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ah Polley: Take This Waltz

이 영화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5년째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은 친구처럼 다정하고 아빠처럼 듬직하다. 하지만 요리 전문가인 그는 여자가 큰 용기를 내어 유혹하려 해도 오븐 위에 있는 치킨을 쳐다볼 뿐 절대 그녀를 향해 돌아보지 않는다. 그들이 함께 자는 침대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작고 그래서 둘이 꼭 껴안고 자야 할 정도로 따스해 보이지만, 이들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는 항상 서로 등을 돌린 상태이기 일쑤다.

다른 비행기로 갈아 타는 과정이 몹시도 두렵고 시종 일관 안절부절하지 못할 정도의 극도의 섬세함을 가지고 있는 이 여자에게 한 매력적인 남자가 나타난다. 예술가이고, 낭만적이며, 무엇보다 그녀와 말이 통한다. 대화가 가능하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떠한 육체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지만 이미 그들은 대화를 통해 동침을 시작한다.

남편은 그녀를 보내 주었고, 그녀는 울면서 떠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예술가와 뜨겁게 사랑하기 시작하고, 아주 빠른 속도로 식어 갔다. 그렇게나 싫었던 전 남편과의 진부한 관계가 반복되는 순간이다. 그녀는 이미 지극히 편안했던 남편을 스스로 떠나 왔고, 그렇게 많은 것을 포기하며 찾아 떠난 새로운 사랑과의 관계는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녀가 돌아가야 할 곳은 남편과의 기념일마다 갔던 극장일까 아니면 새로운 사랑과 두근거리는 데이트를 했던 놀이공원일까.

이 영화는 충격적이다. 아름답다. 서늘하다. 먹먹하다. 그리고 무척 슬프다. 단순한 불륜 영화도 아니고, 로맨스 영화도 아니며, 그렇다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엇나간 사랑에 대해 성토하는 교과서같은 영화도 아니다. 한 여자가 있고, 그 여자는 사랑을 갈구했으며, 사랑을 향해 떠났고, 그 사랑이 식어 버린 것 뿐이다. 그 여자의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여자는 많이도 울었으며, 또 많이도 웃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혼자 놀이 기구를 타며 그녀가 짓는 표정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압축하고 있다.

미쉘 윌리엄스의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감독인 사라 폴리의 섬세한 연출을 먼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그녀는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절묘하게 연결시키며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낸다. 좋은 영화가 흔히 갖는 미덕이다. 대사 하나 하나까지 숨겨진 의미를 갖게끔 만들며, 한 장면을 찍는 카메라의 움직임까지 그녀의 시선을 담아낸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보며 다양한 층위에서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장치를 군데 군데 만들어 놓았다. 결국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지는 위대함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감정에 기반하고 있는 영화이고, 한 여성의 감정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형상화시키고 있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기계적인 기술들이 들어갔겠지만, 결국 마지막에 관객이 받아들이는 것은 한두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는 어떤 형식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여성의 마음 그대로, 그 감정 그대로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데이빗 린치나 허우샤오시엔같은 대가들의 영화에서 받았던 느낌과 상당히 유사한 인상을 받았다.

미쉘 윌리엄스는 왜 그녀가 당대 최고의 여배우인지 이 영화를 통해 당당하게 증명하고 있다. 손가락 끝부터 눈썹의 떨림까지 그녀는 온몸으로 마고라는 여배우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내고 있다. 그녀 덕분에 마고라는 캐릭터는 넘실넘실 살아 움직이고, 그녀는 자칫 심심해 보일 법한 영화의 출발을 아주 독창적이고 기묘한 감정을 담아내는 결말로 이끄는 원맨쇼를 펼쳐 보인다.

이 영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한국어 제목인 <우리도 사랑일까> 가 약간 밋밋해 보이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수영장 샤워실 씬. 나는 이 씬의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발랄하고 상대적으로 젊은 여자 세명이 샤워실의 한쪽 벽에서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 반대쪽 벽에는 뚱뚱하고 축 늘어진 살을 가진 늙은 여자들이 묵묵히 몸을 닦고 있다. 젊은 여자들은 다리의 털을 왜 밀어야 할까에 대해 투덜거리지만 늙은 여자들은 조용히 몸을 닦다가 역시 같은 비루한 몸뚱이를 지닌 그들의 친구들이 들어오자 그제서야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나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미쉘 윌리엄스가 몸을 사리지 않는 노출 연기를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시나리오상에서 드러난 이 장면이 가지는 의미를 파악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 외에도 레오나드 코헨의 “Take This Waltz” 를 배경으로 마고와 대니얼의 사랑이 급격하게 달아 올랐다가 식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완전히 다른 색깔을 가지게 되는데, 그전까지 약간은 방심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던 내가 바짝 정신을 차리고 긴장하며 집중하게 되었던 전환점이기도 했다.

음악은 덤이다. 감독은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으로 역시 캐나다 출신 뮤지션들의 음악을 고루 사용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Take This Waltz” 를 부른 레오나드 코헨의 노래부터 파이스트까지, 그리고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를 영화사상 가장 슬프게 사용하는 놀이공원 장면까지. 음악은 이 영화를 구성하는 다른 중요한 축이다.

두명의 남자 배우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세스 로건은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남편으로 출연해 미쉘 윌리엄스가 ‘마음껏 튕겨져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단한 벽같은 느낌을 제공해 준다. 대니얼 역의 루크 커비 역시 매력적인 얼굴 뒤에 감추어진 쓸쓸함과 차가움을 잘 표현해 냈다. 이 두명의 남자 배우가 형편없었다면 이 영화는 자칫 미쉘 윌리엄스의 공명없는 호연만으로 가득찬 영화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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