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슐링크: 주말

청년 시절을 테러리스트로 보낸 한 사내가 있다. 자신의 사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죽인 그는 체포되어 감옥에서 삶의 절반을 보낸다. 중년의 늙은이가 되어 출소한 그는 여전히 테러리스트다. 여전히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단지 자신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테러리스트라고 믿고 있다. 그런 그의 옥살이를 도운 누이가 막 출소하고 나온 동생을 위해 자리를 마련한다. 그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열한명의 지인들이 교외의 한적한 별장에 모여 그와 테러, 삶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삶의 배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테러리스트를 배신한 예전의 친구도 있고, 개신교 목사도 있으며, 젊은 시절 한때 함께 혁명을 꿈꾸었으나 곧 현실로 돌아가 성공한 자본가가 된 친구도 있다. 그 자본가 친구의 딸은 이제는 늙고 병들어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실패한 혁명가를 유혹하려 하고, 감옥에 있던 24년동안 완전히 잊고 지냈던 그의 아들도 뒤늦게 찾아와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가야 했던 지옥같은 날들을 고백하며 아버지를 저주한다. 아직도 그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시대 착오적인 젊은 혁명가 지망생과 평생 그를 변호해온 변호사, 그리고 한때 이 몽상가를 짝사랑한 언론인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여자까지 합류한 이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근사한 연극 무대가 된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만 사흘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이들은 서로에게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가 하면 그 안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며, 관계를 포기하기도 한다.

판사 출신 법학자이자 소설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예의 그 건조하고도 간결한 문체를 통해 이 작지만 꽤 무거운 분위기의 소동극을 통해 삶과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지점을 예민하게 파헤쳐 나간다. 실패한 테러리스트 외르크는 자신의 삶이 끝나가고 있음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뒤늦게 만난 하나뿐인 혈육인 자신을 꼭 닮은 아들은 그러한 자신을 저주하지만, 거기서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면 그건 자신의 삶을 조금 더 빠르고 쉽게 무너뜨리는 수단이 될 뿐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본가 친구에게 몸을 의탁할 정도로 나약해진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완전한 삶의 부정과 끝까지 신념을 지키는 고독한 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매력적인 젊은 여자가 유혹하는 와중에도 반응할 수 없는 늙고 병든 육체와 20년 넘게 갇혀 살면서 가지게 된 피폐한 정신 상태를 가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은 그리 밝지도 않고 다양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를 둘러싼 그의 가족과 친구들, 혹은 적들, 혹은 방관자들의 삶도 이 늙은 테러리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외르크를 비난하거나 감싸면서 스스로의 나약하고 추한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그들중 그 누구도 외르크의 삶을 대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투영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애쓴다. 적극적으로 타인의 삶 속으로 뛰어 들지 않고 단지 타인을 이용해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비겁하고 나약한 현대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이다.

슐링크는 작중 인물인 일제의 글을 액자식 구성으로 활용하면서 테러리스트의 삶을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다룬다. 일제의 글 속에 등장하는 얀은 미국 911 테러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는 자다. 우리는 911 테러를 지시한 주동자들과 그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에게만 집중해 왔지 비행기를 건물에 쳐 박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한 테러리스트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했던 것이 사실이다. 슐링크는 자신의 법학적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 테러리스트의 행동 혹은 마음 상태를 프로파일링하는 듯 기술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테러리스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에 동조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이 서늘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명의 테러리스트, 즉 외르크와 얀이 어떻게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삶 속에 녹여 내었고 그 행동의 비참한 결말을 어떻게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지 관찰하기를 바라는 듯 보인다.

독일 적군파의 모습을 다룬 영화 <바더 마인호프>, 나치 시절 백장미파의 모습을 다룬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 대가로 초라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을 다루는 <타인의 삶> 같은 독일 영화들이 떠올랐다. 현대 독일 문학이 내게 주는 인상은 한결같다. 건조하지만 메마르지 않았고, 뜨겁지 않지만 미지근하지도 않으며, 무겁지 않지만 짓누르지도 않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허투루 쓰이는 단어를 최소화 시키며 주제 의식을 향해 직진으로 치고 나가는 힘이 대단한 소설이다.

박종대 옮김, 시공사,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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