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인사.

방금 서울집에 전화로 추석 인사를 드렸다. 언제나처럼 어머니와의 대화로 시작해 어머니와의 대화로 끝나는데, 누나와 자형이 와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는, 추석답게 한껏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귓가를 통해 전해져 왔다. 한참 음식 준비하시느라 바쁘실 것 같아서 짧게 인사만 하고 끊었다. 음식 잘 받았고, 김치 맛있게 먹고 있고, 아픈데 없고, 공부 잘하고 있다는, 으레 하는 상투적인 말 몇마디를 다시 한번 목에 힘주어 최대한 씩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 그것을 효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민망한 – 무엇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동에 집을 한채 더 가지고 계신다. 그렇다고 돈많은 교수들이 하는  값비싼 땅따먹기 놀이는 아니고, 마당을 가꾸고 흙을 만지는 것을 워낙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삶의 방식에 비추어 볼때 서울의 아파트는 일종의 감옥과도 같았기에, 최후의 탈출구와 비슷한 개념으로다가 장만하신 작은 한옥집이다. 다 스러져가는 껍데기만 남은 한옥을 발견하시고 말로만 듣던 ‘목수’ 님을 모셔 정식으로 기와를 올렸다. 그리고 잔디 한포기, 나무 한그루까지 직접 본인의 손으로 가꾸셔서 순식간에 집다운 집을 만드셨다. 아버지는 그곳을 너무 사랑하셔서 수업이 있는 날에만 서울로 올라오시는데, 다섯시간이 넘게 걸리는 고속도로 운전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차를 몰고 내려가신다.

우리는 그곳이 머지 않아 우리의 ‘큰집’ 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머지 않은 미래에 누나와 나는 아마도 서울에 살게 될 것이고, 명절이 되어 휴가를 얻으면 차를 끌거나 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내려가 그 한옥집 툇마루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수다를 떨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빠르면 빠른대로, 늦으면 늦은대로 아이들도 하나 둘씩 만들어 마당에서 뛰놀게 하면 참 좋을 거라고 즐거운 상상까지 펼쳤다.

지금까지 한번도 우리 가족이 중심이 되어 명절을 지내 본 적이 없다. 우리를 포함한 친척들은 늘 대구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를 중심으로 모였고 우리 가족은 고령의 성직자분들을 모시느라 늘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작년에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실질적인 집안의 중심이 되고, 누나가 결혼을 하면서 우리 가족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생긴 듯 하다. 어머니도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다르셨고 누나는 조만간 아이를 가질 것이다. 한 세대가 마무리를 준비할 시점에 새로운 세대가 그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여름 누나의 결혼과 새로운 식구의 ‘탄생’ 을 ‘목격’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될 준비를 마치신 듯 하고, 늘 소파에서 나와 뒹굴거리며 낄낄거리던 누나는 순식간에 어른이 된 것처럼 보였다. 우리 가족은 늘 격식없이 어울려 노는 줄로만 알았는데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면서 그것이 하나의 룰, 혹은 전통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전통이 되물림되고 있다. 누나 내외가 새집에서 가장 먼저 장만한 건 우리 가족이 애용하던 조그만 소반이었다. 어머니는 미국으로 직접 그 소반을 하나 새로 사서 부쳐 주셨다. 나는 지금도 집에서 밥을 먹을 때 카페트가 깔려져 있는 거실 바닥에 철푸덕 앉아 소반에 음식을 놓고 먹는 것이 편하다. 아버지가 늘 하시던 그 방식대로 말이다.

지금쯤 서울집에서는 점심 식사를 끝낸 네명의 내 ‘가족’ 이 과일을 먹던지, 윷놀이를 하던지 하며 한가로운 휴일 오후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하동집보다 서울집에서 모이는 것이 편한가 보다. 아버지만 약간 고생하시면 되니까. 내가 없는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서울로 돌아갈 그날을 위해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 가겠지. 가족의 존재는 내가 서울로의 복귀를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다. 언젠가 그 사람이 내게 그랬다. 그 때는 그냥 친한 친구사이였을 때인데,

“가족이라는 존재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게 더 큰 의미더라고. 그래서 결국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지 싶어.”

라고. 이 말을 들은지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귓가에 맴돌고 있고, 그렇게 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친구가 마침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언니와 그 언니가 갓 낳은 애기를 보러 어머니와 함께 휴가를 내어 왔단다. 같은 시간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엇, 더 쓰면 정말 청승맞아 질 것 같아서 이만.

노래를 하나 넣고 싶은데, 꼭 추석이라서는 아니고 방금 아이튠즈를 휘휘 넘겨 보다가 딱 눈에 띄어서 그냥 “들읍시다!” 하는 의미로다가.

6 thoughts on “추석 인사.

    • 전 앞으로 몇년안에 조카를 본다는 생각에 들떠서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아요 ㅎㅎ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애를 두고..

      제가 결혼하고 애를 낳고 하는 이야기들은 아직 정말 너무 먼 미래처럼 느껴집니다.

  1. 20대 초반에 벌써 ‘아저씨’ 소리를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난 ‘오빠’란 말이야..! 라고 주장을 해도 ‘아저씨’…………사촌형도 옆에서 “이제 아저씨지 무슨 오빠야..ㅋㅋㅋ ” …………

    조카가 조금 더 가까우면 모르나, 저처럼 점점 멀어져가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묘합니다..호칭문제에 있어서 말이죠..하지만, 돌도 안 지난 아기는 정말 귀엽더군요..볼이 터질것 같음요..ㅎㅎ

    • 전 집안에서 항상 막내여서 그런지 아저씨라는 표현, 아니 오빠라는 표현조차 들어본 적이 거의 없네요. 부럽습니다! 이제 조카가 태어나면 비로소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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