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 맬서스

맬서스는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인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서 인구의 증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이 인구를 먹여살릴 기술과 자원은 선형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 이후에는 그 사회가 공멸할 것이라는, ‘dismal science’의 초석이 되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구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그 사회의 하층 계급으로부터 두가지의 ‘checks’가 자동으로 발동된다고 보았다. 하나는 positive check으로, 사망률(death rate)을 높이는 것이다. 그는 이 positive check이 기아, 질병, 전쟁 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발동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의 기제는 preventive check으로, 출생률을 낮추는 것이다. 그는 이 방식이 낙태, 매춘, 결혼시기 연기, birth control 등의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실현된다고 믿었다. 즉, 자원이 인구의 증가를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이 되리라는 공포감이 한 사회에 깔리게 되면, 그 사회는 하층 계급부터 순차적으로 시작되는 이 두가지 check을 통해 인구증가를 억제하게 된다는 논리다. 물론 맬서스는 틀렸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 한정된 자원으로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감당해낼 수 있는 기술력은 더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영향 탓이다. 생산성이 급속하게 상승하면서 잉여생산물이 풍부하게 쌓여가기 시작했고, 거기서부터 경제적인 의미의 계급의 분화가 심화되어 자본가/노동자 계급의 고착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말이다.

이미 오래전에 사장된 이 맬러스의 주장이 21세기 한국에서 다시 살아나 꿈틀거리고 있는듯 보인다. 현재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진입중이다. 2030년이 넘어가면 생산가능인구 한명이 고령인구 한명을 먹여살리는 꼴이 된다. 0세부터 100세까지를 수평면 위에 일렬로 세워 놓았을때 가운데가 가장 높은 정규분포의 형태를 지니는 인구구조는 2000 이후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점차 평탄하게 바뀌어가고 있다. 분포의 꼬리가 두꺼워지는 셈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의 고령화 과정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저출산과 산업구조의 변화다. 무엇이 결과고 무엇이 원인인지는 아직 모른다. 저출산은 한국이 풍족한 경제성장을 누릴때부터 진행되어 왔다. 산업구조는 IMF이후 빠른 속도로 재편되어 왔다. 철밥통같았던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노동시장은 점점 더 유연해지고 있다.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과거의 노동집약적 산업들이 사장되어가고 있다. 65세 이상의 노년층도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계속 일을 하게 되는 ‘active aging’ 현상이 청년실업을 가중시켰다.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고용불안정성 심화가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의 초저출산 경향을 맬서스가 이야기하는 ‘preventive check’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즉, 한국 여성의 가임기간이 30세 이후로 확 늦춰지는 현상,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의 비중이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분명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었다기 보다는 개개인의 ‘optimal’한 선택에 의한 결과로 보인다.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는,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대부분 인적자원이다. 인적자원이 고갈되어간다고 느낀다면, 그래서 개개인이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축적되었을때 우리는 거시적인 preventive check이 발생하고 있다고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맬서스가 걱정할만큼 ‘dismal’할까? 이것이 핵심이 되어야 할 질문이다. 여기저기서 성장동력을 상실했다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경직적인 조직 구조 속에서 창의성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과거 제조업 위주의 성장 전략은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잠재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새로운 투자요인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고용불안정성은 커지는데 실질임금은 지속적으로 하락중이다. 저축이 증가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기업저축일뿐이고, 가계저축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결국 최소한의 소비를 하기 위해 빚을 더 낼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는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있다. 대부분 집을 저당잡혀 빚을 낸다. 혹은, 부동산이라는 자산에 올인한 투자성향을 보인다. 인구가 줄어든다. 부동산 수요는 늘지 않는다. 부동산은 공급과 수요 모두 대단히 비탄력적이다. 집값은 장기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을 보유한 각 가계의 자산가치가 일제히 하락한다. 자산가치가 줄어드니 소비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초저금리 시대에 부동산 수익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투자처를 찾기도 힘들다. 해외로 눈을 돌리자니 쉽게 보이지 않는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렵다. 악순환이다.

preventive check의 또다른 발현 형태는, 조심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지만, 자살률의 증가다. 10대, 20대, 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하루에도 수백명씩 자살한다. 한국사람이 유난히 나약하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억척스럽게 잘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이 너무 많다. 자살하는 사람 개인의 문제로 더이상 돌릴 수 없어보인다. 왜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 귀중한 목숨을 끊어야만 했는지, 구조적, 사회적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이 한국이라는 사회가 왜 생명을 잉태하지 않고 남아있는 생명마저 억지로 죽여가면서까지 사회구성원 숫자를 낮추려고 하는지, 조금 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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