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1주년

정확하게 언제부터 채식을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이 작년 6월이었던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제 대충 1년이 된 셈이다. 그동안 고기를 아예 하나도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적도 있었고, 나 스스로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먹은 적도 있다. 지금도 우유는 정기적으로 먹고 있고, 생선도 먹는다. 달걀과 치즈 자체는 먹지 않지만, 빵을 가끔 사 먹으니 빵 속에 들어 있는 유제품을 섭취하는 셈이다. 채식의 단계를 지금 당장 높일 생각은 없다. 표면적으로는 이제 한달 정도 후에 한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한국에서 내가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머니의 압박부터 지인들을 밖에서 만났을 때 마주쳐야 하는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한국에서 먹고 싶은 고기로 만든 음식들이 많지만 회 한접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여기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 두가지, 스팸으로 만든 볶음밥과 오겹살을 넣은 김치찌개를 전혀 먹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의 절제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 다녀 오면 우유를 제외한 모든 유제품을 먹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너무 피곤하게 살면서 채식을 지키고 싶지는 않다. 주변의 지인들을 신경쓰게 만들면서까지 채식을 할 정도로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구제역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동물들을 집단 살상하는 인간들의 행태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면 동물들이 생산하는 2차 생산물, 즉 우유나 치즈같은 유제품들은 괜찮지 않을까 (공생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섭취 가능한 것들이니까) 하는 생각에서 그정도 레벨로 시작한 채식이었다. 그런데 채식을 하다보니 몸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대하지 않은 발견이었다. 채식을 하던 도중 가끔 고기를 먹을 일이 있었는데, 고기를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짐을 느끼거나 몸에 필요치 않은 무언가가 쌓이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이 단지 기분탓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생물학적인 효과가 있는 어떤 현상인지는 내가 무지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하지만 채식을 시작한 이후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고,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지 않는 식습관을 들이면서 체중도 많이 감량할 수 있었다. 영양분을 따져가며 음식을 챙겨 먹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풀만을 먹여 키운 질좋은 고기들이 가득한 홀푸드 정육점 코너 근처에 가기만 해도 역한 기운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은근히 뿌듯하기까지 했다.

고기를 먹는 것이 죄악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이자 자유의지의 문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채식이 가지는 미덕을 발견한 나 자신이 썩 자랑스러운 것은 있다. 채식은 나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혹은 사람 이상의 주변 환경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순선환구조를 만들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채식이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채식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은 가지게 된다. 고기를 먹을 당시 샐러드를 전혀 가까이 하지 않았던 내가 사실은 채소류와 내 몸이 상당히 궁합이 좋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소고기를 넣지 않고도 충분히 맛있는 카레를 끓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김치찌개는 고기가 아닌 김치의 맛으로 특유의 깊은 맛을 우려 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1년간의 채식 생활을 통해 음식과 요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제 채식 요리만으로 일주일치 식단을 짤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레시피 목록도 갖추게 되었다. 아직 남들 앞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영양 상태를 유지해 가며 충분히 다양한 맛의 요리를 즐길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라면같은 인스턴트 제품에 의지하지 않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 곡류만으로 배불리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29년 가까이 고기를 섭취해온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간이 그동안 너무 사치스럽게 생활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교훈중 하나이다. 우리는 사실 그동안 너무 많이 먹고 있었다. 그것보다 훨씬 조금만 먹어도 충분히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지금처럼 자연을 그렇게 많이 괴롭히지 않아도 다함께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나는 환경론자가 아니며, 사실 환경에도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이것은 특정 시각을 가진 사람만의 주장이 아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하게 남을 괴롭히며 살지 말자는 얘기다.

2 thoughts on “채식 1주년

  1. 아. 저는 고기 없이도 너무 배불리 먹어서 문제에요. 요즘은 금고기 금술 금빵 금과자 기간… (예외는 만두… ㅠㅠ 너무 좋아해서 ㅠㅠ) 중간에 채식 살짝 끊고 한달정도 고기를 먹었는데, 이게 또 먹기 시작하니 계속 식성이 정크정크해지더라고요 ㅠㅠ 요즘엔 채식 정도까지는 아니고, 걍 육식 지양 정도로만 하고 있어요 ㅎㅎ

    암튼 채식 1년 축하드려요. 채식요리만으로 일주일 식단이라니. 존경스럽습니다 (__)

    • 저는 뭐랄까요, 몸이 건강해 지는 느낌을 발견하는 과정이 너무 좋더라구요. 그동안 고기를 먹으면서 얼마나 몸을 혹사시켜 왔는지를 뼈저리게 반성하게 되었구요. 사실 이 부분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인데 얻어 걸린 것 같아요. 건강이나 환경을 생각해서 채식을 시작한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저도 가끔 미치도록 고기가 먹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그냥 참지 말고 먹어줘야 하는 것 같아요. 병이 될 수도 있잖아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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