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기억. 기대와 믿음.

책이나 영화를 다시 보지 않는 편이다. 다시 읽거나 보는 책이나 영화가 있다면 그것은 그 작품을 정말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시간을 때우기에 적합한 용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화장실에 쌓아놓고 보던 때부터 시작된 버릇이다. 본 시리즈를 아이팟에 넣어두고 심심할때마다 본다던가, 잠이 오지 안을때 아이폰에 무한도전을 틀어 놓고 쳐다 보지도 않은채 소리만 들으며 잠을 청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반복을 소비하는 것이다.

책을 특히 다시 읽지 않는 편인데, 이유는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변질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생각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다시 읽는 행위는 그 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해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시 읽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아마도 조급함때문일 것이다. 읽지 못한 책을 어서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어야 그나마 죽기전에 아쉬움이 덜할 것 같다는 본능적이고도 어린아이와도 같은 조급함말이다.

책은 언어로 만들어진 대화의 기록이다. 언어로 사고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가장 편한 의사전달의 도구이자 매체이고, 세상을 그리고 전시하는 가장 좋은 플랫폼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려한 특정 표현 문구에 강한 인상을 받기 보다는 – 이것은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흥과도 같다 – 책이 전체적으로 품고 있는 직조의 미학이라던가 얼개나 골격같은 것들에서 더 큰 감동을 받는 편이다.  어떻게 세상을 표현하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세상을 설계하고 조직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책은 또한 기억의 도구이다. 모든 책은 기억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미래에 대한 기대조차 그 기대를 품었을 때의 기억을 담보로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언어로 쓰여진 책이 담아내고 있는 기억이라는 대상은 나의 삶을 꿰뚫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과 항상 맞닿아 있다. 나는 글과 말이라는 언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때문에 기억조차 영상이나 소리나 냄새가 아닌 글과 말로써 남아 있게 되기 쉽상이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언어만큼 왜곡이 쉽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표현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의 기억을 조작해 왔으며, 그 조작의 어리석음은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화의 끝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그리고 기억으로 점철되는 우리의 대화는, 과연 미래에 대한 기대와 얼마나 조응할 수 있을지도 자못 궁금해진다. 나는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데, 내가 대화하고 있는 사람과 왜곡된 기억을 앞에 두고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언어를 통해서만 해결을 보아야 하는 상황을 최근 자주 접했다. 그 상황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문제였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을 가리는 문제도 아니고, 기억을 퍼즐조각처럼 올바르게 다시 짜맞추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고,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새로운 것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을 다시 되돌렸을 때 새로운 것이 보이게 될 수도 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 이야기하듯, 우리는 과거의 기억이 올바르지 않게 조립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현재의 삶을 반추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치유 혹은 반성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로, 현재는 현재로, 미래는 미래대로 독립적인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책을 다시 읽기 싫어하는 나의 성격이, 과거로부터 단절되지 못하는 삶을 사는 나의 부족함을 애써 무시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유럽 여행에서 그리고 최근 경험한 뉴욕과 보스턴 여행에서 좋은 예술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예술 작품들이 나에게 준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책이 아닌, 영화와 같은 익숙한 영상매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더 크고 깊은 생각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눈 앞에서 제시받았기 때문이다.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그런 박제화된 예술 작품이 아니라, 눈 앞에서 붓터치 자국 하나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진짜 그림과 진짜 조각, 진짜 영상물들을 보면서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전달되는 방식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한 제약으로 인해 오로지 언어밖에 쓸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래서 그 불완전한 도구로 인해 대화에서 장애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 장애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도구들을 사용함으로써 해결되었을 경우를 상상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언어를 통한 대화 자체게 구속이 되어 버리면 그것이 전부인양 생각하게 되고, 그 안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발견해야만 할 것 같은 좁은 시야 안에 한번 더 갇혀 버리게 된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혹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들은 언어 의외의 것들로 존재하고 그것들에 의해 표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에서 출발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이다. 그 믿음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 자신의 서툼과 상대방이 노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에서 역설적으로 믿음은 다시 출발한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배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에게 결핍된 부분을 채우려는 강요를 우리 모두에게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각자 살아온 시간이 있기에, 또한 그 시간을 존중해야 하기에, 나는 대화의 상대가 드러내는 모든 표현들이 가치있다고 믿으며, 다른 한편으로그 표현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을 것임을 또한 다짐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언어의 이면에 존재하고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 thoughts on “언어와 기억. 기대와 믿음.

  1. 느끼는 게 많습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로 제 행동과 생활에 반영하는지이겠지만요. 아니 느끼는 걸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겠죠.
    자주 찾겠습니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