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1.
3월 말 봄방학때 시카고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지난 월요일까지 정말 대단한 두달여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다음 학기부터 펀딩 프로세스가 약간 달라진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학과에서 지금까지 오로지 학점과 학생 평가만으로 결정하던 펀딩 기준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는지, 매 학년마다 각기 다른 평가 기준을 만들어 이를 보완하기로 했다. 즉 1년차는 평점 3.5 이상, 2년차는 퀄 시험 세과목 전부 통과, 3년차는 컴프리헨시브 오럴 시험 통과, 4년차는 프로포절 디펜스 통과, 뭐 이런 식으로. 이 과정들을 모두 순조롭게 마쳐야 tier 1 에 들어가서 정상적으로 펀딩 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나 뭐래나. 문제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4년차들이 프로포절 디펜스를 4년차 말에 보지 않고 여름 방학을 논문 쓰는데에 할애한 뒤 그 다음 가을에 본다는 관례가 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년 봄에 프로포절 디펜스를 보는 것이 “ideal” 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4년차 말까지 preliminary results 가 나온 논문 두개와 프로포절 수준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세번째 페이퍼까지 준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름 3개월을 마저 소진한 뒤 5년차로 올라가자 마자 프로포절 디펜스를 치루는 것이 일반적인 스텝이었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곳도 없고, 그냥 일정에 맞춰 프로포절 디펜스를 앞당겨서 치루는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난 가난한 학생이기 때문에 한푼이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정줄 놓고 있었던 2월과 3월의 대부분을 후회할 틈도 없이 서둘러 교수님들과 만나 일정을 상의하고 행정적인 부분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논문도 진행시켜야 했다. 두달만에 논문 두개를 마무리지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자신만의 틀이 만들어져 있는 대가들이나 하는 것을 초짜인 내가 따라할 수도 없었다. 불가능한 목표라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만큼 desperate 한 느낌을 주는 일도 드물 것이다. 그동안 뜸했던 지도 교수님을 다시 일주일마다 찾아 가기 시작했다. 지도 교수를 만난다는 것은, 마치 시험을 일주일에 한번씩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정작 교수님은 별 생각이 없으시겠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과정은 버겁고 힘들기 그지없다.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방향, 그리고 처리하는 요령이 명확하게 주어져 있는 일은 아무리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되어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앞이 캄캄한 상태에서 모든 단계를 try and error 로 찾아 내야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일 뿐더러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두려움이 함께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압박도 크게 받게 된다. 논문 주제를 잡고, 눈이 빨개질 때까지 관련 논문을 찾아 읽고, 모델을 만들었다 고치기를 수십번 반복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에 넣어 돌려서 에러를 찾아내어 수정하고, 결과가 나오면 해석하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모델을 수정하고, 수정한 모델을 다시 컴퓨터에 넣어서 시뮬레이션하고..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하나의 논문이 나온다.

그렇게 두달을 보냈다. 프로포절 디펜스는 잡마켓에 나가기 전의 대학원생이 논문 심사 위원회 교수님들을 모셔 놓고 논문의 챕터 구성부터 기본적인 아이디어, contribution, 방법론, 예비적인 결과와 앞으로의 수정 방향까지 함께 토의하는 자리다. 토의라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지적당하고 숙제를 잔뜩 받아가는 자리인데, 이 과정에서 준비가 미흡하다고 교수님들이 판단하면 탈락하기도 한다. 탈락은 “넌 잡 마켓에 나갈 자격이 없어. 조금 더 해.” 라는 뜻부터 “넌 박사 논문을 쓰기에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라는 뜻까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생을 패닉으로 몰고 가서 자살 증후군을 부추긴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논문을 쓰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과연 내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관련 분야에 공헌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거기에 대한 판단은 나의 영역을 넘어선다고 생각했다. 훨씬 더 큰 판을 보고 있는 교수님들이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인데, 문제는 이 부분에 대한 확신없이 그 다음 단계를 진행시켜 나가야 한다는 딜레마의 존재였다. 모델을 만들고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은 다분히 기술적인 것들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잡고 이를 명확히 하는 과정은 학문을 하는 기본적인 능력에 달린 문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학자로서의 자질이 가장 중요하게 관여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프로포절 디펜스는 한시간 반 가량 진행됐다. 시험의 앞뒤로 나를 제외한 교수님들간의 간단한 미팅이 있었고, 그 사이에 내가 한시간 가량 발표를 하며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과정이 있었다. 집과 학교에서 몇번이나 혼자 연습해 봤지만 말이 꼬이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발음도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부분에 대한 걱정도 물론 컸지만 역시 가장 큰 걱정은 교수님들의 질문을 한번에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해가 될 때까지 몇번이나 다시 물어볼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파돈 미는 너무 식상하고 세이 어게인 은 너무 버릇없으니까 좀 길고 복잡하게 다시 물어보자 등등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내 메인 지도 교수님인 터키 출신 꽃미남 교수님도 긴장을 하셨는지 (내가 첫 제자다) 역시 꽤 오래 전에 시험장에 나타나서 이것저것 체크해 주셨다.  다행히 말도 잘 터졌고, 교수님의 지적들도 잘 알아 들었다. 네 분 모두 너무 친절하고 자상하게 말씀해 주셨다. 앞에 놓인 메모지에 받아 적긴 했는데 너무 휘갈겨 써서 나중에 끝나고 보니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내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것은 너무 끔찍할 것 같아서 녹음도 하지 않았다. 다음 주에 지도 교수님을 찾아가서 다시 한번 전반적인 점검을 받을 예정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공중에 2cm 정도 뜬 기분으로 프로포절 디펜스를 마쳤다. 발표를 마치고 밖에서 교수님들의 심사를 기다리는 과정은 정말 최고의 스릴을 맛보게 해주었다. 대학원 행정을 책임지는 P 아주머니가 자기 오피스로 불러 앉혀서 농담도 건네주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시켜 주려고 노력하셨다. 그리고 컨퍼런스룸 문이 열리고 한분씩 나오시는 교수님들이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하실 때의 짜릿한 쾌감! 그렇게 디펜스를 통과했고, 지도 교수님은 다리가 풀린채 허허거리며 웃고 있는 내 어깨를 두드려 주시며 수고했다고 그 사람좋은 미소를 보여 주셨다.

2.

시험이 끝나고 곧바로 이어서 4년만에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J 형님의 환송회가 있었다. J 형님은 L 경제연구소에서 7년간 근무하신 베테랑 이코노미스트로 이미 여기에 올 때부터 확실한 리서치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과정을 1년 먼저 끝낼 수 있었다. 다시 연구소로 복귀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잡마켓에 대한 부담도 없었고. 이 형님은 가족을 다른 곳에 두고 혼자 오셨을 때 집을 구하기 전까지 잠시 내가 사는 곳에서 나와 함께 살았던 기억도 있어서 더욱 각별했다. 항상 침착하고 꼼꼼하게 돌다리도 세번씩 두들겨 보는 성격이 퍽 마음에 들기도 했고. 마침 내가 큰 시험을 끝내고 열려서 마음도 가볍게 나갔다. 한국 유학생들을 만나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J 형님을 위한 자리이니 피곤하다고 해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유학생 사회에 대한 불만은 이야기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제 여기서의 생활도 4년을 꽉 채워 가기에 대부분의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왠만큼 적응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어 그날도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내가 식사 내내 삼겹살과 갈비를 구워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모습이나, 프로포절 디펜스를 방금 치루고 나왔다는 것을 다 아는데도 다들 술을 마시고 싶다는 이유로 나에게 운전을 하라고 시키는 것이나.. 뭐 이런 것들. 이제는 그냥 다 웃으면서 받아 들인다. 다 내가 막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놈의 나이 문화. 한국에 돌아가면 질리도록 경험하게 되겠지. 대학원 유학을 상대적으로 너무 빨리 오니까 3년차가 끝날 때까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살게 된다. 대학원생들만으로 구성된 그룹을 보면 답답한 면을 많이 보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 다들 나름의 뜻이 있어 비싼 돈 들여서 미국으로 온 사람들이다. 다들 각자의 개똥철학이 있다. 문제는 그 철학을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만 하고 싶어하지 남의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는 하지 않는다. J 형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나마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화를 진행하는 데에 익숙한 분이기 때문이다. 다른 답답한 면은 오히려 더 이성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아니 꽤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 ‘오기’ 만 남아 더이상 가망 없는 유학생활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 자체에서 오는 비효율성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자아 자체가 뒤틀려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회사에 취직하며 살았다면 결코 만나보지 못했을 별의별 캐릭터들이 다 있다. 일종의 사회적으로 도태된 이들이 부모의 손을 빌려 좀비처럼 살아 남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들이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멘붕’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은 결코 아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며 이 힘든 박사과정을 버텨 내려고 하는 것일까. 미국 문화에 어울리고 싶어 하지도 않고 수업이 끝나면 집에 틀어 박혀 영어를 하루에 한마디도 쓰지 않으며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가 개강 직전에야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가 뭘까. 다 “미국 박사 학위” 라는 간판이 주는 어떤 이익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학벌 컴플렉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든 미국 박사 학위를 과대평가하는 한국의 특수한 병신같은 문화때문이든 무언가 물질적으로 얻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이 지난한 과정을 소화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난 절대 그런 식으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을 속이는 행동이니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 공부를 해야 한다.

3.

시험이 끝나고 이번주 주말까지는 논문은 들여다 보지도 않기로 했다. 특히 주말다운 주말을 보내본 적이 그동안 한번도 없기 때문에 절대 이번 주말 전까지 공부와 관련된 그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다짐하고 보니 할 것이 마땅치 않았다. 몇달동안 활자만 죽어라 본 (그것도 영어만..) 사람이 다시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은 뭐랄까, 독서가 참 좋은 거라는 거 잘 알고 있는데 물려서 도저히 손이 가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몇주전 신청한 파이낸셜 타임즈는 아직도 첫번째 배달이 오지 않고 있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일주일동안 읽기에는 분량이 너무 적다.

그래서 게임을 시작했다. 디아블로3. 재밌었다. 원래 게임에 한번 빠지면 밤을 새워서라도 목표를 달성해야 직성이 풀린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렇게 이삼일 하다 보면 금방 질려서 더이상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스타 크래프트만 예외적인 경우였고 워크래프트부터 커맨드앤 컨쿼, 삼국지, 문명까지 다 그런 식이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해온 유일한 게임인 NBA Live 시리즈는 하루에 한게임, 딱 한시간 이상은 하지 않았고. 그마저도 그래픽카드가 후져서 최근 시리즈는 맛도 못보고 있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monk 라는 직업을 선택해 대악마 디아블로를 잡기 위해 지옥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편이라 대화도 꼼꼼하게 다 읽고 다 들으며 맵의 모든 곳을 밝혀가며 플레이했더니 사흘만에 노멀 레벨의 끝판을 깰 수 있었다. 깨면서 나는 딱 여기까지구나, 싶었다. 더 높은 레벨은 더 심한 노가다와 더 심한 아이템질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는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제 딱 게임에서 빠져 나와서 다시 현실 세계에 로그인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책을 읽을 생각이다. 방학이니까, 그나마 방학이니까, 아침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만 공부하고 저녁 시간에는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 프로포절 디펜스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들이 많다. 우선 논문은 시험 준비와는 다르게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나처럼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내가 뭘 썼는지 까먹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하루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발전을 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논문을 쓰는 가장 좋은 요령같다. 그리고 내가 만약 무사히 졸업을 하고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면, 그리고 학교에 계속 남아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다면, 아마 비슷한 패턴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구체화시키고, 관련 논문 읽고, 모델 만들고, 모델 풀고, 컴퓨터로 돌려 보고, 결과 나오면 해석하고, 동료 교수들이랑 의논하고, 컨퍼런스 가져가서 발표하고 코멘트받고, 수정하고, 저널에 내고, 운 좋으면 책도 쓰고. 그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늙어서 죽게 되지 않을까 싶다.

4.

컨퍼런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운좋게 올해 세개의 컨퍼런스 스케줄이 잡혔다. 물론 그중 하나는 포기했다. 이태리 밀라노에서 일주일간 열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과 함께 하는 서머 스쿨인데 돈도 많이 들고 다른 이유도 있어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거기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급 포기. 나를 스토킹했던 여자가 하나 있는데 하필 그놈). 다른 하나는 서울에서 열리는 컨퍼런스다. 오늘 정식으로 acceptance letter 를 받았다. 6월 15일까지 논문 최종 버전을 보내야 한다. 부랴부랴 수정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우리 학교에서 올 11월에 주최하는 Midwest Macro 컨퍼런스다. 지도 교수님이 넣어 주겠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날라갈 필요 없이 볼더에서 편하게 발표할 수 있게 됐다. 너무 많은 컨퍼런스 스케줄도 좋지 않다고 한다. 적당한 컨퍼런스 일정은 논문 집필의 생산성을 극대화시켜주지만 지나치게 많은 컨퍼런스 일정은 컨디션도 망가뜨리고 불필요한 코멘트를 너무 많이 받게 되어서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맞는 말 같다. 올 가을 잡마켓에 나가기 전 연습삼아 한번 해본다는 느낌으로다가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서울에서 하는 컨퍼런스 덕에 한국에도 가게 됐다. 7월 6일 새벽 네시에 인천에 떨어져서 26일 저녁 비행기로 돌아온다. 달랑 20일짜리 여행이지만 지금부터 너무 설레인다. 먹고 싶은 음식들,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한국에는 아직 가득하다.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서울과 한국은 내 고향이고 내 인생의 주춧돌이다. 결코 단절될 수 없는 관계가 이 나라와 나 사이에 있다.

5.

그래서 딱 1년 남았다. 졸업까지. 이 블로그는 유학을 준비하며 만들었다. 아마 2007년이나 2008년 여름쯤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내가 이제 졸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을 때가 2005년이었고, 그 이후 티스토리로 한번 옮겼다가 여기로 왔다.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읽으며 그분들의 실제 삶이 큰 폭으로 변화할 때마다 내 기분까지 싱숭생숭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그 차례가 올 것 같다. 1년 뒤, 나는 이 볼더에 더이상 없을 것 같다. 물론 일이 잘 풀리면. 그리고 하나 더 큰 목표가 있다면, 1,2년 내에 이성 관계에 있어서도 뭔가 진척을 좀 보이는 것. 이건 졸업과는 다르게 별다른 대책은 없는데 ㅋ 그래도 이제 마음을 오픈하고 있기로 했다. 며칠전 전화에서 어머니께서 “선 준비할까?” 하시길래 식겁했다. 선은 좀 그렇고 소개팅이나 몇번 해볼게요, 하고 대답해 드렸는데 그 형태가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이번 여름에는 한국에서 반드시 여자를 만날 생각이다.

참, 디펜스 준비로 바쁜 와중에 멀리 뉴욕에서 방문하신 S 누님도 뵈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뵈었는데 역시 수다의 여왕다운 자태를 뽐내주셔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홀딱 빠져들었다가 나왔다. 결혼 후 삶이 너무 행복하신 것 같아 나도 마음이 참 기뻤고, 내가 너무 경황이 없는 와중에 만나서 잘 해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도 컸다.

6.

그리하여, 난 내일도 늦잠잘거다.

2 thoughts on “밀린 일기.

  1. ㅎㅎ 아주 단단히 결심했네요. ‘이번 여름에는 한국에서 반드시 여자를 만날 생각이다.’ 그래요, 해봐요. 불끈!!
    저도 이번 여름에는 한국에서 반드시 남자를 만나야겠다고 따라서 결심해봅니다. ( ”)

    •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제가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그냥 친구들이 해주는 소개팅 몇번 하겠죠. 다락방님에게 여름은 약속의 계절 아니건가요? ㅋ 분명히 좋은 남자 만나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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