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 Porter: In Between Days

나이가 들면서 딱히 표나게 나쁜 사람도 없고 한없이 착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누구나 마음 속에 악한 마음과 착한 마음이 공존하며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인간은 약하며,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기억은 늘 왜곡되며, 선택에는 늘 책임이 따른다. Andrew Porter 가 데뷔 단편집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에서 천착했던 주제는 기억과 선택이다. 그는 3인칭 시점을 굳이 고집하지 않으며 최대한 극중 인물의 시선을 견지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인물에 대해 서술하고 있을 때에도 포터는 독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정보만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등장인물이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한 부분은 끝까지 희미하게 남겨진다. 그리고 그 기억의 망각과 왜곡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인 한 인간의 삶에서 점점 뒤로 밀려난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며, 잘못된 선택에는 그만큼의 고통이 뒤따른다. 잘못된 선택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해결되는 것이란 우리의 실제 삶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상처는 아물 수 있지만 거의 항상 흉터를 남기기 마련이다. 문제는 선택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나약한 인간은 그것을 컨트롤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렇게 남겨진 흉터를 어떻게 보듬어 나가느냐일 것이다.

그의 첫 장편 <In Between Days> 는 휴스턴 교외지역에 거주하는 한 중산층 가정의 이야기다. 아주 평범해 보이던 한 가정이 어떻게 스르르 부서져 가고 다시 어떻게 미약하나마 모여 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은 나약하고, 커다란 위기가 닥쳤을 때 사실상 그것을 해결해 나갈 만한 능력이 거의 없다. 자신 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무기력하게 지켜볼 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서로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무능력함 앞에서 좌절하는 것 뿐이다. 그 와중에 가족이라는 연결 고리가 끊어진다면, 한 개인에게 남아 있는 희망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이 결핍된 듯한 이 가족의 구성원들은 어두운 위기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며 잊고 있었던 그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발견하게 된다.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야만 얻을 수 있는 그것을 다시 놓치지 않기 위해 눈물 겨운 사투를 벌인다.

그의 단편들이 그러하듯이 이 장편 역시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미스테리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고 주요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후반부에 가서야 풀어 놓지만 그것이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가게 만드는 원천적인 힘은 아니다. 구조적으로 이 소설은 한 가족의 네 구성원의 시선을 번갈아 가며 취하는 방식을 택한다. 즉 동일한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듦으로써 한 가족 내에서 구성원끼리 가지고 있는 시각의 차이를 구조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더러,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미스테리적인 구조의 큰 뼈대를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드는 역할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소설은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주요 등장인물이 네명이니 네배 정도 느린 속도로 전개된달까. 극적인 사건이 있다고는 해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포터는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충격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하나의 사건을 아주 사려깊게 묘사하는 데에 치중한다. 위에 기술한 바와 같이 포터가 천착하는 주제는 (지금까지는) 항상 기억과 선택이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의 어느 단편을 길게 늘여 놓은 것과 같은 이 소설에서 포터는 한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함으로써 우리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또한 선택에 따른 결과는 항상 그 선택의 흔적을 깊게 남긴다는 사실을 명시함으로써 우리의 미래에 대한 고민 또한 함께 실어 나른다.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포터는 이 소설이 해피엔딩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마도 그는, 내 생각에, 그정도로 “나쁜 선택” 후에 따른 “결과” 혹은 “책임” 이 “그 정도” 였다면 충분히 해피엔딩이라고 할만하지 않은가,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단편들과 이 새 장편을 읽어 보면 그는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결코 인간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이는 그의 스승인 매릴린 로빈슨의 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다. 포터는 다른 인터뷰에서 로빈슨에게 사사할 당시 그녀가 항상 등장인물이 “open destiny at the end of a story or a novel” 를 갖게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그는 한 사건이 소설 내에서 완전히 종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창동도 비슷한 말을 했다. 기-승-전-결 의 고전적인 서사 구조는 사실 우리의 실제 삶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신의 작품들은 그저 한 인간의 삶의 어떤 부분을 보여줄 뿐이라고.) 이 소설 역시 Chloe 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끝맺음을 한다. 그녀의 운명은 완전히 열려 있고, 그녀는 앞으로 또다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선택은 가족 전체를 위기로 몰아 넣었다.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 결과 그녀는 다른 위치에 놓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번 더 기회가 올 것이다. 그 선택은 조금 더 나은 선택일까. 소설은 그것에 대해 굳이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삶이 아주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조차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소설도 굳이 억지로 희망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는다.

5 thoughts on “Andrew Porter: In Between Days

  1. 책을 읽기 전 In between days의 리뷰를 찾던 중 이 블로그로 흘러들어왔습니다. 여기에 댓글을 남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은 후 다시 찾아서 글을 읽어봅니다. 덕분에 포터의 단편집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책 읽는 내내 Richard의 관점이 제일 와닿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으면 다른 인물들의 관점이 더 와닿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

    • 먼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글이었을텐데 시간을 내어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한국인이 이 소설을 찾아 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반갑네요. 저도 리처드에게 애착이 많이 갔어요. 어쩌면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단편집이 훨씬 좋아요. 물론 이 소설도 좋지만요. 꼭 읽어보세요.

  2. 안녕하세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작품을 읽고 나서 포터의 굉장한 팬이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작품을 찾아보던 중 in between days 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고 리뷰를 찾아보던 중에 이 블로그까지 오게 되었네요!! 리뷰 잘 보았구요~ in between days를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사실 한국에 정식으로 번역될 정도의 작품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국어로 쓰인 리뷰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도움이 되셨다면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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