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60104

아침에 유난히 눈을 뜨기 힘들었다.
일요일에는 항상 늦게 자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한 주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한 주였다면, 일요일에도 편안히 잠들 수 있었을 것이다.
게으른 탓이다.
주말은 놀고 먹으라고 있는 시간이 아닌데
나는 모든 토요일과 일요일을 핑계처럼 흘려보낸다.

평소와는 다르게 짐을 챙겼다.
속옷도 챙기고, 잠옷도 챙기고, 랩탑과 여분의 케이블도 챙겼다.
이번주에 다 읽으리라 마음먹은 책도 넣었다.
유학 생활 내내 함께 했지만 여전히 튼튼한 팀벅2 가방이 오랜만에 살이 쪘다.
이 친구는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두번째 당직이라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하며 집을 나섰으나,
수건을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수건 따위가 아니었다.
어제 오후 늦게 샤워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침에 샤워를 하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이 사실이 하루종일 마음을 옥죄었다.
내 몸에서 냄새가 나지는 않을지,
왜 게으름을 피웠는지,
계속 자책했다.

아침의 충정로역은 여전히 들어가는 사람보다 나오는 사람이 많았고,
사람이 만들어낸 흐름을 거스르며 내려가야 하는 나는
또다시 허락없이 어깨를 부딪히는 사람들에게 내 공간을 내어주어야 했다.
‘한국 사람들은 NFL 라인배커로 뛰면 아주 뛰어난 태클을 구사하겠군’
하고 속으로 억지로 농담을 만들어내며 참았다.

여의도역 2번 출구로 나올 때는 항상 기분이 좋다.
회사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이고
그들의 일상에 편입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그런 일상으로 들어온 것 같기 때문이다.

사무실에는 팀장님이 나와 계셨다.
항상 가장 일찍 나오시는 팀장님은 긴 휴가를 끝내고도 어지러짐이 없어 보였다.
나는 책상에 앉아 오랜만에 컴퓨터를 켰다.
결재시스템은 새롭게 바뀌어 있었고
회람전문서부터 내부우편까지, 모두 “0”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그 기분좋음도 잠시,
인상된 연봉 통지 문서부터
팀장님이 전달하는 각종 보고서까지
나의 컴퓨터 화면은 금세 어지러워졌다.

나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이것저것을 하며
오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궁리했다.
며칠 전부터, 아니 몇 주 전부터 내 머리와 마음 속은 논문으로 가득차 있었고
나는 논문을 써야만 했다.
기한은 정해져 있었고
그 기한 내에 모두를 만족시킬 학술논문을 한편 써야 했다.
늑장을 부릴 틈은 없었다.
그래서 논문과 아무 상관 없는, 아침에 챙겨온 그 책을 읽기로 했다.
최소한, 회사 업무가 아닌, 학술 논문이라는 내 스페셜티는 최소한,
내가 정한 리듬대로 가야 한다는 자존심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침 시간은 여유롭게 보내되, 오후에 열심히 논문을 쓰자, 라고 마음 먹었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대중서와 학술서 사이에 존재하는 이 책의 위치는
비전문가와 전문가 모두를 만족시켜야만 하는 곤란한 역할을 스스로 떠안았다.
그리고 비전문가인 나는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철학과 인류학, 사회학과 심리학을 오고 가며
사람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과
사람이 사람을 맞이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프랑스에서 공부를 해서인지, 나의 그러한 편견때문인지
푸코와 데리다, 혹은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의 흔적이 많이 느껴지지만,
그건 사실 책을 읽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쓸데없는 추측일 뿐이다.

마침 점심 약속이 없었다.
팀원들이 다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뒤,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좋지 못하다고들 하니, 지하도를 이용해 IFC로 산책을 나갔다.
귀에 꽂은 음악은 알라바마 쉐잌스였다.
나에게 만약 음악적인 재능이 있었다면, 이들과 같은 음악을 했을텐데, 하고 생각했다.
물론, 나에겐 음악적인 재능이 전혀 없다.
어릴 때 종종 하던, ‘만약 내가 음악인이었다면’이라는 상상도 이젠 더이상 하지 않는다.
요즘엔 아예 상상놀이를 멈추었다.
예전엔 두세개의 시나리오를 한꺼번에 돌렸는데.
다음주에 예약해둔 기타레슨은 과연 무사히 갈 수 있을까.

SSG마켓에서 제육볶음덮밥을 사서 연구실로 돌아왔다.
풋볼경기를 보며 점심을 먹었고,
브롱코스의 AFC no.1 seed 획득을 자축했다.
나는 브롱코스의 다이하드팬은 아니지만,
한때 로컬팬이었던 사람으로서, 다른 방식으로 승리를 거두는 이들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
특히 패트리어츠를 제치고 홈필드 어드밴티지를 획득해서 기분이 더 좋았다.
이번만큼은, 우승을 하지 못해도 좋으니 패츠를 제발 이겼으면 좋겠다.

마침내 오후 시간이 도래했고,
나는 한글 파일을 열어 지침대로 논문 형식을 만들어 나갔다.
제목을 다시 정하고(아마 논문의 제목은 앞으로 37번 정도 더 바뀔 것이다)
국문초록, 주제어, JEL 분류코드, 저자설명까지, 앞표지를 꾸몄다.
그쯤 하고 나니, 사실 이룬건 아무 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한 것 같아 보여서 뿌듯했다.

이제 릿 리뷰를 완성할 시간.
하지만 지금까지 관련문헌을 열심히 조사하지 않았다.
사실 이번 주말까지 릿 리뷰를 완성하면 큰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멍청한 학생의 위치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논문을 쓰다가 막힐 때마다 지도교수님을 생각한다.
데브림, 당신이었다면 지금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었을 것 같아요?
나는 당신의 연구실에서 당신이 내게 해주었던 말들, 그 이상으로 전혀 나아가지 못했어요.
너무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동료 박사와 담배를 태우고 온 팀장님이 회의를 소집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생겼고,
나는 논문 뭉치를 옆으로 치워둔채 능숙하게 문서를 하나 작성했다.
다시 회의가 열렸고,
나는 문서를 수정했다.
문서를 송부하니 네시 40분. 당직실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인사를 드리고 짐을 챙겨 나와 옆 건물로 이동했다.

당직실은 좁고 답답하다.
창문이 있지만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고,
회사 곳곳을 볼 수 있는 모니터들과 당직자의 지루함을 달래줄 케이블이 달린 텔레비전 하나,
그리고 텅 비어 있는 냉장고와 낡은 침대 따위가 있다.
전에 한번 당직근무를 해 보았기에 인수인계도 대충대충 받았다.
어차피 형식적인 행위, 군부시절 풍속이 화석처럼 남아 있는 요식행위일 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참 열심이다.
아무리 쓸모없는 행위라도,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열심히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으면 티가 확 나기 때문이다.
상급기관에 보고를 하고, 하급기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결과는 항상 “이상무”, 일지의 빈칸을 없애기 위해 서로의 이름을 묻는다.
“경계근무 강화”같은 지시사항은 또박또박 적는다. 조금은 새롭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경계업무는 외부용역업체 직원들이 한다.
매일밤 여덟명씩 남아 출입구와 취약지역을 순찰한다.
직원들 중 리더격인 분이 두어번 당직실로 찾아와 내가 해야할 일을 대신 다 했음을 보고한다.
나는 그저 일지에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각 부서를 모두 점검해야 하는 순찰도,
원장님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의 행적도,
야근을 하는 직원의 소재파악도, 그분들이 다 하신다.

회사의 밤과 새벽은 용역업체, 혹은 비정규직들의 것이다.
나는 조용히 그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기록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물론, 나도 비정규직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같은 비정규직이 아니고,
물론, 회사의 정규직들과 같은 정규직도 아니다.

경비직원분들이 순찰을 도는 동안 나는 영화를 한 편 봤다.
긴 밤을 대비하기 위해 랩탑에 영화를 두 편이나 받아 왔는데, 한 편도 겨우 보았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볼 때마다 나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와닿았던 대사는
“그래, 나는 한때 헤픈년이었어. 나도 알아. 인정해. 근데 그런 나도 사랑해. 너도 나처럼 말할 수 있어?”
대충 이런 거였다.
excelsior 는 뉴욕의 애칭이다.
그리고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희망을 이야기하려면 과거를 과거로 남겨두어야 한다.
나만의 희망게임 플레이북을 만들기 위해선, 과거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과거에 발목잡힌 2015년을 보냈다.
구질구질했고 쓰레기같았다.
그 쓰레기같은 과거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여전히 구질구질한건 그걸 잘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에도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당직으로서 일과가 다 끝나면 잘 수 있다.
나는 팬티를 사러(그렇다, 속옷도 가져오지 않았다) 근처 편의점으로 나갔다.
팬티와 수건과 담배를 사 왔고,
20층으로 올라가 옥상에서 담배를 한대 피웠다.
매우 추웠다. 여의도 칼바람.
역시 담배는 피우지 말아야겠군, 하고 생각했다.
20층에 있는 식당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음악이 들렸다.
오늘 신년행사를 마친 식당 직원들이 아직도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그들은 겨우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일을 할 수 있었다.

당직실의 모니터에는 여전히 바닥청소를 하는 청소부의 모습이 잡힌다.
1층부터 20층까지 모든 바닥을 한 명이 다 청소한다.
내일 아침,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 앉아 그 밑이 청소되어 있음을 자각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비정규직이고, 나는 그들 뒤에 숨어서 놀고 있다.

갑자기 존나 정치적인 글이 되어버릴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받지 못한 삶을 우리는 경제적인 용어로 비정규직이라고 표현하지만,
나의 인생은 항상 미래를 보장받지 못했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감수하고, 또 감수해야 겨우 뭔가가 보였다.
겨우 뭔가를 이루어낼 수 있었고, 그 아주 작은 희망을 부둥켜 안고 또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다.

이제 이런 삶을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이제 정말 한 여자만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정말 안정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이제 정말 안정된 마음으로 주변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늘도 나는 극도의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꼈다.
사람들에게서 겉도는 느낌을 받았으며,
한국에서 완전히 혼자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정말 내 친구는 한 명도 없으며, 가족은 모두 나보다 더 가까운 다른 가족이 있다.
아빠에겐 엄마, 누나에겐 남편과 아이들, 엄마에겐 아빠가 있다.
나에겐 아무도 없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찾고 있다.
이 사람일줄 알았는데, 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내가 이 사람에게 헌신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사람에게 다가갈 것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너무 잘 모르겠어서 힌트조차 잡을 수 없다.

서른을 훨씬 넘겨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이모양이다.

당직실이 매우 춥다.
경비직원들의 리더는 다들 사무실에서 난로를 가지고 온다고 했다.
나는 사무실에 난로가 없다.

2 thoughts on “일기 20160104

  1.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던 심보선의 시가 생각이 났어요. 오늘 무슨 영화를 볼까 힌트를 얻으려고 들어왔다가 좀 눌러앉아서 지난 글에 댓글을 달고 갑니다. 늘 멋진 것들을 소개해 주시는 좋은 즐겨찾기가 되어 주셔서 새삼 감사해요. 그러니, 밖은 춥지만, 그래도 힘을 내시길:)

    • 누군가에게 즐겨찾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자 영광이죠.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영화 고르셨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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