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만추


뒤늦게서야 <만추> 를 봤다.

오늘 날씨는 아침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우는 아니었고,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추적추적하고 얇은 빗줄기를 동반한 흐린 날씨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맞겠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비가 오늘 날에는 반성적으로 허리가 아프고, 몸은 물에 푹 젖은 스폰지마냥 무겁고 굼뜨다. 뜬금없이 저녁 여섯시쯤 커피를 한잔 내렸고, 초코파이를 먹으면서 이 영화를 봤다. 주연 배우와 감독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마침 영화의 배경은 시애틀이었다.

시애틀은 비가 자주 내리는 도시다. 나는 여행삼아 몇년전 겨울 크리스마스 무렵에 잠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내가 받은 인상은 흐린 날씨로 인해 우울하다기 보다는 주위의 소리들이 더 잘들린다는 것이었다. 흐린 날씨에는 보통 창문을 닫아 놓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주변의 소리들이 더 가깝게 들리게 된다. 시애틀의 이미지는 그런 가까움과 차분함이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탕웨이가 연기하는 애나다.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한 뒤 교도소에서 7년을 살다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72시간의 휴가를 얻은 그녀는 시애틀로 가는 버스에서 여자들에게 웃음과 몸과 시간을 팔며 연명하는 훈이라는 한국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만 하루의 시간을 함께 보낸 뒤 헤어진다. 영화는 친절하지 않고, 그렇다고 극적이지도 않다.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도 많고 유치한 부분도 많으며 비현실적인 부분도 많다.

하지만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영화속 애나의 얼굴과 시간,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에 있다. 철저히 인식론적인 시각에 기대어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굳이 논리적이거나 객관적일 이유가 없다. 단지 애나가 어디를, 혹은 누구를 보고 있으며 애나가 웃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확인하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애나는 훈이라는 남자를 만나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치유받는다. 먹먹하고 뿌연 시애틀 주변을 거닐며 그녀의 마음 또한 답답한 현실에서 굳이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해결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며, 그렇다고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갈망하지도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현빈이 연기하는 훈이라는 존재가 사실 영화속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애나는 결국 혼잣말로 (아마도 훈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는데, 사실 훈이 결국 애나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그리고 애나를 제외한 관객 모두는 훈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그 장면을 보게 된다) 그 장면 자체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에 비추어 볼때 하나의 통일된 흐름 위에 있다고 생각되어질 수 있다.

중국인 애나와 한국인 훈이 미국의 한 도시에서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낸다는 줄거리는 언어의 장벽으로 대표되는 소통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이 영화는 소통의 가능성을 전혀 타진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도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고, 사랑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결국 감독이 이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더 넓고 높은 차원에서의 관계는 언어나 배경, 역사 따위로 제한될 수 없다는 것 아니었을까. 관련 기사를 더 찾아 읽어 봐야 하겠지만.

영화 자체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았다. 아쉬운 점은 있다. 미국에서 “2년 살았다”  는 현빈이 연기하는 훈은 애나를 만나기 전 이미 수첩에 몇번은 적어서 연습했을 법한 수준의 어려운 단어들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발음은 딱 2년 산 사람의 수준인데, 문법은 정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의 그것이다. 조금 더 서툰 영어를 말하게 했어도 더 좋지 않았을까. 이 작은 흠집을 굳이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영화의 주제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긴밀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훈은 한국인 여성만을 상대로 일을 해 왔고 그에게 애나는 일종의 새로운 세계와도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빈은 대사를 너무 잘 읽어 내려간다. 발음도 아예 좋던가, 아니면 문법이 아예 구리던가. 둘중의 하나는 맞췄어야 했다. 불완전한 관계에서 시작해 완전한 감정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면, 그들이 사용하는 손짓 발짓과 언어 역시 불완전해야 했다.

5 thoughts on “김태용: 만추

  1. 이 글 읽고 있으니 저도 커피가 한 잔 마시고 싶네요. (그래서 지금 마시고 있어요ㅋㅋ) 훈의 영어에 그런 불균형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만약 말씀대로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가는 게 의도였다면 오히려 반대로 문법이 구리고(?) 발음이 좋은 게 나았겠지만…. 영화는 그럴 가능성만 보여줄 뿐 완성할 의지는 없어보이지 않나요-? 또…. 둘 다 손에 피를 묻히지만 훈만큼 애나도 환상 속의 인물 같이 느껴지더라구요. (아 한번 더 보고 싶다!)

    • 전 마지막에 탕웨이가 웃으면서 인사하는 장면에서 완전한 관계의 결합은 심지어 존재의 확신 없이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생각했거든요. 탕웨이나 현빈이나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발음을 한 것 같고, 영어 대사는 가장 완벽하고 유려하게 번역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안에서 저는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고.

      저 커피 마신 뒤 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ㅋ

    • 아 그리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보니까 애나 역시 환상속 인물이라고 생각할 법한 구석들이 꽤 있네요. 훈 입장에서 애나를 완전히 판타지로 놓는 것도 어쩌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 종혁씨는 영화를 참 ‘잘’ 본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대로’ 본다고요. 물론 저는 감독이 아니니 무엇이 제대로인지 판단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이 리뷰를 읽는 동안에 이 사람은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제대로 봐줬다, 는 느낌이 제게는 들었어요.

    버스를 타고 가려는 탕웨이를 밖에서 손 흔들어주고 웃어주는 현빈이 아주 고운 영화였어요. 다시 돌아보는 탕웨이가 고운 영화였죠. 문이 열릴때마다 현빈일까 돌아보는 탕웨이는 뭐, 누가 봐도 이 영화의 압권이구요.

    •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저도 그냥 보고 싶은 대로 볼 뿐인데요 뭐. 지금까지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이용해서 영화를 읽으려고 노력할 뿐이죠. 맞아요. 마지막 탕웨이의 모습이 참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어요. 현빈도 너무 멋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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