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하동집에 다녀 왔다.
이제는 더이상 누나가 함께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 그리고 뽀미가 함께한 사흘간의 시간.
서울집에 있을 때는 조금 덜 느꼈던 것 같은데, 하동집에 가니 확실히 한명 나간 자리가 커 보였다.
하동의 초여름은 여전히 쨍하니 아름다웠고,
나는 뽀미와 함께 산책을 하며 동네 구경을 했다.
뽀미도 이제 아줌마.
부모님이 희망하는 가까운 미래는 뽀미의 말년을 무사히 함께 보내는 것이다.
그녀가 이제 할머니가 되어 병에 걸리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때 지금처럼 일주일에 며칠씩 혼자 둔다면 너무 외롭고 쓸쓸할테니,
얼른 은퇴하고 하동으로 내려와 뽀미와 함께 하루 종일 보내는 것, 그것이 부모님이 꿈꾸시는 근미래다.

우리는 뒷산에 올라 나무를 해오고,
최고의 사랑을 함께 보며 밤참을 먹었고,
툇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난 오렌지 쥬스..) 긴시간 수다를 떨었다.
아버지는 3년이 지난 이제 와서야 비로소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나에게 물어 보셨다.
어머니는 스캇과 크리스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 하셨고,
나는 안방에 두고온 전화기에 문자가 혹시 오지는 않았는지 계속 궁금해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전히 사랑스러우셨다.
나는 한국에서 입꼬리 양쪽이 비쭉 올라가면 입이 살짝 나오는 웃음을 유난히도 자주 지었는데,
아주 흐뭇하고 너무 행복해 보여 꼭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주로 그랬던 것 같다.
하동에서는 더 자주 그랬다.
내가 공부를 마치고, 하고자 하는 일을 대충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두분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병원에 가시더라도 내 손을 잡고 가셨으면 좋겠다.

4 thoughts on “하동

    • 소쇄원이 어딘지 몰라 찾아 봤어요 ^^; 토지 최참판댁 바로 옆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입니다만.. 아버지께서 심혈을 기울여서 가꾸셨어요. 전통 한옥이라 저같은 서울 촌놈은 장기간 생활하긴 불편하더라구요.

  1. 어릴저긔 할머니가 경남 남해(섬)에 사셔서
    차타고 가다가, 하동지나치면 거의 다왔다
    그런 생각이 들곤 했었는데 홋홋.

    • ㅎ 그러셨군요. 저에게 그런 지명을 꼽자면 구미? 전 살면서 하동에 딱히 인연이 없었어요. 큰집과 친척들이 전부 대구에 있어서.. 몇년전 아버지께서 이쪽에 땅을 사시면서 비로소 드나들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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