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총각 남자 유학생이 어린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낼 일은 사실 거의 없다. 가정을 가진 유학생들의 집에 초대를 받을 경우 몇시간 정도 같이 노는 것이 고작이다. 한번도 아기 기저귀를 갈아본 적도 없고, 잘못을 저지르고 우는 아이를 혼내거나 달랜 적도 없다. 아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 뜻 밖의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요즘은 매주 화요일마다 일곱살짜리 남자 아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박사 과정 신입생중 싱글맘이 하나 있는데, 언제부턴가 그 친구가 수업을 들어가거나 티칭을 해야 할 경우 내가 있는 오피스에 잠시 아이를 맡겨 놓고 가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일주일중 그녀가 가장 바쁜 날 그녀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오전 수업만 하고 끝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그녀의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 오피스에 가장 먼저 찾아온 이유는 아마 그녀가 입학후 나와 가까워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시간에 아이를 맡길 만한 사람이 나와 오피스에 있는 나의 친구들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영어를 나보다 훨씬 잘하는 일곱살짜리 사내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지낸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다행히 우리 오피스에는 그 친구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몇가지 있었다. 미니 농구 골대가 벽에 걸려 있었고, 우리가 각자 사용하는 컴퓨터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을 아버지와 비슷한 또래의 성인 남자라는 존재가 셋씩이나 있었다. 그 싱글맘 대학원생이 우리 오피스에 자신의 아이를 맡기는 것을 선호했던 것도 결국 그 어린 친구의 삶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꽤나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들이 우리와 많은 대화를 하기를 바랬다. 우리는 그 아이에게 농구공을 던지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의 숙제를 도와 주었으며, 가끔 그의 어머니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나의 아이폰을 빌려 주거나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C 와 S 는 아이를 다루는 데에 무척 능숙했다. C 는 특히 얼마전까지 두살배기 딸을 둔 싱글맘과 데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이가 원하는 것과 해야 할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했다. 대화도 능숙했고, 아이에게 동기 부여를 하는 요령도 탁월했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걱정은 외국인과의 대화 경험이 거의 없었을 그 어린 친구가 나의 부정확한 발음을 잘 알아 듣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그 친구와 대화할 때에는 조금 더 또박 또박, 천천히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 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우리 둘 사이가 언어라는 장벽에 크게 가로막히지는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그 친구가 가장 원하는 아이폰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보물창고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장과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에게 배웠을, 평소 대화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정중한 말로 아이폰을 좀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 그의 모습에서 결국 더 나은 삶을 위한 인류의 발전은 끝이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아이폰보다는 농구공을 더 만지길 원했고 게임을 하기 보다는 책을 더 많이 읽기를 바랬지만, 내가 거기까지 관여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곱살짜리 친구와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배우는 것들이 참 많다. 예를 들어 나 자신을 그 친구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과보호를 받으며 자랐다. “해라” 와 “하지 마라” 라는 명령조의 말에 복종하며 자랐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왜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부모님의 그 명령이 결국은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유를 따로 묻거나 반항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최선의 교육 방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 아이는 미국에서 자란 미국인의 아들이다. 이 친구는 대화와 설득에 익숙해져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그 행동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마도 가이드라인을 따라 행동하겠지만) 최종 판단은 항상 그의 몫이다. 나는 내가 배운대로 그에게 “하지 마라” 라고 먼저 말하게 된다. 그는 나의 그러한 대화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나는 결론을 먼저 말하기 전에 충분히 그와 대화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가정 교육은 생각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내 안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나를 통제할 것이다.

결국 아이를 키우는 것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그 친구와 몇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 내 안에 어떤 방식으로 질서가 형성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30년 가까이 살면서 ‘나’ 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더이상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공고해져 있다면 이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이를 수정하는 것이 점점 더 버거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아이와의 대화, 혹은 아이와 함께 하는 행동에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아이를 키운다면 지금과는 다른 느낌일까, 아니면 지금 이 기분을 조금 더 깊게 느끼게 될까. 겪어보지 않았으니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를 반드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더 강해진다. 내가 나의 아이에게 좋은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 역시 나에게 좋은 스승 혹은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관계가 한쪽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흥미로운 관계의 형성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4 thoughts on “아이.

  1. 종혁씨의 글을 좋아했으니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가 된거겠지만, 새삼 또 느끼네요. 글이 참 좋다는 걸.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겠고, 글 안에 들어 있는 생각도 내가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하나도 없어요. 게다가 글 자체로도 너무 잘 쓰여져서, 저는 이 글을 읽고 정말 좋다, 좋다만 연발하게 되요. 문득 종혁씨가 미국에서 공부하며 겪었던 일들에 대해 에세이집을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그 책의 광팬이 될텐데.

    • 티스토리에는 그동안 올린 포스팅들을 묶어서 책으로 만들어 주는 서비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워드프레스엔 아마 그런 기능이 없겠죠? 있다고 해도 한글 서비스는 안될거예요 아마 ㅎ 다락방님 우리 둘이 읽을 수 있게 따로 책 한권 만들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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