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덩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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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가 관객으로 하여금 전쟁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전쟁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는 혀니루님의 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영화는 매우 재미있고 또 유례없이 새롭다. 적군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 특이한 전쟁영화는 탈출과 생존이 유일한 목적인 군인들과 그들을 위해 애쓰는 “조국”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와 피로한 피부의 결을 그대로 촘촘히 짜여진 플롯 사이에 재현한다. 영화는 관객을 전쟁터의 한복판에 위치시키기 위해 등장인물의 처절한 사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이전의 전쟁영화들이 당연히 받아들였던 많은 가정들을 버리고 전쟁의 실상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데에 영화의 90% 이상을 할애한다. 덕분에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실제로 떨어지는 포탄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웅크려야만 할 것 같은 느낌, 혹은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가 이룩한 가장 큰 성취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력이 탁월한 감독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놀란은 관객과 영화가 만나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효과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감독이다. 그는 새로운 차원의 서사를 창조하는 이야기꾼이라기 보다는 기존 영화세계에 존재해 왔던 가장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차용하여 새로운 차원의 영화적 체험을 이끌어내는 일종의 기술자에 가깝다. [메멘토]와 [인섬니아] 모두 이야기 자체가 매우 독특한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영화의 형식을 비틀어 관객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새롭게 느끼도록 유도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 된 이후에도 놀란의 서사 기술방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셉션], [인터스텔라]로 넘어오면서 조금씩 더 진부해졌을 뿐이다. [다크나이트]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그는 관객이 그의 영화를 볼 때 ‘새롭다’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다양한 트릭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왔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시각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모두 이전 영화들이 꿈도 꾸지 못했을 ‘꿈 속의 꿈’과 블랙홀 등 현실 저편에 있는 공간을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성공적으로 재현해냈다. 놀란이 새로운 차원의 영화적 시각화를 이루기 위해 행해온 과정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심지어 장인정신의 향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많은 공대생-ish한 영화매니아들을 열광케 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덩케르크]는 이러한 놀란의 장점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놀란은 관객에게 새로운 시각적 장면을 선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관객을 그 공간에 위치시키길 바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극단적으로 연출된 청각적 효과와 영화적 비약까지 감수해가며 관객의 체험지수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 영화 내내 심장을 조여오는 한스 짐머의 배경음악, 귀를 찢는 듯한 폭격기 소리와 어지러울 정도로 흔들리는 극단적인 클로즈업 헨드헬드 카메라, 그리고 아주 깨끗한 화면으로 이 모든 것을 재현해 내는 고화질 필름과 아이맥스 카메라까지, 놀란의 세계에 초대된 관객은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의도적으로 즐거운 착각에 빠질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받은 셈이다.

하지만 영화가 이룩한 이러한 시각적 성취는 영화 막판에 이르러 놀란의 빈약한 서사구조 탓에 상당 부분 빛이 바랜다. 물론 대중영화로서의 흥행성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택했을 고육지책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쓸데없이 장황하게 이어지는 애국심 고취 장면을 비롯해 영화 막판에 위치한 이야기들은 너무나 진부하고, 더 나아가 아주 전통적인 방식으로 촬영되었기에 더더욱 이 영화에 푹 빠져있던 관객을 사정없이 현실로 끄집어내어 버린다. 처음 맛보는 환상적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코스요리를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마무리한 기분이다.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오락영화의 최전선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이유, [인터스텔라]가 유례없는 시각적 체험을 선사했음에도 애끓는 가족애밖에 모르는 일차원적인 캐릭터 탓에 큰 감동을 선사하지 못한 이유, [인셉션]이 꿈 속의 꿈 속의 꿈을 반복하며 만들어낸 복잡하고 다층적인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쾌감’ 이상의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 모두 공통적으로 놀란의 치명적인 약점에 기인하고 있다. 그는 조금 더 창조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그 이야기 위에 놀란의 ‘입장’을 드러내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한다. 놀란의 영화에는 놀란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다. 영화는 영화적 즐거움을 주는 오락매체이기도 하지만 감독의 철학을 담아내는 예술의 한 플랫폼이기도 하다. 놀란이 기술자 이상으로 나아가 작가로 인정받고 싶다면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놀란의 영화를 보면 먼저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삶에서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달라지는 것도 없다. 그의 다음 영화가 나오면 또 보게 되겠지만, 다르덴 형제나 마이크 리처럼 영화를 본 관객의 삶 자체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진정한 체험’은 다음에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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