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나는 요즘 행복하다.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험을 보고 통과를 해야 ‘다음’ 이 주어지는 생활을 20년 넘게 하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저축은 한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할 정도로 항상 가난과 맞닿아 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몸은 늙어 간다. 그래도 행복하다. 하루 세끼 밥을 다 챙겨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은 항상 통장에 있고, 몸을 편히 뉘일 수 있는 집이 있으며, 앉아서 무언가를 읽거나 쓸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건강한 몸과 남들에 비해 많이 뒤쳐지지는 (hopefully) 않은 머리도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는 항상 생각하는 것들이다. 요즘은 여기에 더해 관계에서 오는 행복감도 상당한 편이다. 적당한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나를 괴롭히는 타인의 존재를 쉽게 찾을 수 없는, 그리고 내가 피해를 주는 사람 역시 (hopefully..) 딱히 없는, 딱 그정도의 거리감. 그 누구와도 감정적인 갈등을 빚지 않고, 또 그 누구에게도 나로 하여금 발생하는 고통을 안겨주지 않는 그런 상태. 나는 지금 현재 그게 너무 행복하고 좋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아마도 조금은 달라지겠지.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이 나이쯤 되어서 생각해 보니, 그건 그저 우연에 의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걸 운명이라는 말로 이쁘게 채색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희망에 달려 있겠지만, 그것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의 사람에게는 그저 언제 올지 모르는 우연적인 사건 사고중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 가치를 애써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 를 만나는 것이 이제 내겐 더이상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됐다. 어떤 이를 언제 만나던지, 그 사람을 만나는 내 자신이 이젠 더 중요하고 흥미롭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적당한 사람들과 적당히 떨어져 있는 지금의 고요함을 적당히 즐길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지난 여름이 내게 준 교훈이다.

(진심으로) 생일 축하한다.

2 thoughts on “행복

  1. 오랫만에 랩탑을 열고 홈페이지를 보았더니,
    뭔가 바뀌었네요.
    사진도 있고, 색도 조금 있어서 전보다는 덜 건조한 느낌.

    종혁씨의 일상에 대한 글을 읽고 있노라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져요.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다는게 느껴져서 그런걸까요.^^

    • 사람다마 다를텐데, 저는 학교에 속해 있으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은 사람같아요. 학교가 저를 보호해 주는 부분이 있달까요. 그래서 편안함도 느끼고 행복도 느끼고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저같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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