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문학동네, 2010.

한 여자가 있다. 남편과 딸아이를 두고 가정을 꾸리며 고고학자였던 그녀는 치명적인 사고 이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사랑임을 깨닫고 한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다른 모든 가치들은 의미를 상실한다. 남편과 딸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인생에서 사라졌고, 직장 생활은 무의미해졌으며, 그녀의 모든 시간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시간과 그 남자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정의된다. 그 남자는 아내가 있고, 그 아내를 포기하지 않는다. 여자는 그 남자과 그 남자의 아내에게 집착하고, 괴로워하며, 자신의 사랑 의외의 모든 가치들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떠난다. 여자는 오로지 남자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몇십년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낸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조차 잊어 버릴 정도로 세상을 등졌지만, 그 남자의 채취, 촉감, 말투, 두고 간 안경까지, 모든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뿐이었기 때문에 그 남자의 이름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여자는 미친 것일까. 그렇다. 그녀가 사고 이후 조금씩 미쳐가고 있다는 징후는 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친구들의 증언을 통해, 혹은 그녀의 희미한 (아마도 상당히 왜곡되어 있는 듯한) 기억들을 통해 그녀가 분명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다. 다만 그녀는 한 남자를 열렬히 사랑했을 뿐이다. 때문에 그녀는 미치지 않았기도 하다. 단지 사랑에 너무 많은 집착을 보였을 뿐이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와 <감시와 처벌> 을 잠시 빌려 오면 조금 더 편하게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미쳤다는 것은, 어떤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정의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광기라는 하나의 현상은 단지 한 사회가 역사적으로 축적해온 처벌의 기제중 하나일 뿐이다. 즉 그녀 자신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탱해 나갈 수만 있다면 그녀를 굳이 미쳤다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 조차 잊어 버렸고 글씨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망가졌지만, 스스로 은행 창구에 가서 돈을 인출할 수 있고 장을 스스로 보면서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떤 상상들이 펼쳐지건 간에, 그녀는 하나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존엄성을 상실하지 않은 상태이다. 때문에 미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짐승” 에 비유하지만, 그건 스스로를 인간 이하의 수준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스스로가 저지른 일들에 대한 당위성을 획득하기 위한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짐승들은 그녀처럼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짐승이라는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교묘하게 활용한 것일뿐. 그녀는 여전히 인간의 삶을 살고 있고, 때문에 인간 사회의 기준에 의해 스스로를 판단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다른 한편, 광기가 “왜” 사회에 의해 규제되어지고 판단되어졌는지를 생각하면 그녀는 미쳤을 수도 있다. 다시 한번 푸코에게 의지해 보면, 정신병원과 감옥은 평균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평균에서 가까운 사람로부터 격리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왜냐하면 평균에서 가까운 사람들은  자신들이 “미친”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개개인의 생각이 모여 하나의 사회적 기제를 만들면 그것이 권력으로 작용하고, 그 권력은 다시 하나의 개인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세상과 등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그녀가 사랑한 남자가 더이상 그녀의 집을 찾지 않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리고 그 남자가 떠나간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가 남자의 아내에게 그녀의 존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부터 그녀와 남자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진다. 그녀는 그 이후 모든 것을 기억과 상상에 의지한다. 철저히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감추는 것이다. 일종의 처벌이다.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지적하는 모든 과정이 이 소설에 드러난다. 여자는 타인의 삶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부터 “미친”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스스로에 의해서건, 타인에 의해서건.

이 소설은 세다. 무척 강하다. 또한 단단하다. 개인의 집착적인 사랑을 독일의 현대사와 연결시키며 사회적인 부분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주인공의 사랑에 집중해서 읽어도 좋고, 그녀가 묘사하는 기억들을 짜맞추는 재미로 읽어도 좋고, 그녀에게 투영되는 독일의 역사를 생각하며 읽어도 좋다. 하나의 소설이 다양한 층위로 읽힌다는 것은 축복이다.

14 thoughts on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 영역판으로 읽으셨는가해서요. ㅋ 이 포스팅을 보고 흥미가 동해 읽고 있는 중인데 번역이 좋지 않아서 자꾸 눈에 걸리더라구요.

    • 제 블로그 포스팅중 영어로 제목이 달린건 영어로 표현된 것들에 대한 감상문이라는 뜻이예요 ㅋ 앵글로 색슨쪽 나라들은 번역 문화가 많이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한국도 번역 문화가 그닥 훌륭하진 않지만요.

    • 오, 의외네요. 전 막연하게 영어를 매개로 구축된 출판 시장이 크니 번역의 수준도 자연히 높을거라 생각했거든요. 어느 교수님이 (학술에 참고할만한) 거의 모든 책은 영어/일어로 번역되어 있으니 꼭 이 둘 언어 중 하나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 더 그렇게 생각했나봐요.

      그런데 이 소설 문장이 훌륭한 것 같아요. 잘 짜여진 옷감처럼, 단어들이 섬세하게, 그러나 느슨하지 않게 짜여진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띄네요. 그래서 번역이 조금만 이상해도 금방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 그쵸. 전 이 작품처럼 단지 문학으로서의정체성만을 확고히 가지고 있는 소설들이 좋더라구요. 영화로 각색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은 소설들이 너무 많은 요즘같은 때에는 더더욱 그래요.

    • 아!! 다락방님에 대해 언급한다고 계속 마음속에 두고 있었는데 막상 글을 쓸 때는 까먹었네요. 죄송해요. 좋은 책 추천해 주셔서 감사해요.

      한가지 투정을 부리고 싶다면, 전 독일 문학의 깔끔하고 정갈한 이미지를 상상하고 추천을 부탁드렸던 건데 이런 책을 추천해 주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ㅋㅋ 같은 작품들을 기대했거든요 +_+

  1. 소설을 다 읽고 이 포스팅을 다시 읽으니 새롭네요. 전 여자에게 중요했던 것이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 아닌, 그것이 약속한 것처럼 보였던 ‘영원성’으로 읽혀지더라구요. 한 이야기에 참 다양한 층위가 있기 때문일까요. 여튼 덕분에 좋은 소설 잘 읽었어요. ^^

  2. 사랑의 감정을 감옥을 부수고 나온 종신형 죄수에 빗댄 점이 소름끼칠만큼 새로웠답니다…

    • 읽는 내내 무언가에 휩쓸려 가는 듯한 느낌도 들었어요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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