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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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사회는 ‘치욕의 시대’를 살고 있다. 타인에게 얼마나 더 큰 치욕을 안겨주느냐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가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급으로 깔아뭉개는 시도는 그래서 일상화되어 버렸다. 타인보다 조금이라도 계급적으로 우수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지독하게 활용하여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다. 극도로 세분화된 계급구조는 극소수의 승리자와 대다수의 패배자로 구성된 사회를 만들어버린다. 사회가 이렇게 ‘각박’해진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듯 좁은 땅덩어리와 많은 인구때문이다. 자원은 부족하고 땅덩어리는 좁으니 땅 한평의 가치가 사람 한명의 가치보다 우선시된다.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노동을 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더 쉽게 벌 수 있다. 지나치게 높은 경쟁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건물을 물려 받은 친구보다 삶의 질이 훨씬 낮은 현실을 목도하는 순간 힘이 탁 풀려버린다. 노동이 죽어버린 사회, 노동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창조되기란 쉽지 않다. 사회 전체적인 창조성은 빠른 속도로 고갈된다. ‘집주인’이라는 ‘직업’이 높은 지위로 대접받는 지경에 이르렀고 고용 불안정이 상대적으로 덜한 공무원이 최고 인기 직업이 되었다. 집이나 건물을 살 수 있는 돈을 ‘공짜’로 건네줄 수 있는 부모를 만나지 못하면 처음부터 틀린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이 사회는 패배하고 있다. 패배의 대상은 다른 아닌 사회 그 자체다. 사람은 죽어가고 땅과 건물만이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개걸스럽게 번식해나간다.

이런 사회에서 ‘조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심리가 당연히 생기기 마련이다. 영어만 잘 했다면, 능력만 있었다면, 부모가 돈만 대주었다면, “나는 떠났을거야”라고 말하는 겁 많은 젊은이들이 도처에 넘실거린다. 그들의 욕망과 현실 간 괴리가 심해질수록 현실에 대한 투정은 늘어만 가고 외국에 대한 환상은 커져만 간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는 자신의 원하는 가치를 찾아 조국을 떠난 한 청년의 고생담을 그리고 있다. 외국에서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겠지만 한국 밖을 벗어나는 것이 더 나은 삶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계급적으로 한두단계 밑으로 떨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한국에서 대기업 샐러리맨으로 살아왔던 대졸자가 미국에서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세탁소일을 하는 것이 이상한 풍경은 아니다. 언어장벽과 문화장벽은 ‘유리천장’을 두껍게 만든다. 적극적으로 섞이려는 노력을 해도 수십년 간 살아온 터전이 아닌 곳에서 ‘이방인’의 경계를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갖은 노력을 다해 그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경계인’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2세는 어떠한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뿌리의 문제가 그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서 소수의 엘리트 집단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삶의 구석구석에서 차별을 경험할 것이다. 결국 높은 경쟁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일해야 한다는 기본 명제는 외국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업그레이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트레이드 오프’만이 존재할 뿐이다.

<한국이 싫어서>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계나는 그 트레이드 오프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인정하고 호주에서의 삶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녀에게는 허풍과도 같은 환상도 없고 조국인 한국에 대한 경멸도 없다. 그저 자신에게 조금 더 잘 맞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싶은 작은 욕심 정도가 있을 뿐이다. 삶의 소박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적지 않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 조국의 익숙한 사회 시스템, 언어, 문화, 친구, 가족까지 다 내려놓고 몇년동안 죽을 고생을 해야 삶의 터전을 바꿀 수 있고 다른 나라에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만성적인 남녀차별과 불안정한 고용상태, 삶의 벼랑까지 몰아붙이는 냉정한 사회적 공기 등 싫어하는 것들과 멀리 지내기 위해 그녀는 젊음을 포기하고 타국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 한다. 그 결과 그녀가 얻는 것은 작으면 작다고 할 수 있고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다른’ 생활이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작은 일상. 그녀는 그곳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을 수도 있다고 느끼고 있을까? 주인공이 ‘한국이 싫어서’ 택한 국가가 호주라는 점이 흥미롭다. 호주는 넓은 면적과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수를 나타내는 곳이다. 그래서 한국과 삶의 패턴이 매우 다르다. 완성품이 아닌 천연자원을 수출하고 노동인구 간 경쟁은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삶의 속도도 많이 느려질 것이고 집값도 많이 쌀 것이다. 한국과 다른 계절에서 다른 하늘을 품은 그 곳에서 계나가 얻은 작은 일상을 왜 그녀의 조국은 결코 줄 수 없었는지 곱씹어볼 일이다.

소설은 우선 재밌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구어체로 진행되기 때문에 문체도 맛깔스럽고 페이지도 쉽게 넘어간다. 현지인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묘사도 사실적이고 공감대도 폭넓게 형성될 수 있다. 그 와중에 한국을 조국으로 하는 젊은이들의 고단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작가가 선택한 길은 결코 무책임하게 밝지 않다. 하지만 절망으로 가득차 있지도 않다. 절묘한 균형감각이 흥미롭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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