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fonso Cuaron: Gravity

Gravity-1
영화는 서사의 예술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영상의 예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두가지 요소를 단순히 포함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영화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있다. 영화만이 다다를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세상이 있다. 어떤 이는 영화를 대사로 기억한다. 어떤 이는 특정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른 이는 영화를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기억한다. 모두가 영화를 받아들이는 법이 다르다. 하지만 영화가 영화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영화는 단순히 사각의 화면에서 소리와 영상이 함께 만들어 내는 특정 효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상을 관객이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관객의 내부 세계에서 구체적으로 체화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비로소 영화다워지는 것이다.

<Gravity> 의 세계관은 단순하다. 그냥 우주다. 살아 있는 우주 그 자체.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는 우주 그 자체가 세계관이다. 플롯도 아주 단순하다. 한 여성 우주인이 난파된 우주선에서 탈출해 지구로 귀환하는 이야기다. 이 여성이 지구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지의 여부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가 약간의 장르적인 쾌감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어떤 특정 장르에 기대지 않고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해 낸다. 그리고 영화가 창조한 그 세계 자체가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 둘이라고 할 수 있다. 산드라 블록이 연기하는 여성 우주인. 그리고 우주. 이 영화는 한 여성이 우주와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이고, 우주를 자신의 품안으로 거두어 들이는 이야기이기도 하며, 우주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도 무서운 심해와도 같은 우주에서 한 인간이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이 우주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키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모든 것을 아우르고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다. 모든 것을 품고 있으며, 때문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 자신의 이야기들도 이 우주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여성이 가진 육체 안에서 또다른 세상을 체험한다. 이 여성은 딸을 잃은 슬픔과 믿고 따르던 상관의 손을 스스로 놓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에서 자발적으로 생을 포기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몸속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끝끝내 다시 발견해내고야 만다. 우주복을 벗을때 드러나는 그녀의 육체는 이 사람이 얼마나 고독하게 자신을 단련해 왔으며 그 흔한 미소조차 쉽게 내비치지 않는 외로운 삶을 살아온 이 우주인이 자신의 생에 대한 의지를 그 육체 안에 얼마나 꼭꼭 잘 숨겨 놓았는지 증명하는, 거대한 우주에 극적으로 대비되는 또다른 숨은 주인공이다. 우주의 거친 바람에도 끝끝내 버티고 이겨내어 지구로 향하고야 마는 그녀의 육체는 어느 순간 그녀의 의지 자체를 초월하는 신비한 존재로 비추어진다. 우주는 말이 없고 냉엄하지만, 그녀의 육체는 그녀가 끊임없이 방황하고 갈등하는 와중에도 그 우주에 맞서 굳건히 버티어낸다.

하나의 육체와 하나의 우주. 이 둘 사이의 대결은 사실 맞서 싸운다는 좁은 의미로만 해석할 수 없는 묘한 구석이 있다. 라이언 스톤 박사는 우주 속에 몸을 맡겨도 봤다가 다시 밝게 웃으며 지구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생각 자체가 없는 무아지경의 경지에서 몸을 움직여 생의 활로를 찾아내기도 한다. 어쩌면 스톤 박사는 우주를 이기려고 했다기 보다는 우주 속에 숨어 있던 삶의 진리를 찾아 내어 그 보물과 함께 지구로 돌아가려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주는, 그녀를 집어 삼켜 바람과 함께 없애 버리려고 했다기 보다는 그녀를 보듬어 안아 새롭게 태어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인간은 먼지 하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보잘 것 없는 인간 하나가 우주를 품에 안을 수도 있다. 인간의 고귀함은 비루한 육체를 이겨내는 강인한 영혼에서부터 시작하고,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한 인간의 육체 안에서부터 새롭게 부활하는 인간의 영혼을 관찰함으로써 그 안에서 우주를 새롭게 조명해 내고 있다.

이 영화가 단순히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를 비로소 영화답게 만드는 몇 안되는 마술을 부리고 있고, 그것이 단순한 기술의 향연에 그치지 않고 서사를 담아내는 장치로 기능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읽고’ 다시 ‘받아 쓰게’ 만든다.

영화의 음악도 아주 훌륭하다.

산드라 블록의 연기는 화면 속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다. 즉 그녀는 아마도 이 영화의 촬영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영화를 몸으로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표정과 대사로 연기를 하기도 하지만 미세한 근육의 떨림으로 감정을 전하기도 한다. 우주복을 입고 있든 벗고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2 thoughts on “Alfonso Cuaron: Gravity

  1. 저는 산드라블록의 음색이 좋았어요. 뭔가 조용한 공간에서 발설되는 음성, 소리가 좋아서 다시 듣고 싶어진다는.. ;)

    • 맞아요. 인생을 적당히 산 여자의 연륜이 배어나오는 목소리였어요. 전 OST 라고 사려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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