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나온 그 친구.

꿈얘기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최근에 꾼 꿈 하나가 며칠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아서 혼자 신기해 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꿈이란 무의식속에서 드러난 욕망이라던가 기억같은 것들이 무질서하게 혼재되어 나타나는 환각같은 것이기에 언제부턴가 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지만, 이렇게 며칠이 지나도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잔상처럼 남아 무의식이 아닌 의식속에 존재하게 되어 버린 꿈은 현실에서의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얼굴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안면인식장애라고 하던가.. ‘장애’ 라고 부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닌데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그 얼굴과 나의 기억속에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칠 때가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학생들중 누가 찾아와도 ‘어디서 많이 본 애인데..’ 라는 생각만 떠올릴 뿐 그 친구가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한국에 있을 때 한번은 지하철역에서 아주 낯이 익은 사람 하나를 지나쳤는데 누구인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 사람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화들짝 놀란 적도 있다. 사람의 얼굴에서 특징을 잘 잡아내 그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조금 떨어지나 보다. 혹은, 다른 사람의 얼굴에 딱히 큰 관심이 없어서 유심히 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저런 이유로 타인의 얼굴이나 생김새에 대해 무심한 편이고, 그것이 내 인생에서 큰 가치를 지니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유독 그 친구의 얼굴만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내 기억속에 남아 있다. 며칠 전 꾼 그 꿈에서도 가장 강한 인상으로 또렷하게 남아 있는 이미지는 그 친구의 얼굴 표정이었다. 우리는 꿈속에서 어느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몇분뒤 그 친구가 생각을 바꿔 다시 나가자고 했다. 건물을 황급히 벗어나는 그 친구를 뒤따르며 내가 무어라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 그 친구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 봤다.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는데 바로 그 장면이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왜 하필 그 친구가 나온 꿈이었는지, 왜 하필 그 친구가 나를 쳐다볼 때의 그 표정만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친구는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중 하나이다. 그건 그 친구에게서 배울 점이 많았다거나 그 친구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내의 행동거지나 말투에서 그 친구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새초롬한 표정이라던가, 입술을 삐죽거리는 모습이라던가 힘을 빼고 터덜 터덜 걸어갈 때의 발걸음같은 것들에서 내가 관찰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무서울 정도로 내 몸속에 깊이 배어있음을 알게 된다. 딱히 그러한 버릇들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억지로 내 몸속에 깃든 그 친구의 흔적들을 지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래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의 한 부분에 깊게 관여한 그 친구를 억지로 삭제한다는 것도 우습다. 내 자신을 부정하게 되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니까.

아마도 그 친구를 내 인생에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친구를 찾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나 그 친구의 얼굴, 혹은 내 몸속에 깃든 그의 행동들도 조금씩 사라져 갈 것이다. 마흔이 되고 쉰살이 되었을 때 혹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까.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어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지난 29년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고, 그중에는 정말 중요했던 사람들, 사랑스러웠던 사람들, 고마웠던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그들의 기억속에 내가 어떻게 남아 있을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어떻게 잊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하고 있다. 기억은 조금씩 사그라드는 불꽃과도 같다. 발로 퍽퍽 눌러 꺼버릴지, 바람에 흩날리는 재가 될 때까지 가만히 지켜 보고 있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서교동이 갑자기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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