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 Boilen: Your Song Changed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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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일주일에 5천원의 용돈을 받았다. 일주일 내내 딱히 돈을 쓸 일이 없던 나는 그 5천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토요일 오전수업이 끝나면 친구 진우와 함께 효자동에 있는 레코드샵에 가서 테이프 하나를 샀다. 그 테이프를 일주일 내내 들으며 쉬는 시간마다 진우와 음악 이야기를 했다. 가끔 돈이 보너스처럼 더 생길 때에는 테이프를 하나 더 사거나 [핫뮤직]이나 [서브]같은 음악 잡지를 사서 읽고 또 읽었다. 중학교 3년 생활이 끝날 때 쯤 내 방에는 약 300개의 테이프와 수십권의 음악잡지가 쌓여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는 테이프가 아닌 CD를 사기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면서 MP3 음악을 다운받아 듣다가 유학시절부터 다시 CD를 사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요즘에는 CD보다 바이닐을 더 많이 산다. 물론 애플뮤직 등을 이용해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기도 한다.

요즘 듣는 음악들도 물론 나를 매번 즐겁게 해주지만, 사춘기 시절 들었던 음악들이 이후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즐거움과 같은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지금은 음악이 삶의 습관이자 생활의 일부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부분으로 자리잡았지만 당시에는 음악이 내 삶의 거의 전부였고 중심이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일주일을 살았고, 테이프 속지에 적힌 음반 해설과 [핫뮤직]에 거의 매달 실렸던 “~ 명반 50선”의 리스트를 외우는 일이 기말고사 준비보다 더 중요했다. 당시 좋아했던 뮤지션들의 언행은 내 삶의 표지였고 당시 좋아했던 음악이 삶의 태도를 결정했다. 나같은 일개 음악팬도 그정도였는데 시대를 빛낸 뮤지션들의 어린 시절은 오죽했을까. 그들의 삶을 바꾸어놓은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살짝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NPR에서 [All Songs Considered]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밥 보일렌(Bob Boilen)은 뮤지션이자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하지만 1년에 약 500개의 공연을 보는 엄청난 음악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뛰어난 인터뷰어이기도 한데, 그런 그가 당대의 뛰어난 여러 뮤지션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음악 커리어, 더 나아가 삶 자체를 바꾸어 놓은 음악을 정리해놓은 책이 [Your Song Changed My Life]다. 한국 음악팬들에게 해외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약간 먼 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대나 한남동의 술집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말을 걸 수도 없다. 보고 싶을 때마다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몇 남아있지 않은 않은 국내 음악매체에 자주 노출되지도 않기 때문에 해외 뮤지션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 책은 그 간극을 매워주는 소중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이들이 어린 시절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는지, 현재의 음악 커리어를 형성한 근간은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을 때의 쾌감이 생각보다 짜릿하다. 거의 대부분의 젊은 뮤지션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환경 요소도 분명해 보이지만(부모님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엄청난 음악 애호가이거나) 꽤 많은 뮤지션들의 경우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한 이유나 배경이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인트 빈센트의 경우 집 앞을 지나가던 배달 트럭이 우연히 떨어트린 박스에 담긴 음반들이 그녀가 접한 첫번째 음악이었다. 제임스 블레이크는 학교 기숙사 친구의 방에서 우연히 접한 1960년대 소울/R&B 아티스트 샘 쿡(Sam Cooke)의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아 현재와 같은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밥 보일렌에 의하면 코트니 바넷의 초창기 음악은 매우 평범했고 밴드의 공연도 미숙하기 짝이 없었지만, 투어 도중 윌코의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현재와 같은 바넷 특유의 기타 테크닉과 가사 창작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런 디엠시 등 올드스쿨 힙합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컨트리-블루스 싱어 제니 루이스의 고백도 재미있다. 현재 2,30대로 음악적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호지어(Hozier), 아스게이어(Ásgeir) 등 많은 뮤지션들의 사춘기 시절 영웅이자 워너비는 너바나와 펄잼이었다. 나도 너바나와 펄잼을 들으며 성장했기에 더 반갑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만약 나를 닮은 자녀가 생긴다면 나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일선물로 악기를 선물해줄 수도 있고, 저녁 시간 내내 음악을 틀어놓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흥미롭게 관찰해보고 싶기도 하다. 음악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관없다. 하지만 만약 나를 닮은 그 친구가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다면 상당히 짜릿한 기분을 느낄 것 같다. 내 아버지가 젊은 시절 모아두었던 산울림의 음반을 내가 다시 찾아내어 재생했을 때 아버지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2 thoughts on “Bob Boilen: Your Song Changed My Life

  1. 저도 하린군이 태어났을 때 어떤 음악을 좋아할지, 나와 취향은 같을지 정말 궁금했어요.
    임신 기간 내내 들었던 음악은 모짜르트를 비롯한 클래식이었는데,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은 둘째 치고,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으니까 자연스레 클래식이나 모노톤 음악이 끌리더라고요.
    생후 2개월 가량 되었을 땐가, 당시 새로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을 틀어두고 있었는데 힘찬 손발짓을 하며 누워서 좋아라 하던 기억이 나요. ㅎㅎ
    하지만 모든 뮤지션을 압도한 건 결국 비틀즈였어요. 비틀즈를 듣고 음악을 하고 싶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학교 친구들이랑 오마쥬 밴드인 비굴즈 ㅋㅋ 를 만들기도 할 정도로 심취하더라고요. 저는? 물론 행복했죠! :) 지금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 가장 먼저 서로 공유합니다. 자식과 부모 관계를 떠나
    평생 함께 할 음악 친구를 두다니,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죠. 종혁씨도 꼭 그렇게 되길!

    • “결국 비틀즈”였다니.. 인상적이고 재미있네요. 많은 이들이 비틀즈로 돌아가듯 저도 요즘 천천히 다시 비틀즈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거든요. 제가 자녀를 가질지 갖지 못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만약 자녀를 갖게 된다면 말씀하신 그런 에피소드들 하나하나를 만들어나가면서 삶의 의미를 축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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