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O. Russell: Silverlinings Playbook

8개월간의 정신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한 팻의 인생에 큰 사고라고 할만한 것은 딱 한번뿐이었다. 자신이 정성들여 선곡한 웨딩송이 울려퍼지는 집안에서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그 한번의 사건 이후 그의 인생을 송두리재 뒤바뀌어 버렸다. 집, 직장, 아내, 그리고 정신까지 잃어버린 팻은 퇴원 후에도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해 나간다. 그가 친구 내외와의 저녁식사에서 만난 티파니는 남편이 죽은 뒤 회사내 모든 사람들과 (남녀 가리지 않고) 섹스를 한 여자다. 팻을 처음 만난 날 함께 자자고 말하는 그녀는 팻의 정신 상태를 더 악화시킨다. 그런 팻과 티파니가 만나 딜을 한다. 접근 금지 명령이 떨어진 아내에게 티파니가 대신 편지를 전해주는 대신 팻은 티파니의 댄스 경연대회 파트너로 참가한다는 것. 가족과 풋볼로 상징되는 세상과의 사투는 계속되고, 티파니와의 댄스 연습도 계속된다.

티파니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여자다. 그래서 지나치게 솔직하다. 세상에 대한 표현도 그렇고 자신의 욕망에도 그렇다. 그 욕망은 뒤틀려져 있고 그녀가 내뱉는 말들도 잔뜩 꼬여 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세상과 격리되어야 한다거나 (실제로 그의 부모는 그를 격리시키려고 한다) 세상의 ‘평균치’ 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은 아니다. 팻은 너무 모른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고 아내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어쩔줄 몰라 하며 그 상처를 아내를 통해서만 풀어내려고 한다. 영화는 너무 큰 여자와 너무 작은 남자가 만나 서로를 치유해 가는 이야기다. 역시 여자는 더 현명하고 속 깊고 성숙한 존재, 하지만 남자는 대신 직선적인 매력으로 사태를 조금 더 빠르게 진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로맨스라는 장르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말을 예측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물로만 바라볼 수 없는 다양한 층위의 매력이 있다.

먼저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꽤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팻과 티파니의 주변에 있는 가족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설정이 되어 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팻과 티파니가 사실은 더 정상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낀다. 경찰과 필라델피아 이글스로 상징되는 필라델피아라는 배경은 팻으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인위적인 적응을 강요하는 기제로 활용되는데 (이글스팬들의 ‘광’적인 응원문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팻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티파니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푸코가 말한 ‘감시와 처벌’ 이 과연 사회적으로 가장 올바른 규범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꽤나 직접적인 문제제기인 셈이다.

이 영화가 속한 또다른 차원은 부모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바라본 성장이라는 개념이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길게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영화는 팻의 정신적 갈등을 소재로 팻과 부모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무너지고 재설정되는지 그 과정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보여준다. 팻은 특히 아버지와 사사건건 충돌하는데 아들과 함께 풋볼 게임을 시청해야 승리한다는 일종의 미신을 아들이 거부함으로써 발생하는 이 갈등이 봉합되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 사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까지 팻은 드션 잭슨의 저지를 입고 있긴 하지만 결코 풋볼을 보지 않는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팻은 이글스의 저지를 입고 있지만 이글스의 게임을 거의 보지 않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함께 공유하기를 바라는 이글스의 게임은 팻에게 ‘옷을 입는 행위’ 로 변환되고, 그 안에서 팻이 택한 길은 댄스와 티파니라는 마이너한 것들에 대한 애착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가 천천히 돌아가며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 하나 하나를 비추는 모습에서 영화의 또다른 주제가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강요하고 억압하는 것에 대한 감독의 거부감이 상당히 잘 드러나고 있다고 느꼈다.

좋게 봤다. 아카데미에서 응원할 것 같다. 최소한 여우주연상은 ‘당연히’ 제니퍼 로렌스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을 정도로 대단히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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