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자아와 현실 자아

우선 인터넷 상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형상과 개개인이 모여 만들어 내는 집단적 집합체에 대척되는 개념으로 “현실”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워낙 삶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들어오다 보니 가끔 인터넷 상의 자아와 현실에서의 자아가 분리되는 현상을 종종 목도한다. 나는 인터넷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발현되는 나의 모습이 현실에서의 나의 모습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상대방이 나를 ‘읽기’를 바란다. 하지만 ‘표현’ 과정에서 종종 현실속의 나와 인터넷상의 나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기도 하며,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상이한 두 공간에 존재하는 나의 형상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해하려는 시도 또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코끼리의 다리를 만질 때와 코를 만질 때 각기 다르게 반응하는 것처럼.

다른 공간에서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는 나의 모습중 어느쪽이 조금 더 “진짜” 나의 모습과 가깝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블로그에 적는 글들이 술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할 때보다 더 솔직하고 왜곡없이 나의 모습을 표현할 때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는 이 두개의 자아가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발현될 수는 없을 지언정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완전한 나의 모습을 “표현” 해주는 수단으로서 기능하기를 소망한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게 일기를 적자, 유학을 준비하면서부터 시작된 심적인 갈등과 이러 저러한 상념들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자, 라는 생각으로 워드프레스에 새롭게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단상들을 기록하면서 ‘정보 제공’ 의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보 제공의 기능이 전혀 없는 일기의 경우 비대칭적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공감을 표하기도 했고 개인적인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들이 목격한 나의 모습은 실제 나의 삶중 아주 일부일 수 있고, 때로는 현실속의 내 삶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 나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멈추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생각을 쉬지 않는다. 블로그에 적히는 대부분의 글들은 나의 행동보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작성된 것들이다. 블로그를 통해 나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아마도 나의 표정이나 말투, 혹은 체격이나 걸음걸이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나의 성격에 대해서도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 대할 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얼굴의 생김새나 말투, 표정과 같은 1차원적인 형상들부터 아주 단순한 대화를 이어나갈 때 드러나는 일상에서의 성격같은 것들이다. 내가 블로그에 적는, 소위 말하는 ‘생각’ 들은 현실에서의 관계가 깊어졌을 때 비소로 대화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

인터넷과 현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다른 형식을 통해 발현되는 상이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공간에 침식되어 균열을 경험할 수도 있다. 아마 인터넷상에 떠도는 수많은 자아들은 이렇게 현실속의 자아와 분리된 것들일 것이다) 때문에 이 상이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만약 당신이 블로그에서 이루어지던 대화를 현실로 끄집어 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 형식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블로그에서 드러나는 나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그 모습을 현실에서 확인하기를 원한다면, 과연 이 두 자아가 동일한 것인지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의심이 합당한 것으로 드러났다면 역시 대화의 형식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블로그를 이성을 “꼬시는” 수단으로 활용한 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기본적으로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인간 관계는 성별이나 나이와 무관한 일반적인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큰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성의 감정은 현실이다. 이성간에 일반적으로 일컬어 지는 친밀한 관계 혹은 우정이라고 불리워지는 감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최소한 나는 그러한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아무런 사심없이 블로그에서 이성들과 교류하며 때로는 현실에서 2차적인 만남을 갖는 것이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아마도 나와 당신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한계점이 될 것이다. 나는 그저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대화의 기저에 감정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감정은 관계 이후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른 공간. 다른 혹은 동일한 자아. 다른 대화 방식. 관계. 그 모든 것들을 지나온 다음에야 비로소 감정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소한 나의 삶은 그랬다. 이건 10년도 넘게 만난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부분이다. 최소한 나는 여자와 자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마음에 맞는 사람 만나서 즐겁고 좋은 대화를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다. (물론 이것도 다른 관심사들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지만) 그래서 가끔 따분한 대화 상대를 만나면 엄청난 시간 낭비를 했다는 자괴감에 몸서리친다. 재미있는 상대를 만나면 시간가는 것이 아깝고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를 찾기 시작한다. 딱 거기까지다. 내가 현실속에 속한 당신에게 관계와 감정에 대해 묻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방금 처음 만난, 혹은 한두번 정도 만난 적이 있는 서먹 서먹한 관계일 뿐이다. 마치 영화 ; 의 주인공 네오가 가상 현실에서 깨어나면 기계 사냥꾼 한마리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잘 것 없는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해서 관계가 시작된다면 그 이후에 우리 사이에 등장하는 대화들은 – 다른 공간에서 나누었던 다른 자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기억에 힘입어 – 아마도 조금 더 윤택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고. 그러다 감정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 감정이 우정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고. 그건 발생하지 않은 예측일 뿐이니까.

12 thoughts on “인터넷 자아와 현실 자아

  1. 학부때 수필쓰는 수업에서 들은 얘기인데요, 글을 써서 책이나, 신문이나 잡지로 출판하는 작가들도 그들이 글을 쓰는 목소리는 현실이라는 세상속에 조금 다르다고, 그게 바로 글의 매력이라고 배웠어요. 블로그와의 차이는 다른 사람이 그 목소리를 훨씬 쉽게 그리고 빨리 들을수 있다는거겠죠. 글을 쓴 사람이 그걸 원하던지 말던지 말이에요.

    • 작가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역시 완벽하게 동일한 자아를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아요.

    • 어 저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요. 글과 작가의 관계는 오리모양과자와 오리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2. 인터넷에서 표현된 자아가 현실의 자아와 얼마나 일치하고, 온라인에서 맺은 관계가 오프라인에서 재현되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는 참 흥미로운 주제죠.

    인터넷 자아가 현실 자아를 왜곡할 때는 말과 글로 드러내는 내 ‘생각’이 나를 진실하게 표현한다는 착각에 빠질 때 아닐까요. 건방지게 들릴 수 있지만, 전 온라인에서’만’ 알고 있는 사람은 가상 인물과 다름없다 여겨요. 왜냐하면, 대개 자신을 설명할 때 사실 그대로, 행동만 기록하지 않으니까요. 극소수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경험한 생각과 느낌으로 자아를 표현하려 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본의 아니게 현실의 나를 아전인수격으로 왜곡하기 쉽고요.

    그렇기에 인터넷 매체에서 글로 표현된 자아 속 가장 진실한 면은, 글 안에서 본인이 설명한 내 모습이 아니라, 그 모습을 누군가 발견해주고 선택해주길 바라는 ‘열망’,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 제가 인터넷상의 ‘필명’ 을 포기하고 실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문이예요. 조금이라도 저 현실에서의 저를 온라인상의 저에게 투영하고 싶었던 거죠. 물론 그 과정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다만 왜곡을 통해 다른 자아를 인위적으로 창조해 내는 행위는 철저히 지양하고 싶었던 거죠.

    • 필명 대신 실명을 사용한 후 ‘실제’ 그 왜곡이 줄어들었나요? 실제적 행동이 노출되는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만 알고 지내는 이에게도 효과가 있었는지요? 바람이나 다짐이 아닌, 현실이 어떠한지 매우 궁금해서요.

      필명 대신 실명을 쓰는 건 어떠한 다짐의 표현일 수 있겠지만, 전 다짐은 다짐일 뿐이라 생각하거든요. 영화 에서 요다의 명언도 있잖아요. “Do or do not, There is no try.”

    • 제 경험은요.. 필명을 포기하고 실명을 쓴다는 것은 익명성을 포기한다는 거잖아요. 때문에 제가 아무리 넷상에서 꾸며 봤자 현실의 제 모습이 얼마든지 까발려 질 수 있다는 전제를 하나 더한다는 것이 큰 차이를 가져 왔어요. 원래 거짓말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넷상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게끔 만드는 강제적인 장치를 하나 만들어 둔거죠. 물론 의지의 차이일 뿐이긴 합니다 ㅋ

  3. ㅎㅎ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좋지만 (난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이러이러한 것을 좋아한다)
    헌데, 난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짓기 시작하면
    또, 그것도 힘든듯.
    위 포스팅 내용과 전혀 무관한 답글일듯 ㅎㅎ

    • 무엇을 걱정하시고 염려하시는지 잘 알겠어요. 그 점 항상 유의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4. 인터넷 상의 저와 현실 상의 말을 하는 부분이 적극성이나 활발함의 차이가
    많이 나서 인터넷 상의 그런 장점들을 제 현실에 어떻게 하면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며
    검색하던 차에 좋은 글을 읽고 갑니다.
    인터넷은 자신의 이상적인 생각 위주로 쓰게 된다는 말이 참 와닿고
    다시금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과는 상관없는 얘기이지만 사고, 사유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세요?

    인터넷 상의 저의 또 다른 모습의 장점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요?

    위에건 질문이고 아래것은 상담이네요…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찾아 주시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유하는 능력은 저도 참 가지고 싶은 부분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과의 대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더 많은 스승들로부터 더 많은 가르침을 받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같은 경우에는 두 자아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으로 인터넷 상에서 실명을 사용하고 현실에서 공개되는 저의 모습만큼을 인터넷 상에 의도적으로 공개? 노출? 하려는 시도를 했어요. 그걸 노출증이라고 걱정하는 지인들도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허세를 부린다거나 거짓말을 하는 일을 막을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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