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비행운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당연히 飛行雲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제목은 非幸運 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김애란을 좋아하는 이유를 몇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작가의 소설은 아주 단순한 플롯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메인 플롯이 있고, 대구를 이루는 서브 플롯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의 주제에 맞춰 호응한다. 보통 메인 플롯이 현재를, 서브 플롯이 과거를 비춘다. 현재는 과거를 소환하고 과거는 현재를 비춘다. 이 단순한 구조 속에 주제를 명롱하게 빛난다. 굳이 이리 저리 추리하고 꿰어 맞출 필요가 없는데도 또렷하게 주제 의식이 살아 있다.

둘째, 김애란은 현실의 누추한 곳을 결코 아름답게 꾸미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또렷하게 비추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어둡고 무겁다. 물론 곳곳에 유머가 있다. 하지만 이 유머들은 피상적일 뿐이다. 결코 현실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지 못하는, 일시적인 갈증의 해소를 위해서만 기능할 뿐이다. 그래서 현실을 더 똑바로 보게 된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흔히 잊고 지낼 법한 아주 어두운 곳들이다. 전 남자친구에게 이용당해 우스꽝스러운 몰골을 감수해야 하는 여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적막한 공사판 한가운데에서 양수가 터져 버린 여자, 어머니의 시체를 이고 나와 아버지가 죽었던 크레인 위에서 희망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소년, 가족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조차 지켜 주지 못할 정도로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 남자, 감옥에 들어간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명절 야간 근무를 자청하는 공항 청소 노동자, 전 남자친구에 의해 끌려 들어간 다단계에서 벗어나고자 전 제자를 배신한 여자, 할머니가 쓰레기를 주워 만들어준 종잣돈을 서툰 해외 여행에 써버리는 여자, 소비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 9cm 의 하이힐을 포기하지 못해 비틀거리는 여자.. 그들의 고단한 삶 안으로 깊숙히 파고 들어가 ‘내 일이 아니니까’ 한번쯤 주었던 시선을 이내 다시 돌려 버릴 수 있는 마음속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냉정함이 있다. 김애란이 써내려가는 문장들 속에서 진심이 아닌 위악스러움이나 위선을 본다면 그것은 읽는 사람이 아직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믿고 있거나, 자신의 삶 속에 있는 불행을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아주 낙천적이거나.

셋째, 김애란은 단순히 ‘행운이 없는 곳’ 을 가만히 응시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고통스럽게 비춘다. 혹은, 통렬한 자기 반성 위에 조금은 더 나은 삶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근심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불투명한 회색빛이 가득한 이 소설집을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작가의 그러한 고통을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혹은, 그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얼마나 비겁한 행동인지 모를 정도의 무지함에서 막 탈피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몇몇 작품은 가슴을 치고, 다른 몇몇 작품은 그저 그랬다. (난 “물속 골리앗”,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하루의 축”, “벌레들” 이 좋았고 “큐티클” 과 “서른”, “호텔 니약 따” 는 그저 그랬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모두 균일한 농도와 세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색깔은 하나같이 푸르스름하거나 탁한 회색빛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새어 나오는 빛같은 것이 보였을런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착각이었을 수도.

<두근두근 내인생> 에서 나는 아주 전형적이고도 신파적인 서사 구조를 견디어 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장들 안에서 진심을 느꼈는데, 이번 소설집에서 나의 그러한 느낌이 그리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2 thoughts on “김애란: 비행운

  1. 정이현이 청담동 오피스텔에서 하는 모든 것들을 김애란은 편의점에서 해결하죠. 멋진 작가 같아요.

    • 정이현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뭔가 멋진 코멘트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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