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할 때의 어려움

지근 거리에서 몇년동안 지켜 봐온 사람과 대화하는 일은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잘 모르는 상대방을 오로지 단기간동안의 대화만으로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그 대화 상대가 만약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쿨해 보이는 취향과 멋있어 보이는 겉모습만을 강조하는 대화 방식을 택할 때 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몇배로 힘들어 진다. 정작 정말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회피하면서 현재 자신의 모습과 상황에 대한 변명만을 늘어 놓는다면 그 사람에 대한 의심은 커져만 간다. 나는 사람을 파악하기 위해 대화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파악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최대한 빨리, 신속하게 그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그 이후의 대화에서 한결 수월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세상의 거의 모든 대화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건조하고 차가운 대화가 될지 따뜻하고 정겨운 대화가 될지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와 직결되는 문제다. 반대로 내와 대화하는 상대방이 이것과 똑같은 문제를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최대한 (설사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다 해도) 나의 진짜, 가장 중요한 모습을 가장 강조해서 최대한 신속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그 사람도 마음이 편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화 방식을 고수한 채 몇년을 살다 보니 자신을 기만하거나 속이거나 과장되게 꾸미는 방식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더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약간 피곤하고 때로는 실망감을, 때로는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것보다 더 나쁜 방향으로의 대화는 상대방에게 끼어들 틈을 허용하지 않는 완고함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다. 거짓으로 포장한 사람과의 대화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뿐더러 때로는 지속 가능하기까지 하다. 나는 관대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편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타인의 다름에 대한 관용을 전혀 배풀지 않는 사람과는 일분 일초도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좁고 얕은 배경에서 나오는 편견이 일종의 독특한 취향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타인(즉 자신)의 취향에 대한 관대함을 강요한다. 그러한 방식의 대화에서 느끼는 피로감은 멍청한 사람, 혹은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얻는 피로감의 몇배에 해당하는 괴로움을 동반한다. 보통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특수한 재능이나 매력을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재능 혹은 매력을 더이상 발전시키려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며 스스로에게 가끔씩 찾아오는 행운과 같은 구애에 마냥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곧 한국에 가서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이용해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의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올 여름에는 내가 잘 모르던 사람, 그동안 만나오지 않았던 사람, 혹은 전혀 다른 루트의 삶을 살고 있던 사람을 만날 계획이다. 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 혹은 흥미로운 자극을 받게 될지 궁금하다.

9 thoughts on “대화할 때의 어려움

  1. 저도 누군가의 말이나 글(의 표면적인 뜻)보다는 몸에 밴 습관과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대화할 때도 언어와 어긋나는 비언어적인 표현이 상대의 진의라 받아들이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진짜’ 모습이란 것 자체가 허상 같아요. ‘나’라는, 고정적이고 항구적인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내 ‘진짜’ 모습이라는 건, 그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이자 ‘나라고 고집’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앞서 작성하신 익명성에 대한 글을 볼 때도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무언가를 글로 쓰는 순간, 말로 뱉어내는 순간, 실체와 균열이 생겨 일종의 불완전한 소설이 돼버리잖아요. 그 속에 생성되는 아이덴티티는 필연적으로 분열적이고. 그렇다면 그런 괴리를, 그 불완전함을 좀 더 정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익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 그쵸.. ㅋ 인식론과 실존주의, 혹은 구조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으신 것 같아요. 저는 픽션보다는 논픽션, 수필보다는 보도 기사에 더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을 ‘재구성’ 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 요소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 처음 댓글을 읽었을 때는 어떤 의미인지 파악했다고 여겼는데, 되짚어 볼 수록 확신이 생기지 않네요.

      “사실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 요소”가 전제된 행동이 (본문에서 의도한) “진짜, 가장 중요한 모습”을 의미하나요?

    • 대화는 보도 기사가 아니니까 본질적으로 좀 다르지 않을까요? ㅋ

    • 대화와 보도 기사(글쓰기)의 다른 ‘본질’이, 존재 혹은 사실에 접근하는 윤리적 태도 또한 다르게 만들까요? ㅋ

  2. 한국 오시는군요
    미국에서 없어졌던 두통이
    한국에 돌아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맑은 콜로라도의 공기 많이 많이 충전하고 돌아오세요
    공기와 시야가 많이 탁합니다

    • 네. 한국 많이 탁하죠. 어지럽고 정신없고요. 제가 나고 자란 곳인데도 여전히 어색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가족들이 있는 그곳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네요.

  3. 자신을 기만하거나 꾸미는 대화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어느순간부터 대화를 머리로 한다는 것을 느끼고 이를 고쳐보려하는데
    오히려 고치는게 몸에 안 맞는거 같아 혼란스러워 댓글을 달아봅니다.

    • 남들은 다 몰라도 자기 자신은 알고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요. 그마저도 속여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눈과 귀를 닫아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한 유혹에 하루에도 몇번씩 노출되는 것이 저를 포함한 사람들의 삶인 것 같구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화는 자신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그 대화를 이끌어 내는 대화 상대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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