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네번째

커트 코베인이 죽은 뒤 그를 알기 시작했듯이, 나는 김광석이 죽은 뒤부터 그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의 생이 어떠했는지 대충은 알고 있고, 음악을 좀 듣는다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노래 하나씩은 노래방에서 능히 부를 수 있을 정도였듯이, 나 역시 그의 음악을 그렇게 피상적으로 좋아했다. 10대 시절에는 그랬다. 그러다가 20대가 되고, 20대의 절반을 지나고, 서른의 고비를 넘어서면서 조금씩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이 나이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몸이 지치고 마음이 늙기 시작하면서 더 깊게 와닿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음악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다. 때론 염세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희망의 빛을 놓지 않는다. 그 끈질긴 생명에의 갈망속에서 처절한 사랑의 아픔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일갈을 풀어 놓는다. 그가 죽기 직전 내놓은 이 유작 앨범은 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목소리를 가장 절절하고 아릅다고 처연하고 불안하게 전달하고 있다.

sb 와 함께 전역 후 처음으로 부대를 다시 찾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도 했다. 몇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냈다. 함께 농구도 하고, 내무반에 나란히 누워 추억을 되새김질하기도 하고, 당시 왕고의 허락을 얻어 훈련병들에게 짤막한 위로와 충고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위병소를 나설 때 더이상 설레이거나 기쁘지 않았다. 등 뒤에는 여전히 군복을 입은채 오늘과 내일을 버텨 내야 하는 군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세상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또다른 젊은이들이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며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낭비해야 할 터였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김광석의 이 앨범을 들었다. 이 앨범에는 좋은 곡들이 참 많다. jh 선배와 후배 hg 등과 함께 홍대 근처의 아주 작은 일본식 선술집에서 이 앨범을 함께 들으며 나누었던 대화처럼, 이 앨범은 가슴으로 들어야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 예컨데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 에서 나오는 벌거벗은 여인네의 모습이 위로해주는 그런 나른한 오후의 느낌같은 것. 동서울 버스 터미널로 돌아오는 그 버스 안에서 무심히 이 앨범을 듣다가 “끊어진 길” 에서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솟구쳤다. 다행히 sb 은 곤히 잠들어 있었고, 나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그냥 흐르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저 아주 단순하고 솔직한 통일 노래였던 이 노래가 왜 그렇게 가슴을 후벼팠는지 지금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땐 그냥 그랬다. 그러고 싶었나보다. 헤럴드 동문 체육대회때 선배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을 함께 연습했고, 큰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큰아버지댁에 마련된 간이 노래방에서 “서른 즈음에” 를 불러 연로한 친척분들께 “우리 아기가 벌써 서른이냐” 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친구를 위해 소주를 함께 퍼마신뒤 노래방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을 목이 쉬도록 부른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여전히 “끊어진 길” 이다. 그때 그 눈물이 너무 순수했음을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눈물은 아주 깨끗했다. 그 눈물이 깨끗했던 이유가 여전히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한때는 함께 어깨를 맞대고 누워 잠들었던 그 친구들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사람으로서의 자책감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전역한 뒤에도 여전히 갈팡질팡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서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한 늙은 복학생의 서러움때문이었는지, 그도 아니라면 그냥 단순히 김광석의 맑은 목소리가 그동안 쌓여왔던 마음속의 찌꺼기를 말끔하게 제거해주면서 발생한 일종의 씻김굿이어서였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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