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nt Eastwood: Letters from Iwo Jima


<Flags of our Fathers> 의 쌍둥이 영화라고 할 수 있는 <Letters from Iwo Jima> 를 이제서야 봤다. 영화는 <Flags of our Fathers> 의 완벽한 대척점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섬을 지키는 일본군의 입장에서 이오지마 전투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크게 네명인데, 이 섬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의 총사령관인 쿠리바야시 장군, 그의 절친이자 전직 승마 올림픽 챔피언이었던 니시 중장, 일본에 임신중인 아내를 홀로 두고 차출된 사이고, 그리고 상관의 명령에 불복한 죄로 사지로 보내진 시미즈가 그들이다. 와타나베 켄이 분한 쿠리바야시는 미국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었고 그때문인지 일반적인 일본의 가치관에 반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자결하기 보다는 끝까지 살아 남기를 명령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 남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원군을 보내지 않고 자결하기를 요구하는 국가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지만 그가 부하들을 대하는 방식은 그의 국가와는 사뭇 다르다. 니시는 영화에서 그러한 쿠리바야시의 사상을 조금 더 확장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데, 포로로 붙잡은 미 병사와 친근하게 대화하고 그 병사가 죽은 후 그의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를 낭독한다. 쿠리바야시와 니시는 이스트우드가 천착하고 있는 휴머니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존재들이다. 이스트우드는 전쟁이라는 이성을 상실할 정도의 극한 상황하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다움” 이란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켜야 하는 지역을 잃을 것이 확실시 되자 집단 자결을 시도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과연 국가에 종속된 한 개인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지 않고 지키는 방법은 목숨을 버리는 것 뿐이었을까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스트우드의 입장은 어느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는데, 카세 료가 분한 시미즈를 통해 이를 잘 드러낸다. 그는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다. 사이고와 함께 북쪽의 다른 부대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그는 결국 전쟁과 죽음이라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미군에 항복하지만, 그곳에서 죽음을 당한다. 시미즈는 쿠리바야시의 완벽한 대척점에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끝까지 흔들리는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쿠리바야시와 함께 영화를 이끌어 가는 두명의 주인공중 하나인 사이고는 이스트우드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존재다. 그는 고향에 하나뿐인 가족인 아내를 두고 왔고, 국가에 대해 냉소적이지만 명령을 거스를 만한 배짱도 없다. 쿠리바야시에게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처지는 말단 병사. 모두가 집단 자결하는 상황에서 쿠리바야시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고 북쪽으로의 탈출을 결심한다. 시미즈를 끌고 가는 그 여정에서 사이고는 평범했던 한 인간이 숭고한 존재로 변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스트우드는 결국 그를 죽이지 않고 끝까지 살려 두는데, 영화속 인물들중 유일하게 생존하는 그의 마지막 표정에서 거의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생명을 조금 더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이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헌신, 그리고 아주 약간 더 많은 용기라는 것.

영화는 거의 흑백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낮은 채도를 보여준다. 너무나 무미건조해서 원래 색깔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화면은 모래와 흙색으로 가득 덮혀 있다. 영화를 보는 사람마저 목이 마를 정도로 건조한 그 화면속에서 뜨거운 감정을 이끌어 내는 건 이스트우드가 얼마나 훌륭한 감독이자 이야기꾼이자 철학자이자 마음 따뜻한 이웃아저씨인지 증명하는 것들중 하나다. 내게 영화에서 가장 가슴 뭉클했던 장면은 사이고가 쿠리바야시에게 자신의 몫인 국 한그릇을 넘기며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앞두고 극도로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그 장면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졸이며 한껏 말라 붙어 있었던 나도 울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인상깊었던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씬. 그냥 이오지마섬을 지긋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 산 뒤로 보이는 하늘이 참 이뻤다. 색깔이라는 게 드러나는 첫번째이자 마지막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이스트우드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한 씬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가 <Flags of Our Fathers> 보다 더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두 영화를 만든 감독은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인인 이스트우드가 보여주는 일본과 일본군에 대한 이해는 기대 이상이다. 미국은 일본의 시선에서 철저히 타자일 뿐이다. 얼굴과 이름이 없는 무서운 적일 뿐이다. 그리고 이스트우드는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일본군과 미군이 감정을 나누는 지점까지 간다. 하지만 이유가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스트우드는 <Letters from Iwo Jima> 에서 휴머니즘에 대한 질문을 조금 더 깊은 곳까지 가져 간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처럼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단지 상황을 보여주고 이에 대응해 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영화 살면서 쉽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이고역을 연기한 배우는 니노미야 카즈나리다. 어쩐지 눈에 익다 싶었는데 역시나, 아라시의 그 니노미야가 맞다. 예전에 만났던 여자친구가 아라시의 마츠모토 준을 광적으로 좋아해서 어깨너머로 조금 배운 (?) 기억이 있다. 카세 료의 연기도 아주 인상적이었고, 와타나베 켄도 클래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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