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그루뎀: 꼭 알아야할 기독교 핵심 진리 20

나는 로마 가톨릭 신자다.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다. 증조 할아버지는 구미/왜관 지역에 교회를 최초로 건립하신 분이고, 몇년전 돌아가신 큰아버지는 몬시뇰이었으며, 지금도 살아 계신 고모님 두분은 수녀님이다. 외가쪽도 만만치 않게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어서 어머니는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가톨릭계 사립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역시 가톨릭계 학교인 서강대에 진학해서 그곳에서 아버지와 만나 결혼했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일요일은 당연히 성당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날로 인식하고 있었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부터는 평일에도 성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장기간 서울을 떠나 조부모님이 계신 대구에 내려가 있는 기간이 꽤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집 특유의 가톨릭 친화적인 분위기에 억눌려 답답해 했던 기억도 난다. 외가 친척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제사는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으며, 한동네에 계속 사는 바람에 성당에서 함께 “나고 자란”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들과 유년 시절을 공유하지도 못했다.

대학교에 들어간 뒤부터는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있던, 나의 삶과 분리할 수 없었던 가톨릭 교리에 대한 회의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예컨데 “전지 전능” 하다던 신은 사탄을 제어할 수 없으며, 죄 짓는 인간들 관찰만 할뿐 적극적으로 구원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신은 어쩌면 그의 창조물인 인간에 대해 대단히 독립적이고 방관자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불합리하게 돌아가는데 그 불합리함을 창조한 것도 결국 신이 아닌가, 그렇다면 신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주체로 기능하는 것인가, 뭐 이런 고민들을 했던 것 같다. 일종의 배신감같은 감정이었다. 그런 고민들을 하던 대학교 1,2학년때에는 그래서 도서관에서 철학 서적에 탐닉했다. 종교에서 잠시 떨어져 철학에서 해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니체같은 변칙적인 종교적 담론부터 푸코나 데리다같은 해체적인 시선까지,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같은 기호학적인 관찰에서 헤겔이나 맑스같은 유물론까지.. 신의 존재 유무를 떠나 (어짜피 신은 인간이 만든 작품 정도라고 생각했다)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삶에서의 어떤 의미를 찾고 싶어 했다.

당시 친한 친구였던, 그리고 현재까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중 하나인 jw 은 당시 독실한 개신교 신자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jw 의 형은 나중에 군종 승려가 되었는데, jw 역시 불교쪽에 더 가까운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jw 의 첫번째 priority 는 연애였고, 연애를 위해 모든 것을 하리라 마음먹은 그였다. 그는 대단한 추진력의 소유자였고 결국 여자친구를 따라 일요일마다 그녀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개종같은 것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jw는 각종 기독교 서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서강대는 꽤 괜찮은 종교학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jw 을 따라 종교학 과목을 듣기 시작했다. 지금은 은퇴하신 길희성 교수님은 한국 불교학계의 거목이셨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그분은 Christianity 와 불교가 결국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올라가는 다른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셨고 그 신념하에 불교학 강의를 개설하셨다. 나는 jw 와 불교와 선불교, 힌두교등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길희성 교수님이 뜻을 함께 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 건립한 대안 교회인 “새길 교회” 에 나가기 시작했다. jw 은 여자친구의 교회에도 나가야 했기 때문에 꽤나 바쁜 일요일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아침에는 새길 교회에, 저녁에는 성당에 나갔다. 절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여유가 허락되지 않아 몇번 가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종교 세가지를 동시에 접하며 나는 길희성 교수님의 생각에 점점 동의하기 시작했다. 현대에 살아 남은 메이저 종교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표현 방법이 다른 것 뿐이다. 하지만,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은 분명히 있다. 한 종교에서 놓치고 있는 것을 다른 종교에서 보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자신이 만약 종교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면, 반드시 다른 종교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신앙을 더 굳건히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며, 더 “옳은”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옳으며 그 외의 모든 종교는 모든 면에서 틀리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그 종교인은 애초에 실패한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사람이 만든 창조물일 뿐이고,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그 다음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프로작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천국에 가기 위해 믿는” 행위가 아니다. 지난 몇천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종교가 현재 살아남아 있고, 그 종교들을 공부함으로써 인류의 가장 높은 형태의 형이상학적 담론들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종교와 종교 사이의 대화 안에서 각 종교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든 믿지 않든, 나는 지적으로 충분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혹은 삶의 최종적인 목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대에 살아남은 종교들에 대해 한번쯤 공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인류의 지혜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아우르는 기독교라는 표현을 여기서 사용할 수 있다면) 기독교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교세를 떨치고 있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절대 인구로만 따지면 이슬람이나 불교도 뒤지지 않겠지만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대부분 국가들의 메인 종교라는 점에서 그 위치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불리우는 서구 사회에서 이 기독교의 위상이 아주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반면 한국을 비롯한 개발 도상국 국가들에서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고려해야 한다. 한국으로 그 무대를 좁혀 본다면, 대체 이 기독교라는 종교가 왜 현대 한국에서 이토록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왜 각종 사회적 갈등의 한가운데에 위치할 수 밖에 없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종교인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이슈일 것이다. 현직 대통령은 서울 시장 시절 서울을 자신이 믿는 신에게 봉헌하기도 했다. 정치와 종교가 이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시기는 고려시대 이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기독교라는 하나의 테두리안에 묶을 수 있을 것인지, 프로테스탄트와 로만 가톨릭이 과연 여전히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배다른 형제같은 종교인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개신교와 천주교가 그리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개신교는 천주교를 공격하며, 천주교는 개신교를 무시한다. 개신교 신자와 천주교 신자 사이의 대화에는 agreement 보다는 disagreement 가 더 많아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지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종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종교가 옳다는 입장을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기 때문에 “왜 너희 종교가 틀렸는지를 논파하는 것” 이 대화의 목적이 되기 쉽상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그렇게 싸워야만이 존재할 수 있는 수준이 종교들은 아니다. 개신교는 더이상 천주교와의 ‘다름’ 을 강조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서 독자적인 세계관을 갖기 시작한지 오래다. 천주교는 개신교에서 비판하는 많은 한계들을 극복하며 현대에 새로운 가치를 갖기 시작했다. 이제 이 두 종교는 더이상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져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뛰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제목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유형의 책 제목. 잘 팔리는 책 제목. 책 제목에 모든 것이 들어있는 그런 책 제목. 결과물도 기대했던 만큼인 것 같다. 나는 개신교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는 가정 하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이 책을 시작으로 이제부터 개신교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쌓아올릴 생각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과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신학자로 많은 교회와 신학교 등지에서 교과서로 사용되기를 마음에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이 책은 교리를 잘 모른채 맹목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개신교 신자들을 위한 교과서이자 나같은 비신자들을 위해 간략히 핵심 교리를 정리해 소개하는 개론서쯤 되는 셈이다. 신이란 무엇인가, 성경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일반적인 담론들부터 창의와 양자, 성화와 견인같은 비신자라면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법한 개념들에 대한 소개까지 (이 책에 따르면) 개신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핵심이 되는 교리들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책을 통해 개신교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예를 들어 이 책은 개신교 신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소위 말하는 기독교의 social service 부분이 완전히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라는 가장 중요한 교리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구원을 위해 개인의 믿음만을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신교는 오히려 소승 불교과 맞닿아 있는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사회에서의 나눔과 베품을 통해 구원을 길을 모색하는 천주교와의 차이점이 이런건가 싶기도 했고. 개신교 교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하나의 출발점과도 같다. 이제부터 알아가야 할 하나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개신교가 앞으로의 나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지금 이 시점에서 가늠할 수 없다.

6 thoughts on “웨인 그루뎀: 꼭 알아야할 기독교 핵심 진리 20

  1. 프랑스에 떼제라는 범기독교 공동체에 일주일간 머물 기회가 있었어요. 상상가능한 모든 종파의 기독교인들이 세계에서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토론하는 곳인데, 위에 말씀하신 문제에 대해서 여러사람(수녀님, 목사님, 성공회 신자, 그리스정교 신자 등등)들과 나눔을 가질 수 있어 참 좋았어요. 거기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열린 사고를 가진 분들이기도 하고요.

    •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저도 한번 가서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할 깜냥은 당연히 없겠지만) 그분들이 나누시는 대화를 엿듣고 싶어지는데요!

  2. 제가 대학원 공부하던 시절에 길희성 교수님이 특강하러 오셨던 적 있었습니다. 그 학기에 그 분의 저술로 스터디도 하고 발표도 하고 그랬더랬지요. 비교종교학적인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예수보살론”이란 말도 기억나고… 배운 게 많았던 수업이었는데 10년 지나니까 다 잊어버렸네요 ㅠㅠ

    • 그랬군요.. 좋은 기회였을 것 같아요. 부럽네요. 예수보살론은 유명하죠 ㅎ

  3. 역사를 살펴 볼 때에… 철학은 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지요. 유명론과 실제론으로 이름되어진 스콜라 주의는 지금의 카톨릭의 교리를 어느정도 완성 시킨 원인이 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 영향이 성경 해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은 벌게이트 버전의 라틴어 성경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해석상의 단어 선택이 철학적 관념과 뒤섞여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을
    만들어 냈습니다.

    • 어짜피 성경은 신화이고 우화입니다. 당시 인근 지역의 구전 설화를 그대로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 그 자체에서 팩트를 찾으려고 하면 안되겠지요. 문제는 해석입니다. 성경에 대한 해석과 예수라는 인물이 설파했던 아나키스트적 가치가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그 교리를 일반화시키는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었기에 가능한 거였죠. 해석의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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