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chatpong Weerasethakul: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가진 태국 출신의 젊은 작가가 깐느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고 ‘역시.. 이제 받을 때가 됐구나.’ 하고 생각했더랬다. 크게 놀라지는 않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정도의 반응. 사실 그가 만든 초기 작품인 <친애하는 당신> 과 <열대병> 도 같은 페스티발에서 상을 받긴 했으니, 깐느는 진작에 이 작가의 재능을 눈치채고 자신들의 적자로 만들어 왔던 것도 같다.

몇년전, <열대병> 과 <징후와 세기> 를 보고 친구 J 와 그의 영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의 결론은 거의 비슷했다. ‘이게 대체 뭐여..’ 하고 영화보는 내내 벙쪄 있다가 순간적인 컷 혹은 씬에서 압도당하는 듯한 경험을 느꼈다고. 내 깜냥으로 그의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영화 언어를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닌, 그냥 대중 관객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그가 전달하는 그만의 색깔, 혹은 느낌은 인간이기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의 영화를 열광적으로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그가 깐느에서 그랑프리를 받는 것에 대해 의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소극적 팬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그는 영화 산업의 변방에서 그만의 언어를 충실히 생산해 내고 있으니까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자격 정도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독특함 이상의 묵직한 무언가가 있다.

<엉클 분미> 는 그의 전작들보다 훨씬 친절하지만, 스케일은 훨씬 더 광활해 졌다. 영화는 더이상 절반쯤에서 툭 잘라져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그럴뻔 하다가 다시 돌아온다) 또한 상대적으로 많은 대사들은 상당히 직설적인 방법으로 영화의 주제를 전달한다. 영화는 태국의 정글로 대변되는 신비로운 자연과 분미 아저씨와 그의 주변 사람들로 그려지는 병든 인간 사회의 교집합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전통 신화와 현실속의 생활들이 교차적으로 편집되는 가운데 둘 사이의 접점은 ‘전생을 볼 수 있는’ 분미 아저씨의 주변에서 환상적으로 도출된다. 분미 아저씨는 죽은 부인의 혼령의 인도를 받아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더이상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그가 자궁과 비슷한 모양을 가진 동굴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뒤, 그를 돌보던 여동생과 그의 가족들은 한 호텔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현실의 생활을 지속해 나간다. 전생을 볼 수 있기에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자연 세계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분미 아저씨는 결국 자연의 품에 안겨 삶을 마치게 되는데, 그러한 분미 아저씨의 삶의 마지막 자락과 영화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못생긴 공주와 잉어의 사랑 이야기는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더해, 나는 영화 마지막 즈음 분미 아저씨의 독백이 흘러나오는 와중에 등장하는 스틸컷들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원숭이털을 뒤집어쓴 사람과 군인들이 나오는 몇장의 사진들이 이 영화의 또다른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터뷰에서 위라세타쿤 감독은 태국 변방에 사는,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앞서 말한 그 사진들은 원숭이 혼령이 다시 숲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내용과 함께 정치적인 압박에 의해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태국 사람들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하고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따지면 <엉클 분미>는 그의 영화치고는 상당히 강한 어조로 주제를 말하고 있는 셈인데, 깐느에서 그랑프리를 안겨준 이유도 이러한 선명성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고.

아무튼 그의 문법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어려우면서도 단순하고 명쾌하기도 하다. 많은 주제들을 담고 있지만, 그 주제들을 표현해 내는 방법은 점점 더 선명해 지는 것 같다. 엄격한 종교 중심 사회인 태국에서 동성애자이자 영화를 만드는 소수자인 감독이 태국의 전통적인 것들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은 항상 느끼는 인상적인 부분이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보면 항상 한국에서 굳이 헐리우드적인, 혹은 프랑스적인, 혹은 고다르나 야스지로적인 문법을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작품은 어쩌면 한국 내부에서 주제와 소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런 생각도 사실 부질없는 이유가 위라세타쿤 역시 시카고의 제도권 교육 아래에서 그의 문법을 완성한 케이스라는 거.

6 thoughts on “Apichatpong Weerasethakul: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 음 맞아요. 전 원숭이 혼령이 껌뻑거리며 앨범 넘겨 볼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ㅋ

  1. 평론가들이 열대병을 매우 극찬하기에 호기심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십여분 보고 “아니, 이렇게 과감한 영화라니!!” 싶어 그만 봤어요.;; 초반부터 장면 전환이 매우 대범하게 이루어지는 걸 보니 제 깜냥에 끝까지 다 보더라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럴바에 차라리 좀더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보자,란 생각에 안보고 미루어뒀는데 이 포스팅을 보니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지네요.
    그런데 종혁님은 세 작품(열대병, 징후와 세기, 엉클분미)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요?

    • ㅎㅎ저도 을 처음 볼때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이건 내가 소화하기엔 너무 어렵지 않나.. 하는, 자신감 상실 비슷한 그런. 전 평론가들의 해설보다는 감독의 인터뷰에서 힌트를 많이 얻는 편이예요. 오히려 군더더기없이 핵심적인 포인트를 꼭 집어 설명해주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감상하기에 조금 더 편했던 것도 있고..

      전 을 이 감독의 작품들중에 처음으로 봐서 그런지 아직까진 그 작품이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네요. 근데 도 정말 좋았고요, 도 인상적이었어요.

  2. 으아 일단 아피찻퐁 감독님께서는 이름 외우는 거 자체가 너무 헷갈려서, 영화를 보러 가면서도, 계속 까먹고 또외우고, 까먹고 또 외우고 했어요. ㅋ 저는 깐느 수상 후에 모모에서 본 엉클 분미가 처음 만난 아피찻퐁 감독님의 작품이었는데 그 때 정성일씨가 나와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덧붙여주는 시간이 있어서 그나마 저 나름의 의미를 찾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해설이 필요한 영화독해수준이라니 ㅠㅠ) 다행히 좋게 기억할 수 있었고. 하지만, 다음 작품을 볼 용기는 안나는데, 종혁님 글을 보니 더 용기가 안나는데요. (이게 친절한 영화였다니! 킁 ㅋㅋ)

    • 전 솔직히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리 어려운 영화가 나온다고 해도 정성일의 평론만큼은 아닐거라고! ㅋㅋ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보다 말을 너무 현학적으로 하셔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평론가는 아니예요.

      아무튼.. 한번 도전해 보세요. 솔직히 쉽게 생각하면 뭐 어려울 것이 있나요.. 감독이 의도하고자 했던 모든 상징들을 우리같은 범인들이 일일이 다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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