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a Zhang-Ke: 24 City

2011년의 마지막날을 맞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1년전쯤 사 두고 보지 않았던 <24시티> 를 보기로 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구정을 쇠는 나에게 매년 12월 31일과 1월 1일은 2000년 이후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지만, 그래도 평소처럼 게으르게 보내면 무언가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 것 같아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을 몇개 준비해 두었다. 하나는 한국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이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김치를 빠트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다른 하나는 읽고 있던 책을 마무리하는 것이었으며, (이건 어제 초과 달성하는 바람에 어제 밤부터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또 다른 하나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경기를 시청하는 것이었고, (접전끝에 시즌 첫번째 승리를 기록했다!) 마지막 하나는 괜찮은 영화를 한편 보는 것이었다. <24시티> 는 “괜찮은” 수준을 넘어서는 감동이 있었으니, 개인적으로 무척 풍성한 한해의 마지막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24시티> 는 <스틸 라이프> 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중국의 대도시 청두(成都) 의 군수공장 ‘팩토리402′ 가 폐쇄되고 그 자리에 고급 아파트단지 ’24시티’ 가 들어오는 과정을 담고 있다. 팩토리402 에 근무했던 사람들을 비추고 그들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 필름이자, 전문 영화배우가 마치 팩토리402에 근무했던 사람들처럼 연기하며 똑같은 포멧으로 인터뷰(연기)를 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혹은 극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두고 오랫동안 그들의 모습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가만히 응시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모습만 잠깐 비춘 뒤 인터뷰에는 등장하지 않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그 공장과 관련해 어떤 일을 해 왔고, 어떻게 살아 왔으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카메라앞에서 담담히 털어 놓기도 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중 어떤 것들은 실제 있었던 일이고, 다른 어떤 것들은 지아장커가 창조해낸 거짓말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교묘하게 섞인 이 영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이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이 하는 이야기들의 사실 판단 여부가 아닐 것이다. <스틸 라이프> 는 사라져가는 시간을 기억하는 영화였다. 그 영화의 마지막 엔딩신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절절한데,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처참한 절망을 담담한 시선으로 기록하는 영화는 보지 못했다. <24시티> 는 <스틸 라이프> 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스틸 라이프> 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슬픔을 내재화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나는 지아장커가 영화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필름으로 저장되고 기록되는 순간부터 거짓이다. 더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왜곡된 창조물인 것이다. 이건 다큐멘터리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실제 삶을 살아가는 인터뷰이가 카메라앞에서 반드시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가지도 있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를 통해 창조된 언어를 말하는 연기자가 실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지아장커는 현실과 허구의 교묘한 경계 속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정확하고 뚜렷한 어조로 드러내고 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가. 거대한 담론 속에서 허물어져 가는 “인민” 의 삶 하나 하나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영화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영화는 아름답다. 삶의 터전이 망가지는 모습을 잔인할 정도로 담담히 담아내고 있는데도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유는 화면과 음악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디지털 필름으로 촬영되었는데, 지아장커는 영화의 각 장면, 각 컷, 각 신을 아주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구성한다. 스틸컷을 랜덤하게 아무 곳에서나 뽑아도 커다란 액자 속에 간직하고 싶어질 정도로 구도나 색감,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의 조화가 아름답다. <스틸 라이프> 와 다르게 음악도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나는 비록 한 곡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노래들이 영화 전체적으로 흐르는 먹먹한 감정을 때로는 이완시켜 주고 때로는 증폭시키며 영화의 분위기와 조화롭게 어울린다.

지아장커는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감독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거의 모든 영화들을 사랑한다. <스틸 라이프> 는 그 해 내가 본 영화들중 최고였으며, <플랫폼> 과 <임소요> 역시 인상적이었다. <24시티> 도 이들 영화와 함께 내 기억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 같다.

2 thoughts on “Jia Zhang-Ke: 24 City

    • 임소요 정말 좋았죠.. ㅠ DVD 에 같이 들어 있는 단편 도 장난 아니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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