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Thomas Anderson: The Master

폴 토마스 앤더슨이 그의 영화들에서 천착해온 주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Irrationality, disconnectedness, and craziness of pure products of America.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른 문화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만들어낸 모든 창조물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거대 포르노 산업, 초기 석유 시추 사업, 그리고 현대 신흥 종교 시장. 앤더슨은 그러한 돌연변이들을 영화의 중심에 놓는다. 그는 한 개인의 연대기를 통해 미국 사회와 역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한다. 미시적인 관찰로부터 상당히 큰 규모의 뼈대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앤더슨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영화속 주인공과 그를 집어 삼키는 사회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관계 속에서 앤더슨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들의 본질을 치열하게 밝혀 낸다.

<The Master> 역시 그의 필모그래피가 보여주는 일관된 주제 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 두 상이한 세계가 있다.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려는 세계와, 그 어떤 것에도 동화되지 않고 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다른 세계. <The Master> 는 이 두 세계가 만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충돌한 뒤 갈라서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두 세계는 The Cause 라는 신흥 종교를 창시한 뒤 교세를 확장시켜 가는 랭카스터 도드와 알콜중독자 아버지와 정신병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2차 대전에 참가하고 섹스 중독과 충동적인 폭력과 같은 정신병적 트라우마로 가득찬 프레디 퀄이라는 두명의 인물로 상징된다. 도드는 프레디를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 이고, 도드에 의해 거두어진 프레디는 도드의 곁을 맴돌며 때로는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때로는 도드의 가장 충실한 주변인으로 남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매체는 도드와 프레디의 관계를 어긋난 부자관계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하더라) 이 영화의 주제는 미국 신흥 종교의 폐단이나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이 겪는 후유증과 같은 진부한 스토리가 아니다. (때문에 톰 크루즈가 이 영화를 보고 기분이 나빠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또한 이 영화는 개인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악에 대한 탐구나 사회적 환경에 의해 한 개인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에 대한 관찰같은 심리학적인 영화도 아니다. <The Master> 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선천적인 한계’, 즉 비논리성과 폭력성, 억압적 기제, 군중 심리, 광기에 대한 병적인 거부 현상, 획일적인 기독교 사상처럼 ‘치유될 수 없는’ 미국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다. 그러한 사회적 질병을 두 개인에게 투영함으로써 그들의 표정에서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을 읽어 내려갈 수 있게 만든 영화다.

이러한 시도가 가능하게끔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배우들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다. ‘연기’ 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호아퀸 피닉스는 거의 완벽하게 프레디 퀄이라는 인물에 몰입되어 있다. 그는 프레디 그 자체가 되어 숨 쉬고 웃고 울다가 찡그린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레디가 뒤틀린 표정으로 웃을 때 엇나가는 입술 모습과 탈골된 듯한 구부정한 어깨를 기억할 것이다. 피닉스는 몸을 일부러 뒤틀리게 바꿔 버림으로써 육체 그 자체를 통해 앤더슨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다. 그가 내뱉는 대사들이나 하는 행동들에 앞서 관객이 직관적으로 받아 들이게 되는 이러한 부분들이 앤더슨의 argument 를 보다 완벽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그의 이름에 걸맞는 연기력으로 영화를 장악한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신흥 종교의 교주 역할을 그보다 더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연기자는 지구상에 몇 없을 것이다. “hidden master of the master”, 즉 교주의 아내이자 교주의 병적인 집착과 성적인 욕구를 다스리며 그를 잘 ‘포장’하는 숨은 실세로 등장하는 애이미 아담스 역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에 이어 <The Master> 의 영화 음악도 라디오헤드의 멤버인 조니 그린우드가 맡았다. 앤더슨은 전작에서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을 영화의 중요한 요소로 사용했다. 즉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그린우드와 영화의 내용에 대해 상의했고, 어떤 장면에서는 영화보다 음악이 먼저 만들어져서 영화의 장면으 구성하는 데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도 음악은 중요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 와 같은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트랙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 프레디와 도드의 내면 심리를 나타내는 표현 도구로 적절하게 사용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앤더슨이 완벽에 가깝게 창조해낸 1950년대 미국의 풍경이다. 이 영화는 65mm 필름으로 촬영됐다. 1996년 <햄릿> 이후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하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65mm 필름이 사용된 영화로 남을 것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앤더슨은 아주 선명한 장면을 인상적으로 담아낸다. 프레디가 잠시 촬영기사로 일하는 모습을 담은 백화점씬은 마술과도 같은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앤더슨은 이 영화를 통해 조금 더 자신의 천재성에 의존하는 듯 보인다. 즉 이 영화는 종종 영화의 전통적인 서사기법이나 관습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내러티브는 종종 단절되며, 씬과 씬은 논리적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그는 직관적으로 편집을 한 듯 보이며, 이는 그를 데이빗 린치와 비교하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감’ 이 전통적인 영화의 서사 기법보다 효율적으로 자신이 말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이유때문에 이 영화는 <데어 윌 비 블러드> 처럼 영화가 끝나자마자 전원이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10분동안 쳐야 하는 그런 영화가 되지 못했다. 조금 더 많이 생각해야 하며, 조금 더 많이 앤더슨의 머릿속을 탐구해야 이해가 가능한 영화다. 그래서 프레디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처음 30분이 압도적으로 황홀한 영화의 완벽함을 보여주었다면 그 이후 프레디가 도드를 만나 그와 얽히고 섥히는 나머지 한시간 30분은 때로 지루하기도 하며 (실제로 오늘 극장에서 나와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여섯명이었는데 그중 한명이 중간에 나갔다) 논리적인 인과관계로 잘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아무런 이유없이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이름만으로 영화를 선택해도 그렇고, 호아퀸 피닉스의, 아마도 그의 일생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로 기록될, 잊지 못할 표정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4 thoughts on “Paul Thomas Anderson: The Master

  1. 너무나도 공감되는 영화평 이었습니다.^^ 천재는 천재가 이해하고 알아본다고 하였죠..!!
    아는만큼 보인다고 당신의 지식의 폭이 대단하십니다..
    한가지 여쭙고 싶은 것은 당신은 “매그놀리아”의 마지막 개구리 낙하 장면을 어떻게 이해하셨나요??
    앤더슨은 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대답을 했데요..” “그냥요…!!”
    -앤더슨과 나이가 같은데 평범할데 그지 없는 중년이-

    • 감사합니다. 과분한 말씀이세요. 저는 그 개구리 낙하 장면을 굉장히 직관적으로 받아 들였어요. 거기에 무거운 해석을 들이대면 모양새가 조금 우스워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말씀해주신 기자회견의 내용이 일견 타당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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