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배: 위험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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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배의 음악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부분은 정확하고도 분명한 메시지다. 그 메시지에는 단호한 입장이 있다. 2010년대 한국 대중 음악계가 이 메시지에 대한 가치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앵무새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음악마저 이미지화시켜버리는 아이돌 음악이나 90년대 소녀 감성을 포장만 바꾸어가며 판매하는 되돌이음표같은 ‘한국형 이지 리스닝’ 혹은 ‘한국형 컨템프로리 어덜트’ 음악, 더 나아가 메시징을 주된 상품화의 수단으로 삼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여자를 더 ‘쿨’하고 ‘칠’하게 꼬실 수 있는지에만 탐닉하는 흑인 음악 계열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이 굉장한 미덕을 윤영배는 침착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음악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로 기능한다. 엘리엇 스미스를 떠올리게 한다는 그의 목소리나 음악 스타일 역시 사실 하나음악/푸른곰팡이 음악 세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하며, 오히려 이에 더해 바흐같은 클래시컬한 음악들을 더 많이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답습’보다는 ‘정통성’의 개념에서 해석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음악을 듣다 보면 그가 지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그를 믿게 된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윤영배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그의 메시지가 첫곡 “자본주의”나 “점거”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거시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탐구라는 범주에 머물지 않고 “선언”이나 “백년의 꿈”에서처럼 그와 비슷한 수준의, 혹은 그보다 더 깊은 수준의 자기 성찰로도 나아간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밖으로만 내지르며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는 노래들이 갖지 못하는 따스함과 유려함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의 부조리함을 애써 외면하며 탐미주의에 치중하는 연약한 요즘 인디 음악이 갖지 못한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림과 글보다 사진과 영상이 더 익숙한 시대로 넘어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문의 글이 불필요해지는 세상은 아니다. 여전히 필요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윤영배는 무거운 주제를 피해가지 않는, 건조하지만 담백한 문체를 가진 긴 호흡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좀처럼 읽지 않는 그런. 떠들석하게 일을 벌이며 자신을 치장하는 데에는 아낌없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침묵하는 대다수 ‘어른’들이 하지 못하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입장과 그 입장을 실천하는 행동이 음악 속에 담겨 있다. 이런 음악을 2014년에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대충 뭉뚱그려 감사함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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