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1. 시차는 대충 적응되어 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 어제는 열시에 자서 새벽 세시에 한번 깨고 다시 잠들어서 새벽 다섯시에 완전히 일어 났다. 계속 이정도 리듬만 가져가 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의도적이지 않게 아침형 인간으로 일주일째 생활하고 있는데, 하루가 무척 길어진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늘도 아침에 간단한 청소, 냉장고 정리, 도시락 싸기, 홍차 내리기, 아침 식사까지 마무리하고 집을 나섰는데도 시간은 일곱시를 겨우 넘어서고 있었다.

 

2. 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 선배의 환송회가 있었다. 대학교 선배이기도 한 그 사람은 4년만에 졸업하고 한국에 있는 연구소에 직장을 얻었다. 쁘띠거니의 수족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본인이 정한 길이니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부양 가족이 많아서 더이상 오래 공부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여러가지 좋은 말들을 많이 들었다. 결론은 한가롭게 보낼 시간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 마침 간 곳이 한국 식당이었는데 고기를 굽더라. 나는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3. 이어폰을 새로 샀다. 커널형을 예전부터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200불이 약간 되지 않는, 중간쯤 되는 레벨의 모델을 하나 골랐다. 어제는 계속 밖에 있었는데, 아마존 어플로 추적한 결과 저녁 여섯시쯤 집에 도착 완료. 하지만 나는 2. 에서 말한 회식때문에 밤 열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네시간여동안 얼마나 몸이 달았는지.. 아마존은 트래킹하면서 기다리는 맛이 쏠쏠하다. 이어폰은 오늘 아침에서야 처음으로 사용해 보고 있다. 생각보다 작고 귀여운 녀석이다. 귀에 쏙 들어가는 느낌은 좋은데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처럼 무언가를 먹을 때나 이빨을 부딪힐 때의 느낌이 썩 좋지는 않다. 커널형이 다 그런건가 보다 하고 있다. 3년동안 나와 함께 했던 뱅엔 올룹슨 이어폰은 서랍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동안 나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 주어서 너무 너무 고맙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더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고마움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이어폰만큼 내 맘에 쏙 드는 것도 없었다. 소리도 아주 좋았고, 귀에 걸치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이어폰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고, 그 이어폰을 계속 쓴다는 행위가 나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척 컸기 때문에, 이제 더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4. 그렇다고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열심히 하루 하루 넘기는 달력을 사용하고 있고, 쿠션도 잘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의 흔적을 지운다고 해서 쉽게 잊을 수 있거나 정리되는 건 아니다. 또한 억지로 잊고 싶지도 않고, 지우고 싶지도 않으며, 미워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나와 상관없이 원래 좋은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걸 억지로 부정하거나 외면하려는 시도는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5. 이제 편지 한장만 받으면, 대충 마음속에 있었던 부채는 정리될 수도 있을 것 같다.

6. 시차에 적응함과 동시에 생활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 왔다. 아침에 학교로 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일상을 다시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아직 딴짓을 더 많이 한다. 소설책도 읽고 친구와 수다도 떤다. 논문은 아직 읽지 않고 있고, 그래서 당연히 내 논문도 아직 열어 보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여러가지 책을 읽고 있다. 글자부터 눈에 익숙해 져야 뭐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다. 그래서 책상앞에 더 오래 달라 붙어 있어야 한다.

7. 며칠전 농구를 하다가 다리에 쥐가 났는데, 운이 없게도 양쪽 다리에 동시에 쥐가 나 버렸다. 덕분에 코트위에서 한동안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몸이 늙어서 그런지 이제 좀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걸을 때마다 통증이 와서 운동은 며칠동안 쉬고 있다. 빨리 뛰고 싶다. 농구공을 만지고 싶다. 로잉도 하고 싶고. 운동을 할 때가 그나마 조금 더 행복한 것 같다.

8. 오마하 여행은 결국 포기. 시카고까지 가는 비행기값이 엄청 비싸서 -_- 역시 비행기는 몇달 전에 미리 알아 봐야 하나 보다. 그래서 개강 바로 전 약간의 여유가 허락될 때 알아 보니까 시카고행 비행기가 $200 도 안하더라. 고민중이다. 사려면 지금 사야 하는데. 동부는 겨울에 반드시 갈테다.

9. 일주일째 채식을 시도하고 있는데 느낌은 과히 나쁘지 않다. 아직 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인터넷으로 이것 저것 알아보며 서툴게나마 배워 나가고 있다. 초심자를 위한 책이 한권쯤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늘이나 내일쯤 책식 전문 매장에 가서 물어볼 참이다.

10. 그래서 그런지 살도 쑥쑥 빠지고 있다. 세끼를 다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 요리도 왠만하면 직접 해서 먹는 중인데 운동때문인지 채식때문인지 부족한 수면 탓인지 몸이 무거운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11. 머리를 다시 길러볼 생각이다. 이유는 그냥.. 삭발도 좋고 단정한 짧은 머리도 좋은데 난 사람들에게 핀잔 (=욕) 들어가며 머리 길렀던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12. 크롬이 내 허락도 없이 멋대로 한글 버전으로 스스로를 바꿔 버렸다. 그리고 자꾸 튕긴다. 잘 열리지도 않고. 그래서 파이어폭스로 돌아 왔다. 새로운 버전을 깔았는데 깔끔해 진 것 같긴 하다. 여전히 크롬보다 느리지만.

13. 세상엔 좋은 음악이 너무 많다.

14. 좋은 영화도 많다.

15. 좋은 사람도 많은데, 그 사람들을 다 만나고 싶진 않다.

16. 농구하고 싶다.

17. 참, 윔블던이 시작한다.

18. 난 좋은 공연 티켓 몇장을 구입했다.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 도도스, 브라이트 아이즈. 후자는 사실 별로 안땡기는데 스캇이 가자고 해서.. 기분 전환 겸.

19. 참, 한달 뒤에 플릿 폭시스 공연이 있다.

20. 이곳에서의 관계들도 대충 정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 가 꼭 ‘마무리’ 를 뜻하지는 않는다. 조금 더 명확한 관계를 서로에게 인식시키자는 그정도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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