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인생 계획 수정

추수감사절 방학을 맞아 게으르게 지내고 있다. 공부는 잠시 때려 치우고 느긋하게 집안에 틀어 박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있는데, 이 덕분에 학기말에 해야할 일은 쌓여 가고 기말고사 기간에 받게 될 스트레스는 배가되겠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를 환기하는 기회를 얻었다: 책읽기과 영화보기의 즐거움. 앞으로 틈날 때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봐야 겠다고 다짐했다. 늘 해오던 것들이지만, 유학 생활 후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것들이다. 아니, 조금 더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겠다. 뭐냐 하면,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책을 읽어온 사람도 아니고, 영화를 보아온 사람도 아니다. 일종의 단절기가 몇번 있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의 책장에서 책을 한권씩 빼내어 읽기 시작한 것이 독서 생활의 시작이었고 마침 그 무렵 비디오 가게에서 무심코 고른 <안개속의 풍경> 으로 시작된 유럽 영화에 대한 사랑이 영화 감상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3년동안 하루 종일 학교에 갇혀 지내며 책과 영화에서 멀어져 있었고,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다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보낸 2년동안 제대로 된 독서 생활과 영화 감상 생활을 할 수 없었고, 제대후 본격적으로 다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유학을 와서 정신없는 3년을 보냈고, 그 기간동안 전공과 관련없는 책과 영화는 거의 접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거칠게 말하면 책과 영화에 한해서는 내 인생에서 일종의 공백기가 몇번 존재하는 셈이다. 그 기간동안에 나온 책과 영화는 온전히 구멍으로 남아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고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허락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사실 그러한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해야할 일은 항상 산더미니까. 문제는 내가 하루에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쪼개서 쓰느냐는 것이고, 그 시간 관리에 있어서는 예전보다 지금이 조금 더 나아졌다고 약간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편집증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하루에 일곱시간 자야 한다. 그 이하로 자면 하루 생활이 헝클어 진다.
밥은 반드시 하루에 세끼를 먹어야 하고, 한 끼를 먹을 때에는 최소한 한시간의 여유가 허락되어야 한다. 단, 점심은 걸어가며 샌드위치를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잠자고 밥먹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 열 네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인데,
공부와 논문쓰는 시간을 경험적으로 계산해 보면 하루에 여덟시간 내외인 것 같다. 많을 때는 열두시간 정도인데 평균적으로 따지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여섯 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중 두 세시간 정도는 이동 시간이나 청소, 설거지, 요리등으로 보낼 확률이 높고,
결국 하루 두세시간 정도의 휴식 시간이 평균적으로 주어지는 것 같다.

하루 두시간, 혹은 세시간의 자유시간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학을 온 이후 나는 대부분의 자유 시간을 스포츠 중계와 신문 혹은 잡지를 읽는 데에 할애한 것 같다. 그러니까 소파에 몸을 던지고 ESPN 을 틀어 놓은 후 이코노미스트지 따위를 읽는 식으로 휴식 시간을 보냈고, 침대에 꽁그리고 누워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며 잠이 오기 전까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제목에 적힌 것처럼 사소한 인생 계획 수정은 스포츠 중계 시청 시간을 줄이는 대신 책과 영화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거다.
두시간이면 영화를 한 편 볼 수 있다.
두시간이면 영어책은 50~60페이지, 한국어책은 100~150 페이지 정도를 읽을 수 있다.
하루에 두시간씩 책 혹은 영화에 시간을 투자하면 게으르게 관리한다 쳐도 일주일에 영화 두세편, 영어책 한권, 혹은 한국어 책 두세권 정도는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싸 흥분된다!

물론 인생이 이렇게 계획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난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일단 내일부터 한번 실천해봐야 겠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열심히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중간에 미사를 보고 여섯시쯤 집으로 돌 아와 저녁을 챙겨 먹은 후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것이 내일의 계획이다. 특이 사항으로는 내일은 절대 티브이를 켜지 않을 것. 랩탑은 학교에 두고 올 것. 읽고 있는 책은 반드시 정해진 분량까지 읽을 것. 그리고 과일을 꼭 챙겨 먹을 것.

6 thoughts on “사소한 인생 계획 수정

  1. 음. 종혁님도 저 못지 않은 결심 종결자? ㅎㅎ
    정말 놀라운 자기관리네요. 저는 요즘 책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요가에 올인하자고 -_- 주3회 요가를 인생 1순위로 놨는데, 머리와 의지는 정말 다른지, 이번주엔 결국 한번도 요가를 못했어요. 주말에 제주도 다녀오니 청소를 못해 집이 엉망. 일도 많은데, 약속도 많고, 세상은 흉흉하고 (핑계가 너무 거국적인가…) 뭐 암튼, 최악의 한주를 보내고 나니, 저 촘촘한 생활리듬에 살짝 움찔, 하게 되네요 -_- 저도 다음주엔 다시 불끈! 그러기위해서는 주말엔 청소에 올인 ㅜ_ㅜ

    • 오오 요가.. 대단하십니다. 청소가 사실 저에게는 가장 귀찮은 일이예요. 청소기 한번 돌리는 것도 엄청난 결심히 필요하구요. 설거지도 마찬가지고.. 혼자 산지 이제 4년째인데 아직 집안일이 손에 완전히 달라붙지는 않네요.

      일이 많은데 약속도 많다면, (게다가 세상까지 흉흉하다면) 꽤 괜찮은 변명이 될 것 같은데요? 죄책감 느끼지 마시고 주말동안 푹 쉬시면서 청소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시기를 바랄게요.

  2. 다음번 주어진 영화타임엔 (보지 않았다면) beginners를 보도록 해요.

    하루일과의 계획을 보면 훗, 별거 아닌데 라고 할만큼
    저역시 매우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요.
    정해진 시간만큼 자고(6-7시간)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며
    똑같은 시간에 같은 음식을 먹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고
    운동하러가고.
    잠자리에서 책이나 영화를 보고.

    때론 아무렇게나 살 수 있지 않은가, 라고 스스로를 나무라기도 해요.
    하지만 이것이 제가 현재를 ‘최선’으로 살아가는 방법인거 같아요.

    덧, 설겆이,청소 등 집안 정리는 제가 자타공인 잘 하는 분야인데
    공정하게 트레이드되는 분야가 있다면 파트너로 어때요? ㅋ

    • 저도 루틴한 생활 패턴을 선호하는 편인데요, 관건은 그 안에서 얼마나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인 것 같아요. 당장 하루키만 봐도 직업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글을 쓰잖아요. 그런 모습 보면 부럽죠. 더 배워야 할 것이 있구나 싶기도 하고.

      무언가 교환할 가치가 있으면 좋은데, 제가 수미씨께 드릴 것이 없는 것 같죠 아무래도.. ㅠ 굳이 찾아보면 개그 정도? 하지만 (청소와 설거지를 귀찮아 하고 요리를 잘 하지 못해도) 저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룸메이트입니다. 선택하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