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꿈

어렸을 때 꿈이 경제학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조금 카테고리를 크게 잡아도 학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때 자신의 꿈을 말 없이 행동만으로 표현해 친구들이 추측하게 하는 게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아무 생각없이 과학자 흉내를 냈다. 현미경을 보는 것이 과학자의 전부인줄로만 알던 시기였다. 중학교 이후 꿈이 조금 구체화되던 시기에는 음악 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서브같은 잡지에 글을 쓰는 성문영처럼 되고 싶었다. 국민학교때부터 글짓기를 좋아했고 중학교때 진우를 만나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된 꿈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아버지께서 직접 음반 회사에 다니던 당신 제자의 와이프를 집으로 초청 (..), 나를 앞에 앉혀 두고 왜 음악 평론가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설명하게 하신 뒤로 그 꿈을 접었다. 굶어 죽는 것이 두려웠다기 보다는 그토록 강하게 나의 꿈을 반대하시는 부모님과 싸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이후로 몇년동안 꿈을 꾸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간 뒤 새롭게 가지게 된 꿈은 서강 헤럴드 수습기자 세미나에서 만난 한 선배의 짤막한 강의를 듣고 난 뒤 생겨났다. 그 선배는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하며 우리가 100미터쯤 되는 곳에서 출발-해야-한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그보다 1미터라도 앞에서 출발하게 도와주는 것이 현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이후로 나의 꿈은 인류라는 거대한 물줄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한방울의 작은 조각이 되어 역사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되었다. 이 꿈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 꿈의 범주 안에서 내가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꿈이 꼭 직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경제학을 업으로 삼는 학자를 구체적인 직업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도 몇년이 흐른 다음이었고, 솔직히 지금까지도 내가 학자로서의 자질이 있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다. 아마 이 의심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학자로서의 정체성이나 자신감보다는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나에게는 훨씬 중요한 것 같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들에서 살아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쓸모가 없지는 않겠냐만은, 내가 그나마 잘 할수 있는 것들중 하나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묻혀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조금은 덜해지는 것 같다.

4 thoughts on “어렸을 때 꿈

  1. 나는 [ ] 를 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축복 받은 사람들이에요.

    언젠가 애를 키울 일이 생기면 그때 걔는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하지 말고 굶어 죽더라도 (!) 꿈을 따라가는 삶을 살게 하고 싶어요. 근데 정작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더 현실에 굴복 (…마땅히 떠오르는 다른 단어가 없네요 훗) 해서 그렇게 못할려나..

    • 정말 그런 분들 보면 부럽죠. 되게 부러워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요.

      그리고 저도 같은 생각 많이 했어요. 저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만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2. 예전에 종혁씨가 미국에 가기전에 코엑스에서 만났을 때, 그 때 나에게 종혁씨가 저 말을 했었어요. 두번째 단락의 말. 우리 다음세대들이 더 앞에서 출발하게 도와줘야 한다는. 그때까지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꽤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다른 친구를 만나서 그 얘기를 했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어, 하면서 말이지요. 그때부터, 나는 늘 종혁씨의 말이나 글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 같아요.

    • 제가 그랬어요? 엄청 허세 떨었군요 ㅎㅎㅎ 저에게서 배운다고 느끼시는 것들중 대부분은 아마도 이미 다락방님께서 알고 계신 것들일거예요. 저처럼 말이 많은 사람은 그런 것들을 다 표현하는 것 뿐이고 다락방님은 마음속에 품고 계시는 것이겠죠. 아무튼 감사합니다. 내년에 한국 들어가면 꼭 한번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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