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젠킨스: 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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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는 완벽한 영화다. 영화적으로 너무 완벽해서 ‘영화’ 자체가 되어 그 단어를 정의내릴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누가 “영화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문라이트>가 영화입니다”라고 답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말이 허언같이 느껴진다면 질문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도 좋을 것이다. “2010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이 10년을 꿰뚫는 단 한 편의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영화를 선택할겁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더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이 영화를 맨 앞에 세우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 영화는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리더가 바뀌는 나라, 동성애 커플에 대한 법적 지위가 인정되는 나라에서 이민자에 대한 폭력이 정당화되는 나라로 넘어가는 나라, 수백만 달러를 하루 아침에 벌어들이는 헤지펀드 매니저와 십대 시절부터 마약과 폭력에 노출되고 쿠폰 한 장으로 사나흘을 버텨야 하는 흑인이 30분 거리에 사는 나라에서만 나올 수 있는 영화다. <문라이트>는 뉴스가 밝은 조명으로 비추어도 시원찮을 현실을 파란 달빛으로 비추는 영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한 남자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볼 뿐인데 영롱하게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하게 슬픈 그 남자의 눈동자 속에 달빛을 머금은 파도가 일렁인다. 미칠 듯 아름답고 놀라울 정도로 빈틈이 없으며, 그 어떤 다른 영화보다 강직하다. 벨기에의 작은 공업도시를 다르덴 형제가 지키고 있다면 미국 마이애미의 빈민가엔 베리 젠킨스가 발길을 거두지 않고 있을 것이다. 희곡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 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를 눈부시게 만드는 것은 촬영, 연기(와 디렉션), 음악, 편집과 같은 순수한 영화적인 요소들이다. 까에따노 벨로주의 음악이 나오는 와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면에서 회상 장면을 거쳐 식당으로 넘어가는 씬을 비롯해 영화의 모든 것을 압축하는 마지막 씬까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영화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한 구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흑인 사회 내에서의 동성애에 대한 폭력적 시선, 교육 시스템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같은 묵직한 주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무거움을 온 몸으로 표현해 낸 세 명의 주연 배우들의 공일 것이다.리틀, 샤이런, 블랙을 연기한 미천한 경력의 세 배우는 나오미 해리스나 자넬 모네처럼 카메라에 많이 노출된 배우들의 틀에 잡힌 연기를 압도하다 못해 깔아뭉개 버린다. 영화가 리얼리즘을 획득하며 현실을 비추는 빛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나 <엘리펀트>를 떠올렸을 것이다. 다른 이는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해피투게더>가 연상되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탠져린>이나 <발라스트>를 되짚어 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차원의 이야기를 짧은 시간 안에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이 영화는 괴물처럼 그 모든 것을 집어삼켜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로 재창조해냈다. 아마도 영화가 존재해야 한다면 그 이유를 제시한 작품일 것이고, 영화가 앞으로도 사랑받아야 한다면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한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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