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울 감상 중간 점검

1. 여름밤의 부산과 주말의 이태원을 경험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가 어떤지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원래 유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최근 한국 놀이 문화의 흐름이 썩 마음에 드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등을 돌리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 있던 가장 순둥이같았던 친구들까지 유흥 문화에 휩쓸려 다니는 것을 보면서 역시 한국에는 당분간 들어오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2. 한국은, 특히 서울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기에는 결코 괜찮은 장소가 아니다.

3. 서울은 거품으로 뒤덮여 있다. 거의 모든 것들이 버블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거품을 부풀려 가며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고 젊은이들은 점점 더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보는 비대칭적으로 분배되고 있으며 이는 새롭고 뒤틀린 권력의 구조화를 공고히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당하게 될 것이며 혼돈의 반복 속에서 삶을 원망하며 노후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슬픈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4.  사진기는 가져왔는데 사진을 컴퓨터로 옮겨 담을 수 있는 케이블은 가지고 오지 않았다. -_- 마음에 드는 사진이 몇장 있다.

5.  하루 세끼 어머니가 차려주신 상을 받아 먹으며 소파에 누워 몇백개가 넘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는 것은 미국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다. 원없이 즐기고 있다. 무한도전을 커다란 텔레비젼 화면으로 보는 것이나 메이저리그 경기를 한국어 해설로 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마지막 스타 크래프트 1 대회도 눈물과 함께 지켜보았다 ㅠ

6. 미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져 간다. 이제 이 곳에는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7. 그래서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자도 왠만하면 그쪽에서 찾고 싶다. 왠만하면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는 외국인이나 한국에 딱히 큰 미련이 없는 한국인으로. 부모님께서 많이 편찮아 지시기 전까지는 되도록 미국에 남아 한국과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8.  한국으로 돌아 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주 조용히,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관계들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그게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9.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1년을 버텼는데 막상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고 나니 기대만큼의 감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건 일회성의 만남이 가지는 한계때문이지 그 사람들 자체가 내 삶에서 가지는 가치의 높고 낮음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들과 1년 내내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관계는 아마 꽤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러하지 못할 뿐이다. 앞으로도 그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고.

10. 지금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논문과 책, 그리고 되게 이쁜데 되게 착하고 되게 똑똑한데 또 엄청 나를 좋아하는 여자 정도인 듯. (농담입니다)

6 thoughts on “한국, 서울 감상 중간 점검

  1. 참..마음이라는게 신기하죠..ㅎㅎ 미국에 있을때는 그렇게 그리운 한국인데, 막상 가면 미국이 그립고..외국 살다보니 한국을 참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거 같아요. 그쵸..버블이라는 단어..공감해요..저는 한국을 마지막으로 다녀온지도 벌써 3년이 넘었어요..따끈따끈한 소식 반가워요..

    • 맞아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은 미국인데 가족들은 한국에 있고.. 그 사이 경계선 어딘가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명확히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참 빠르게 변하는 것 같아요. 그게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고요.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 한국, 그것도 이태원 옆에 사는 저는 정작 그 유흥 문화를 전혀 모르고 ㅠㅠ 아, 한국에서 뭔가 소외된 느낌이에요. ㅎㅎ 이태원에 가면 저는 주로 만두를 사먹고 칭따오를 마시는데, 다른 사람들은 뭔가 더 재밌는 걸 하고 신나게 노나보네요? ( ”) ㅎㅎ

    종혁님 말에 공감에 가는 측면이 있지만 2번에서 ‘욕구를 해소하기에 위한 좋은 조건’이라는 건, 또 일정 수준 이상의 삶, 이라는 개인의 조건이 먼저 선행되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 좋지 않다,는 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거의 모든 사람에게 고루 적용이 되는 말인 듯. 여하튼 웰컴 투 서울이에요 :)

    • ㅎ저도 제가 사는 곳 주변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리고 이태원은 저같은 고리타분한 사람에게는 뭔가 맞지 않는, 너무 핫하고 잇한 곳이더라구요. 서울의 놀이 문화가 너무 한 극단으로만 치우쳐 발달하는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3. 다이나믹한 서울이지만,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은근한 공간도 잘 찾아보면 있어요. ㅎㅎ
    국립중앙박물관만 해도 하루 안에 다 보기에 벅찬 아름다운 유물로 가득한 걸요. 이태원 근처에 있는 리움 미술관도 괜찮고. 개인적으로 4대문 고궁 중 가장 아름답다 여기는 창경궁 비원도, 벤치에 눈 감고 앉아서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 소금기 가신 파도 소리를 듣는 것 같아 매우 상쾌해요. 영화를 좋아한다면, 한국 시네마테크에서 하는 트뤼포 전작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하고요. 전 혼자도 굉장히 잘 놀아서 그런지 몰라도, 위에 언급한 곳들을 혼자가면 친구와 갈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재미가 있더라구요. 온전히 제 호흡과 방식대로 즐길 수 있으니까요.

    저도 예전엔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몰역사적이라 서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계속 살다보니 정이 들어 그런가 서울을 옹해해주고 싶네요. ^^;;

    • 네. 말씀하신 그런 곳들을 포함해 제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많이 품고 있는 곳이 서울이죠. 전 서울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만 보냈기 때문에 이 도시를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어요. 제 자신을 정의내릴때 항상 “서울 사람” 이라는 표현을 쓰고요. 구석 구석 제 기억들을 간직한 곳들도 많구요. 일종의 투정쯤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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