해했다. 이 역시 한국사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성질의 어떤 ‘자세’일 것이다. 먼저 미에가는 어떤 머리를 하고 싶냐고 묻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미에가를 방문하면서 단 한번도 사장님께 어떤 머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드리지 않았다. 첫만남부터 지금까지 나에 대해 말씀드리고 그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눈 것이 전부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머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타고난 달변가인 사장님은 때로는 커피나 차를 내어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보여주시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신다. 그 와중에 나에 대해, 나를 위한 머리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으시는 것 같아 보인다. 중요한 사실은 단 한번도 그분이 해주신 머리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으며, 지금까지 다녀본 수많은 미용실 중 이 정도의 만족감을 준 곳을 떠올릴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머리를 잘 하기 때문에 그 곳에 가는 것이 맞다.

공간 역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의 곤지암 가게로 이사오기 전 존재했던 성북동 가게는 공간 안에 작은 ‘집’들을 여러채 품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머리하는 곳, 머리 감는 곳, 계산하는 곳, 그리고 사장님의 아들이 노는 곳과 그들 가족이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적당하게 분리되어 있었지만 그 어느 공간 하나 막혀있지 않았고 서로를 가로막고 있지도 않았다. 곤지암 가게는 기존에 있던 창고를 개보수해 만들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약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새로운 공간은 높은 층고와 큰 창문 등 널찍한 개방감을 얻게 되었다. 건물을 크게 양분하여 한쪽은 가족이 머무는 공간, 다른 한쪽은 머리를 하는 공간으로 삼되 그 사이에 적극적인 왕래를 가능케 했다. 건물과 함께 위치한 널찍한 마당은 쾌적함을 더한다. 성북동 가게와 곤지암 가게 모두 미에가의 철학이 담겨 있는 곳일 것이다. 개인적이되 폐쇄적이지 않으며 간섭하지 않되 불편함도 없을 것.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곳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이해해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곤지암까지 한시간 걸려 차를 끌고 가야 하는 불편함과 높은 가격문턱을 감수하고서라도 당분간 이 곳으로 머리를 하러 와야겠다는 생각에 흔들림이 없다.

요즘 한국에도 좋은 미용실, 혹은 이발소가 많이 생기고 있다고 들었다. 미에가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곳, 단순히 급하게 머리를 하러 가는 곳이 아닌 삶의 철학과 가치를 나누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제공하고자 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누군가는 부암동에서, 다른 누군가는 한남동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처럼 아주 기본적인, 일상이 되어버린 루틴들이 조금씩 새롭게 이해되고 조명받았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공간부터 장을 보는 공간까지,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공원부터 어쩌면 집안에 있는 화장실까지, 일상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일수록 더 깊은 철학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사회가 축적한 전통이고 사회가 지켜야 하는 미덕이다. 우리가 관광을 가서 가장 먼저 접하는 공간, 혹은 카메라 셔터를 가장 바쁘게 누르는 공간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닌, 보도블럭이나 커피숍, 혹은 호텔 화장실의 문고리같은 그 도시의 작은 흔적들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그 도시, 그 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통의 증거물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그런 것들을 조금씩 자랑할 때가 됐다. 미에가는 아마도 그러한 시간의 흐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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