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 지금은 없는 이야기

우화 [寓話, fable]

인간 이외의 동물 또는 식물에 인간의 생활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꼭 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빚는 유머 속에 교훈을 나타내려고 하는 설화(說話).

doopedia 두산백과

최규석이 우화집을 냈다. 그의 대학 졸업 작품이 동화, 혹은 우화였던 것을 상기한다면 그리 이상하지 않은 작업 결과물이다. 또한 그의 데뷔작인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역시 일종의 비틀어진 우화였다는 점에서 일견 그의 우화에 대한 애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해 최규석이라는 작가에 대한 신뢰감이 제법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없이 구입했다. 그리고 상당히 실망했다.

그는 자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데에도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과 그 주변에서 점점 멀어지면 그의 묘사력도 점차 둔탁해 진다. 조사와 배움만으로 직접 경험하지 못한 역사를 생생히 되살려낸 <100도씨> 의 작업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것일까? 그는 <지금은 없는 이야기> 를 통해 ‘팩트’에 의지하지 않은 완전히 창조적인 이야기꾼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얄팍하다. 재미가 없다. 메시지는 진부하다.

우선 그림꾼으로서의 그의 재능은 이 책에서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는 탁월한 수다 쟁이이기 이전에 정말 좋은 화가였다. 그가 묘사하는 그의 어머니의 표정이나 골방에 사는 하숙생의 얼굴에서 진한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채색은 그 자체로 감정을 지니는 듯 했고, 그가 묘사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과 다를바 없지만 다르게 느껴지는 아주 특수한 거울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인간을 묘사하는 데에 탁월한 작가다. 왜 굳이 그가 풍성한 그림체를 포기하고 글을 쓰는 것에 더 치중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만화라는 공간 안에서도 충분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만화라는 공간 안에서 꽤 괜찮은 이야기꾼이었지만, 그림의 비중을 줄인채 오로지 문장과 문장만으로 연결된 글이라는 공간안으로 들어오면 또 하나의 그저 그런 이야기꾼일 뿐이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는 잘 알겠다. 그가 어떤 교훈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지도 알겠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도 잘 알겠다. 그것을 왜 굳이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표현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굳이 우화라는 방식을 고집하고 싶었다면, 우화라는 장르에 맞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우화는 재밌어야 한다. 동물을 끌어 들여 인간처럼 말하게 하는 그 자체에서 우화가 가지는 본질적인 매력이 우러나와야 한다. 최규석은 그저 단순히 기능적이고 기계적으로 각 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특징을 이용할 뿐,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 어떤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한다. 새들은 알을 낳아야 하고, 염소들은 늑대들에 잡아 먹혀야 한다. 관습적이다. 그 관습을 효과적으로 비틀어 이용하는 것이 우화인데, 최규석의 우화들은 관습적인 서사 구조 위에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억세게 끼워 맞춰져 있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원래부터 존재했고,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 우화라는 방식을 택했으며, 우화를 써야 하기 때문에 동물을 억지로 구상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내가 너무 가혹한 걸까? 그만큼 최규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울기엔 좀 애매한> 에서 정말 애매한 양의 눈물을 흘렸고, <100도씨> 에서 정말 피가 끓는 듯한 기분을 느꼈으며, <대한민국 원주민> 을 읽고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속절없이 가슴을 쳐댔다. 그의 만화책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항상 그랬다. 그리고 이 우화집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최소한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4 thoughts on “최규석: 지금은 없는 이야기

  1. 억지스럽다는 종혁님 말도 일면 이해가 가긴 해요 :) 그럼에도 저는 이런 작업들이 의미가 있고, 나름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건, 아마 이 책의 타겟 독자가 종혁님과 같은 고급 독자가 아니라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긍정의 힘’ 같은 걸 읽고 본인의 사고를 구축한 사람들이기 때문일 거에요. (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 책을 안보겠죠 ;;;;;) 실제로 ‘천사’가 등장한 이야기의 경우는 고래가 그랬어, 라는 청소년 잡지에 실렸다가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잔잔한 수면에 자꾸만 하나, 둘, 파문을 일으키고 싶어서 조금 거세더라도 이런 작업을 계속 하는 것 같고, 저는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 TV동화 행복한 세상 말고,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최규석이 잘생겨서 편드는 거 절대 절대 절대 아니에요~ ㅎㅎ

    •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당연히 의미가 있죠. 왜 없겠어요. 제가 너무 기대치를 높게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그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분명히 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이겠죠. 그 점때문에 아마 최규석의 다음 작품을 반드시 구입할 것 같고요.

    • 저도 최규석의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 역시도 그의 작품이 나온다면 또 구매하고 또 읽을테구요. 그렇지만 그 작업이 의미가 있다고 해서 이 책 한권이 별 다섯만큼의 가치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고 저도 느끼고 있었어요. 종혁씨와 비슷하고도 약간 다른 이유로 저도 좀 실망했구요. 전작들에 비하면 좀 모자라게 느껴졌어요.

    •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제가 최규석을 너무 좋아해서 더 많이 실망한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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