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 Hoffer: The True Believer

Eric Hoffer, True Believer: Thoughts on the Nature of Mass Movements, Harper Perennial Modern Classics, 2002.

볼셰비키 혁명, 중국 공산당 혁명, 인도의 민주화 운동, 히틀러의 국가민족주의, 예수의 가톨릭과 유태인의 지오니즘.

우리나라 말로 억지로 옮기자면 “대중 운동” 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몇가지 일반적인 이론으로 꿰어 놓을 수는 없을까. 예를 들어 “영웅” 과 “맹신자” 그리고 “교의” 등 이러한 사회적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현재 삶에 대한 실망 혹은 절망” 이나 “현실에 대한 부정” 등의 뒷배경을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거대한 사회적 움직임을 포착해 내는 도구, 혹은 프레임이 정치학적으로도 경제학적으로도 역사학적으로도 완전히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히 경제적 유인에 의해서 혁명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역사적인 선후 관계를 꼼꼼히 따져봐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 이들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즉 일종의 “shock” 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이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분석하기 위해서 사회심리학적인 접근 방법이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텐데, Eric Hoffer 는 바로 이 부분에 천착해 이 책의 논리적 근거를 마련한다. 그는 삶이 풍족하고 기존의 사회 구조에 별 불만이 없는 이들은 급격한 변화를 두려워 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광신도들이나 죄인들, 반동분자들이나 삶의 낙오자들이 혁명의 교의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집단이 될 것이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기존 사회 구조에서 느끼는 억압성이 계급 (사실 계급이라는 단어는 이 책에서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과 같은 기존의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집단적인 욕망으로 분출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수동적이고 어리석기 때문에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이끌어 줄 일종의 지도자나 선지자가 필요하다. 그 지도자나 선지자는 이러한 운동을 스스로 목적하지 아니하였지만 대중에 의해 선택된 이들이다. 예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고 마르크스는 맑시스트가 아니었다. 그들이 특정 대중 집단의 광기 혹은 동기를 자극하는 발화점 역할을 한다면 이를 발현시키고 상징화시키는 광신도와 그 이후 과정에서 대중을 선두에서 진두지휘하는 활동가 역시 대중 운동의 중요한 인자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바대로 히틀러의 경우 스스로 국가민족주의라는 하나의 교의를 건설한 설계자이자 대중들을 직접 설득하고 스스로가 만든 교의에 미쳐간 광신도이자 이 운동의 마지막까지 대중들을 선동하고 독려한 활동가이기도 했다. 예수의 경우 그의 이론을 집대성하고 대중화한 바울이라는 사도를 후세에 따로 두었다는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볼셰비키 혁명도 이러한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고, 일본의 근대화나 중국의 공산화도 같은 프레임 위에서 읽힐 수 있다.

경제학이나 기존 사회학이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을 맹렬하게 파고 들어 하나의 일반화된 이론을 건설한다는 점에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며칠전의 포스트에서 간략하게 밝혔지만 이 책의 저자인 Eric Hoffer 는 정통적인 학문의 길을 밟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어렸을 때 시력을 잃었고, 몇년 후 기적적으로 시력이 회복되었으며 이때문에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다. 그는 다시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미친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부두 노동자나 길거리 행상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밤에는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생전에 저서를 여러권 남겼는데, 그중 한권인 이 <The True Believer> (한국에는 <맹신자들> 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다) 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텔레비젼 연설에서 직접 인용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83년에 사망했고, 그의 사후 대통령 자유 메달이 수여되었다.

에릭 호퍼를  처음 알게 된 건 군대에 갈 때 즈음 그의 자서전인 <에릭 호퍼: 길위의 철학자> 을 읽고 나서 부터다. (계기가 뭐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아포리즘’ 이라고 불리우는 특유의 짤막한 글쓰기 형식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The True Believer> 역시 170페이지 내외의 짤막한 책이다. 125개의 짤막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섹션은 한 두문장에서 두세개의 문단에 이르는 짤막한 글로 구성되어 있다.)  자서전속에서 담담히 묘사되는 그의 독특한 생애 –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일일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대통령 훈장을 받을 정도의 수준 높은 책들을 집필한 철학자로서의 생애 – 에 먼저 매료되었고, 책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그의 아포리즘에 실린 내용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에 책을 읽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마음속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게 되었다.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우선 단어들이 무척 어려워서 사전을 계속해서 뒤져가며 읽어야 했다. 책이 얇은 대신 각각의 문장이 가지는 밀도가 상당히 높아서 한페이지를 넘기는 것도 벅차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은 그만한 노력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2008년 한국에서 일어났던 이명박 광풍, 혹은 뉴타운 광풍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한국에는 혁명까지는 아니었지만 일종의 거대한 사회심리학적 반동이 있었다. 그것이 노무현 철학에 대한 반동이었을 수도 있고 돈에 대한 속물적인 찬양이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 반동이 태동한 시점이 분명히 존재하고 소멸하는 시점 역시 가시적인 거리 안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연구, 혹은 최소한의 토론이 필요하다. 이 책이 2007년 무렵에 시작되어 (아마도) 2012년에 그 끝을 보게될,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로써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 thoughts on “Eric Hoffer: The True Believer

  1. 히틀러가 연설을 할 때, 항상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는 구도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고 하죠. 미디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용한 사람이었죠. 위의 책 표지도 그러하고요.

    ‘집단 의식’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각인된 하나의 생각이 어떠한 변수가 존재해도 무너지지 않더군요. 종혁님이 예로 드신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죠. 이미 그때부터 도덕성이 바닥이라는 증거가 한 두개가 아니었죠. 여전히 진행중인 BBK사건, 군대 미필, 대통령 사저를 구입할 때의 지나친 공권력 개입, 인사등용의 불공정성과 비도덕성 등 대통령 당선 전후로 끊임없이 이야기가 나왔었죠. 1~2년정도까지도 사람들은 이것에 크게 귀기울이지 않은 듯 합니다. 오로지 ‘경제’가 성장하여 ‘돈’을 벌게 해 줄 거라는 단 하나의 목표로 사람들은 다른 요소를 관심 밖으로 내몰았었죠.

    이전부터 우리나라에는 또 다른 프레임이 존재해 오고 있는 듯 합니다. 북한과의 대립상황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생긴 것. 극단적 표현으로 말하면 ‘종북, 좌빨’이라는 말. 옛 1945년 이후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라는 걸출한? 대통령 혹은 그들만의 사회가 만들어낸 틀이죠. 무조건 간첩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것을 이성적 판단이 아닌 사형감라 죽여야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서운 울타리. 여전히 이것은 우리 사회 내에 존재하며, 여전히 한 집단의 든든한 토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동의 20~30%라고 하지요.)

    대중들이 사회에 불만을 가져, 그것이 일정한 개인 그리고 이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 자신들의 의식을 투영하기도 하지만, 이 의식이라는 것을 먼저 만들어 낸 것은 또 다른 사회 권력층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이 생각에 매몰된 나머지 ‘순수한’ 운동과 Mass movement를 지나친 광신도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사회 속의 호명(呼名)되지 않은 개인으로 살아간 다는 것은 곧 컴퓨터에서 필요없는 파일을 지우듯이 사라져도 이 공동체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뜻임과 동시에 그 속의 구성원은 삭제의 불안감을 안고 산다는 의미로 보여집니다.
    ‘자유’라는 가치를 얻은 사람들은 이것을 얻었지만, 어떻게 사용할 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때, 그들의 혼란한 마음을 잠재워주고 없애줄 피사체는 역설적으론느 사회의 일진보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치’ ‘사유’ ‘생각’ 등 추상적인 내용들을 익히고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반작용의 역할로서 ‘the True Beliver’의 대상이 -‘종혁’님의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로써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이러한 말씀처럼 -하나의 사회를 보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길었네요..^^ 이만 줄입니다..^^

    추신 : eric hoffer의 책은 읽어 보지는 않았고, 예전에 신문에서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란에서 한번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꽤 흥미롭게 그 글을 읽고, 사서 읽어봐야겠다라는 마음만 갖고 잊어버렸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다시 생각이 나네요! 이번에는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 긴 댓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거의 대부분에 동의해요. 특히 마지막 부분에 말씀해 주신 순수한 운동과 광신도적인 쏠림 현상에 대한 구분, 중요한 것 같아요. 다행히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책이 두권 정도 있으니 이 기회에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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